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문득 '시행착오와 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인간은 지각이 들어가면서부터 시행착오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양치질에 대해서 말해 보자면 나는 할 말이 있다. 왜 국민학교(초등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치아관리의 중요성을 교육하지 않았을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양치질을 할 때 너무 심하게 칫솔을 격하게 사용하여 칫솔모가 빠르게 닳아 버릴 뿐만 아니라 너무 문질러서 칫솔모가 옆으로 누워버린다. 당시에는 물자가 귀한 시절이라 내 기억으로는 해가 바뀌어도 그대로 썼던 것 같다. 그래도 그런대로 결혼하고 나서 30 후반까지는 모르고 있었는데 잘못된 양치 습관으로 아랫이 잇몸이 심하게 파여 있어서 '땜질'을 해야 했고 나의 치아관리 상식 부족으로 겪무부서에서 철야근무를 거의 매일 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잇몸이 붓기 시작하더니 1 년 후 타 부서로 옮긴 후 긴장이 풀리면서 부었던 잇몸에 통증이 시작되어 할 수 없이 치과에 갔더니 '풍치'라고 하였고 그 후 하나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40 후반부터 어금니 쪽에 부분틀니를 하게 되었고 현재는 내 본래 치아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나의 이 경우는 시행착오의 상태가 장기간 지속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습관을 고치지 않았던 결과 내가 스스로 초래한 불행(?)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원망 아닌 원망을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는 1960 년대 초, 중반의 시기로서 6.25 전쟁 이후 먹고살기 바빴던 때이고 정국도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 당시에는 점심시간에는 미국에서 원조해 준 '(옥수수 가루) 강냉이떡'을 반별로 교무실에서 배급받아먹었었다. 지금도 교실에 퍼지던 구수한 옥수수 특유의 냄새가 그립다.
당시에는 아이들에 대한 위생교육 같은 것은 생각할 틈도 없었을 것이다.
개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회사, 사회, 국가 등 모든 조직체들도 끊임없이 시행착오와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행착오를 소홀히 취급하거나 무시하는 개인과 조직뿐만 아니라 한 국가도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당당하게 올라선 것은 해방 이후 6.25 전쟁을 거쳐 강대국의 역학적 상황과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분단이 불가피했던 결과 남한 단독만의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훌륭한 지도자와 잘 살아보겠다는 민초들인 대다수 국민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 시행착오의 최소화와 함께 오늘의 발전이 이루어진 그야말로 축복의 역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천만다행으로 당시 공산주의 사상과 이념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있을 때 북한처럼 일당독재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이곳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함으로써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누가 뭐래도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건국한 우리나라가 오늘의 기초를 세웠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대한민국에서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있기에 소위 종북 좌경사상을 표현할 수 있지만 북한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할 수 있는 자유가 아예 존재조차 할 수 없는 암흑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북한에는 시행착오라는 단어가 사용되는지도 의문이다.
앞으로도 개인이든 국가조직이든 내실을 기해야 함은 물론 시행착오의 경험을 통해서 성장과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문제는 시행착오를 어떻게 최소화하거나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개선할 것인가의 '의지의 문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부터 지금부터라도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록 늦은 나이지만 노력하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이 나 자신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고 후회하지 않는 최선의 삶을 영위하는 첩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