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공기가 더욱 맑아지는 11월 7일, 구례 화엄사 말사인 연기암을 찾았습니다. 연기암은 화엄사 북쪽 능선에 자리한 작은 암자입니다. 예로부터 '머무는 순간 마음이 맑아지는 암자'로 불리며, 지리산의 웅장한 풍광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자리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연기암에 오르는 길은 늦가을 색감이 절정이었습니다. 붉은 단풍과 초록이 남아 있는 숲의 색감이 조화를 이루며, 지리산의 깊은 계절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금빛 필터처럼 번져 길을 비추었고, 흙냄새와 바람 냄새가 어우러져 오래된 산사의 기운을 느끼게 했습니다.
연기암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고요함'입니다. 화려한 장식 없이 자연 속에 스며들 듯 자리한 작은 법당과 마당,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지는 지리산 능선. 이곳은 많지 않은 방문객 덕분에 늘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합니다. 그래서인지 수행자들이 마음을 닦던 과거의 느낌이 공간 전체에 은은하게 배어 있습니다.
연기암은 사계절 내내 '운무의 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구름과 가장 가까운 암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암자 앞 난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섬진강을 따라 길게 흐르는 운해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운해는 마치 강물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게 흘렀고, 그 위로 단풍이 은은한 색을 더하며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아래에서는 볼 수 없는 높이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지리산만의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운해 사이로 봉우리들이 섬처럼 떠 있는 모습은 마치 동양화 속 한 장면 같았고, 바람이 살짝 불 때마다 구름결이 움직이며 새로운 풍경을 그려냈습니다.
연기암은 단풍의 화려함과 운해의 깊이를 한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잠시 난간에 기대어 바람을 느끼고 있으면, 자연이 왜 이곳에 '연기암'이라는 이름을 선물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리산의 넉넉함, 섬진강의 고요함, 그리고 가을의 절정이 한데 모여 오늘 하루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