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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나폐인 Sep 24. 2022

웃기는 법

짧은 이야기

 입사 초기였던 것 같다. 당시 코미디언 한 분을 초빙하여,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수 십 명의 팔짱 낀 청중들 앞에서, 기죽지 않고 강연을 시작한 코미디언은 이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사람들이 웃지 않는다"


 맞다. 업무강도나 보수성이 매우 높은 회사의 분위기, 일에 지친 사람들의 냉소적 태도를 뒤집기에는 웃음의 소재를 찾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점점 초조했다. 내가 강단에 선 것도 아닌데, '저 코미디언이 강연 내내 웃음을 주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쓸데없는 이타심이 도져서 약간의 긴장감을 느꼈다.


 변화가 필요했다. 코미디언은 분명 무슨 변화를 꾀할 것이다. 방송에서, 공연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폭소하게 만든 자기만의 기술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기대했다. 곧 큰 변화가 있을 거야. 반드시 웃게 될 거야.


 내 기대와는 다르게 강연 시간이 15분여 지나도록 사람들을 웃기는커녕 팔짱을 풀 생각도 안 했다. 내 머릿속은 '코미디언도 못 당해내는 우리 회사' '진짜 보수적인 우리 회사'와 같은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못 웃기는 사람도 분명 있지 않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 순간 사람들이 하나 둘 실소에서 시작해서 웃음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 코미디언이 한 일이라고는 같은 동작, 표정, 같은 킬링 멘트를 계속했던 것뿐이었다. 그때 코미디언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를 웃기려면 한 가지를 기억하세요. 될 때까지 밀어야 합니다. 한번 하고 안 먹힌다고 포기하면, 안 웃긴 놈이 되는 거죠."


 맞는 말이었다. 결국 웃음에도 자기 자신을 믿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설령 이게 말이 되지 않더라도 계속 밀어붙인다면 종국에는 반드시 웃게 되어있다. 그것은 실소에서 시작해 웃음으로 그리고 폭소로 번지게 될 것이다. 웃음의 공식은 특별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먹히지 않더라도 밀고 나가는 용기, 다시 말하면 체면을 버리고 밀어붙이는 자세. 그것이 '필요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날리면, 발리면 등 다양한 발음을 지속적으로 밀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코미디언이 설자리가 없어지나 보다. 그들은 분명 웃기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다른 점은 웃길 마음이 없다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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