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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나폐인 Sep 18. 2022

알리오 에 올리오

내 맛대로 사는 면을 발견하다

 밥만큼 많이 만들어 먹는 음식이 알리오 에 올리오(이하 '알리올리')파스타다.


 평생 음식이라고는 직접 만들어 보지 않았던 내가 처음 시도했던 나름의 '요리'도 알리올리였다. 마늘을 좋아하고 올리브기름도 엄청나게 좋아했고, 스파게티나 스파게티니 면도 사랑했기에 3가지가 딱 들어간 알리올리는 딱 맞는 요리였다.


 같은 밀가루지만, 다른 면과 달리 스파게티면은 왠지 모를 '건강함'이라는 선입견이 자리 잡았다. 세상일에 공짜는 없고 했던가. 들이는 시간과 정성만큼 건강한 음식일 것이라는 생각, 나만의 음식에 대한 건강학 제1법칙이랄까. 모든 음식에 깃든 건강의 총합은 조리의 노력에 비례한다.


 그래서일까. 같은 면 중에서 본다면 금방 익어버리는 소면, 면만 씹으면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 중식 중면, 그리고 미안하지만 이름 자체로 불쾌한 인스턴트 라면과 달리 스파게티면은 믿고 먹는 나만의 소울 푸드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기본적인 조리법은 간단하다. 다만, 기본이 어렵다고 했던가. 맛을 제대로 내기 쉽지 않다는 함정이 있는 음식이 알리올리다. 물에 적당량의 소금을 넣고, 스파게티 면을 삶는다. 대락 6~8분 정도 삶는 시간이 소요되나 나중에 추가 조리를 감안해서 목표 수준의 80% 정도에서 빼내야 한다. 그 사이 올리브기름에 마늘 편과 페퍼론치노를 볶아 풍미를 올리고, 면수 1~2 국자 정도로 넣어 소스를 만들어 둔다.


 그다음부터는 만든 이와 먹는 이의 영역이다. 정해진 레시피에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변주를 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조리하든 간에 배신하지 않는 맛이 알리올리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진밥과 고두밥의 선호와 같이, 만든 이와 먹는 이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간혹, 파스타 전문점에 가면 가능한 알리올리는 주문하지 않는다. 실제 메뉴가 없는 집도 많았다. 물론, 건방지게 요리사의 솜씨를 못 믿거나, 음식이 맛이 없어서는 아니다. 그 음식이 다만 내 입에 맞지 않는 것뿐이다. 어떤 집은 육수 맛이 너무 강하고 축축해서 마치 바지락 칼국수를 먹는 느낌이고, 또 다른 집은 너무 밋밋해서 페퍼론치노가 향을 넘어 맛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면이 내가 좋아하는 삶기로 서빙되기에는 그 주방은 나를 모른다.


 소스가 제법 끓어올랐다. 이제부터 고민이다. 오늘은 어떤 방식으로 먹을까? 우선 전통적인 레시피를 따라본다. 면을 넣고, 그대로 좀 더 익힌다. 면에서 나온 전분에 소스가 추가로 걸쭉해질 준비를 한다. 한소끔 끓어 오른 후 불을 끈다. 그리고 여열과 함께 웍질을 하며 면과 소스 그리고 공기를 만나게 해 준다. 어느 정도 지났을까? 적당히 점성이 생기며 면에 소스가 베어든 알리올리를 플레이팅 한다.


 알리올리는 변주가 다양하다. 그리고 그 변주에 따른 맛의 변화가 풍부하다. 크림소스나 토마토소스가 맛을 지배하는 스파게티는 재료나 조리방법에 따라 그 맛의 차이를 쉬이 느끼기 어렵지만, 알리올리는 추가 재료나 조리방법에 따라 많은 차이를 준다.


 다시 시간을 돌리자. 이번에는 나만의 스타일이다. 면수를 '정석보다' 줄인 소스가 한소끔 끓어 오르면 즉시 불을 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아직 덜 익은 듯한 면-한국사람들은 대부분 '덜 익었어' 하는 수준-을 투하하고는 잠시 둔다. 이때 파르마지안 레지아노 치즈를 듬뿍 갈아 넣는다. 여열로 치즈와 면, 소스를 잘 버무려 준다. 그릇에 담아본다.


 노르스름한 면의 봉우리 위로 골든브라운 마늘 편이 자리를 잡는다. 그 옆으로 흰색 접시와의 경계를 살며시 푸른빛이 감도는 올리브기름이 휘돌아 자리한다. 추가로 눈꽃처럼 뿌려진 파마산 치즈가루를 살짝 버무리면 풍미가 살아난다. 면의 꼬독 씹히는 식감과 맛, 올리브기름과 마늘의 향이 강하게 올라온다. 그리고 그 모든 향을 치즈의 짭조름한 간이 단단하게 잡아준다.


 맞다. 만타까레(유화)를 제대로 안 한 레시피다. 생각해보면, 나는 뭐 세상에 잘 융화되어서 살아가나 싶기도 하다. 내게는 내게 맞는 맛이 있지 않은가? 나를 위한 음식, 나를 위한 알리올리조차 굳이 만타까레에 집착할 필요 있을까? 모든 재료가 각각 느껴지는 듯한 프라이빗 알리올리가 그래서 소중하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성화다. 면을 사랑하는 첫째는 국수, 라면, 쌀국수를 해달라고 조른다. 오늘 스파게티는 어떠냐고 물으면 '그건 내 취향이 아니야'라고 받아친다. 오늘은 아이를 위한 알리올리를 만든다. 냉동실의 바지락을 넣고 보다 자작하게 소스를 만든다. 그리고 평소보다 간을 좀 더 잡는다. 봉골레와 같은 비주얼의 바지락 알리올리 탄생이다. 물론 제대로 만타까레 했다. 내 아이는 제법 세상에 잘 어울리기를 바라는 게 아비 맘이지 않은가.  '아빠, 이번 스파게티는 정말 맛있다!'  


 역시 내 입맛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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