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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나폐인 Sep 21. 2022

당연(當然)의 빈자리

모든 것에는 이유가 필요할까.

 '당연',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 나 역시 당연히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에 반감이 있는 편이었고, 지금도 반감이 없지 않다. 당연히 무엇을 하라는  항상 의문을 갖게 만든다.


 '당연'만큼 엄청난 스펙트럼을 가진 단어도 없다.


 "당연히 내일도 태양이 뜬다."

 "당연히 바닷물은 짜다"

 "당연히 사람은 죽는다"

 "당연히 지구는 동그랗다"

 "당연히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

 "당연히 나이가 차면 결혼은 해야 한다"

 "당연히 아이는 낳아야 한다."

 "당연히 밥은 먹어야 한다."

 

 당연이란 단어는 진리부터 주장까지 모든 진실의 스펙트럼을 아우른다. 과학적 법칙에 따른 팩트도 당연이요. 경험적 통계에 따른 정설도 당연이요. 개인적 주관에 따른 올바름도 당연의 영역에 포함된다. 당연히 태양이 뜨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간혹, 지구가 동그랗다는 사실조차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당연한 모든 것은 사실 경험적, 통계적 사실에 근거한다. 오랜 세월 당연히 이루어진 인간사의 법칙과 자연사의 법칙은 '당연'이라는 개념 아래 사사건건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내일도 태양이 뜨잖아?"라는 것에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것처럼. 당연히 바닷물은 짜다는 것에 이유를 달지 않는 것처럼.

 

 경험적 사실이 실증적 사실로 입증되지 않는 모든 영역에서 '당연한 것'이 사라지고 있다.  일례로 이미 아이를 낳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찾아왔다. 수천, 수만 년 이어져온 인간사의 가장 당연했던 것들이 더는 당연하지 않아 졌다.


 당연한 것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당연의 빈자리는 선택이 자리 잡는다. 애초부터, 세상이 발전할수록  인간에게는 수많은 선택지가 주어진다. 선택이 많아진다는 것은 당연한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어쩌면 당연한 행동을 하는 건, 이제는 다소 어리석게 보일지도 모른다.


 당연의 빈자리, 이제 모든 것은 선택이다.


 쌀밥을 먹지 않는 것도,  결혼하지 않는 것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것도, 모두 선택이다. 어쩌면, 나중에는 죽는 것과 사는 것도 선택이 될지 모른다. 당연한 모든 것이 사라지는 세상은 어떨까.


 하지만, 적어도 아직은 삶은 당연한 것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난 오래된 사람 축에 들어가나 보다. 최소한 당연한 무엇인가에 기대며 삶을 바라보고 싶다. 삶의 이유를 찾기보다 당연히 살아야 하는 삶을 충실히 살고자 한다. 아이들을 낳는 이유를 따져 묻기보다, 낳았다면 당연히 사랑하며 살길 바란다. 왜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사랑한다고 대답하고자 한다. 모든 것에 이유를 따지는 순간, 우리는 합리적인 행복을 누릴까? 합리적인 불행을 느낄까?


 적어도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 있는 삶. 아직은 그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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