루틴하게 살아내기

by 느린날들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을 하고 있다. 해고 이후 거진 3주가 흘렀다. 약속한 돈도 들어왔고, 집에서 요양도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급할 것은 따로 없다. 차는 80도에서 제일 맛있다는 말을 소설책에서 흘려들었다. 그 말을 곱씹으며 우린 티백을 젖혀 이 캐모마일 티를 마신다. 괜스레 조급한 마음을 뜨슨 물로 달래본다.


오늘 카페에 온 목적은 이력서를 쓰기 위해서였다. 이력서를 쓰다보니 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정말 절박하게 꿈을 이루고 싶었을까? 꿈을 달성하는 것보다 달성 이후에 유지하는 것이 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꿈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몰랐던 것 같다. 나에게 있어 꿈은 그냥 달성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한가지 목표를 달성하면 그 다음 목표를 설정해야한다는 것을 잊고 지냈다. 일상은 루틴한 것들로 점철되었다. 언제까지고 리셉션에 앉아있어야하는지도 아무도 몰랐다. 존경하는 선배는 오년 지냈다고 했다. 가늠을 해본다. 내가 오년동안 리셉션에서 빠릿하게 지낼 수 있을까싶었을 때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우스갯소리로 갤러리 일을 하면 나가서 개인 사업을 잘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어떤 일이든 안 그렇겠냐만은, 다시금 자세를 정렬하고 되물어본다. 절박했는가?


하지만 다시 엉덩이를 고쳐 앉아보고, 생각도 다시 해보면, 절박했는가 아닌가와 같은 여유로운 질문보다는 다음 목표에 대해 진심으로 고찰했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이 조금 더 이 문제의 키솔루션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순간에는 절박했을지도, 달성하고 나서 다음 목표를 상실했을 뿐이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조금 그런 것 같다. 다음 목표를 상실한 상태이다. 갤러리 큐레이터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이 겁나지는 않는다. 하는 일은 루틴이 되면 되는대로 또 의미가 있을 일들이다. 여러가지 일들을 해볼 수 있고, 순간판단력이 필요하며 팝팝 튀는 일들은 루틴적이고 반복적인 업무에 비해서는 좀 더 즐겁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상황에 대한 핸들링을 할 적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유순한 내가 되어서 상황을 무마시킨다. 마음에 든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이라고 한다면 잘 모르겠다. 그래서 공고를 쓰는 것이 두려워진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명성, 더 나은 월급, 함께 일하는 사람들, 시간이 흐를수록 삼각형의 꼭짓점은 좁아져간다. 등터지는 싸움을 견딜 준비가 되었는가 하면 엉덩이가 조금 무거워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마음을 놓고 있어야 선물이 찾아오는 것처럼 조급한 마음을 조금은 달래보려고 한다. 그저 보이는 곳에 이력서를 루틴하게 넣는다. 일주일에 몇 곳, 이 취업준비도 루틴하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불안정한 마음을 조금은 다스려본다. 당장 방향을 정하지 못하더라도, 감각을 잃지 않는 쪽으로는 계속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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