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수의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크나폐인 Sep 19. 2022

반찬

다른 의미로 한국인의 진정한 소울 푸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을 떠올려 보세요"


 오늘도 어김없이 회사 뒷골목 음식점에 들른다. 국밥집, 찌개집, 냉면집 등 어느 음식점을 들어가더라도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음식은 반찬이다. 반찬이라는 음식은 참 독특한 녀석이다. Side-dish라고 보기에는 그릇 하나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이 그러하며, 그 가짓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김치, 깍두기는 물론이고 마늘종 조림, 연근조림 등의 조림류도 있고, 고사리나물, 취나물, 참나물 등을 무쳐놓은 경우도 있다. 무생채, 오이생채, 노각무침, 도라지 무침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조미김 마른김 김자반 등 해조류 반찬도 나오기 일수다. 그 간 경험한 반찬수만 나열하더라도 한참을 허비할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반찬은 메인디쉬가 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음에도 메인을 쥐고 흔드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이 집은 깍두기 때문에 꼭 와야 해" 라며 곰탕집을 추천받기도 하고, "이 집은 점심에 주는 오뎅볶음이 정말 깔끔해, 몇 번이나 리필해"라고 하며 김치찌개 집으로 향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정말 헷갈린다. 돈도 안 받고 그냥 주는 반찬 때문에 메인을 선택하는 주객의 전도라니!


 다만, 반찬은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어떤 음식점에 들어가도 반찬을 선택할 권리는 없다. 정해진 반찬을 먹을지 말지 선택할 권리라도 주어져서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하지만 그 반찬의 가격은 내가 먹는 한 끼 식사에 오롯이 부과되어 있다. 내가 먹지도 않을 음식을 위해,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을 우리는 매일 1번 이상 받아들이고 있다. 모두의 음식을 위한 암묵적 지출. 일종의 식탁 위의 품앗이 같은 느낌이랄까. 다른 점이 있다면,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안 하고 싶다는 것일 뿐.


 그래서 반찬은 내 것이라기 보단 "우리의 것"이다. 가정집 밥상에서도, 음식점에서도 반찬은 '나'보다는 '우리'를 강조한다. 하나의 음식점 안의 손님들은 또 각자의 식탁에서 반찬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나눠먹는다. 내 반찬은 없다. 우리의 반찬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 이 얼마나 정겨운 한국인의 밥상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다들 알고 있듯이 반찬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은 그리 '정겨운' 모습만은 아니다. 근대화 이후의 산물이기도 하니까.


 모두의 반찬은 "한정적 재화의 경쟁"을 체득화 시킨다. 먹고 싶은 반찬이 멀리 있다면, 젓가락이 오고 가는 시간에 비례하여 맛있는 반찬을 적게 먹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신이 밥을 천천히 먹는다면? 역시 같은 빈도로 맛있는 반찬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차려진 반찬이 많아도 대다수가 공통으로 선호하는 반찬은 한 두 가지로 축약된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 먹으면 내가 못 먹는다.


 그래서 반찬을 대할 때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특히 반찬을 가장한 메인디쉬가 있는 일반 가정식 밥상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쉽게 생각해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떠올려보자! 넉 놓고 있다가는 김치만 건져 먹을지도!) 공공의 재화인 반찬을 빨리 많이 먹을수록 개인의 효용은 높아진다. 단, 체면은 좀 버려야 한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에 체면 따위가 중할까?


 반찬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반드시 한 개가 남는다"는 것에 있다. 반찬은 반드시 식사의 마지막까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개인의 됨됨이를 시험한다. 마지막 남은 반찬을 직접 먹을 것인가? 아니면 권할 것인가? 물론, 있든지 말든지 하는 반찬에는 해당되지 않는 시험이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를 외치며 일어나는 식탁에는 반찬 한 두 개 남아 있는 접시가 보인다.


 어떤가? 이쯤 되면 한국인의 진정한 소울푸드는 외국인이 좋아 죽는다는 비빔밥도, 된장찌개, 떡볶이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반찬이라는 독특한 음식(이라 쓰고 문화라 읽자)이 오늘날 한국인의 정서를 가로지르는 진정한 소울 푸드이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평등의 조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