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것 같다. 엄마가 사다둔 냉장고 속 불고기를 쉬면서 먹고 싶다, 고 무념하게 생각하고 지나친 적이 있었다. 일터에서 잘린 지 이주차에 그 불고기를 쉬면서 먹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한 켠으로는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사람은 진짜 미약하게나마 그림을 그린 것처럼 되는구나, 싶었던 것 같다.
내가 그린 나의 청사진이 무엇일까, 친구는 나에게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봤다. 내 나이 서른 하나, 어렸을 적 그런 질문은 그저 아이들이나 하는 유치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보여진다. 스쳐 지나가는 생각으로 쉰이 되어도 일흔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묻는 친구가 그때 곁에 있을까 싶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잠시 시간이 멈췄다.
이내 내 입에서는 술술 이야기가 나왔다. 파편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머릿속에서 구성력 있게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때쯤이면 나는 갤러리를 하고 있을 것이고, 주 수입원은 어디서 얻을 것이며, 새신자이니만큼 할 수 있는 생각으로 대기만성형 사주를 가지고 있다고. 그래서 나는 잘 될 거라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튀어나왔을 대답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게 무슨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안다. 아마 내가 생각했던 평균은 상위 10%남짓의 평균 그림이지 않을까 싶다. 보고 배운 것, 듣고 자란 것이 그런 류였기 때문이다. 뻔한 이야기다. 학교는 어디를 가야 했으며, 직장은 어떠한 곳에 입사를 해야 했고, 남들 눈치 보기에 바빴다.
또 그런 이야기도 했다. 내 인생은 늘 지지부진하다가 펴졌다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지금의 나는 불안하지 않다. 예전 같았으면 재취업하기 위해 부진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생계를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잠시 나를 위한 시간을 되돌이켜보기를 원했다. 내가 그려온 것, 미세하게나마 상상한 것, 무념한 청사진들이 나중의 나를 구성한다고 생각하니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 분명히 깨달았다.
인생은 살아내는 것이다. 살아내는 일은 숭고한 일이다. 지난한 시간들을 견디고 견뎌 깊은 희애를 위한 시간들을 버텨내는 일이다. 순탄한 이에게는 그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그리며 살아가는지 복기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