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홍콩에 간적이 있었다. 찌는 듯한 더위, 습한 기후를 제법 걱정하고 간 그곳의 날씨는 특별히 괴롭지 않았는데, 아마도 여행에 대한 좋은 기억의 덧씌움이 있었던 덕인 것 같다. (음식도 맛있었고, 더위는 요즘 한국이 더 심한듯...)
홍콩 말은 광둥어다. 일이삼사 발음이 이얼싼쓰로 읽는 보통화와 달린 얏이쌈쎄이...로 읽힌다. 얼핏 발음을 보면 보통화 발음은 우리말과 이질적인 것이 확실한데, 광둥어는 이삼사가 비슷하다. 뭔가 막힌 소리가 좀 더 우리 발음과 비슷하다고 할까? (영미 문화권 사람들이 한국말 듣고 베트남이나 태국말 떠올리는 거 보면, 짜증나지만 조금 이해되는 정도랄까)
장국영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보았던 야반가성 영화부터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영화보단 그냥 노래가 듣기 좋았다. 영웅본색은 아직도 다 보지 않았지만, 2편의 주제가는 장국영의 노래 중 즐겨듣는 노래이기도 하다.
奔向未來日子 분향미래일자(내일을 향해 가자)
이 노래는 장국영의 우수에 찬 목소리로 부르는 첫소절 부터 마음이 찡해오는 뭔가가 있다. 한국어로 음차하면 머우 웨이 만 (응)어 감 띵 딕 씨.... 정도로 시작하는 첫소절인데. 無謂問我 今天的事... 나에게 지난일을 물어야 소용없어요..의 뜻이다.
역시 이 말은 목구멍 막히듯 광둥어 발음으로 불러야 제맛이다. 그런데 노래방에서 부르려 하면, 우웨이원워~ 진톈더스.. 보통화 발음으로 해야해서 자막을 따라 불러야하는 이 사람의 맘을 아프게 한다. 그 맛이 안살아 난다. 목구멍은 막히지만, 부드럽게 흘러가는 그 발음 소리가 이 노래의 매력인데 말이다.
홍콩말 좋아하냐면...
사실, 장국영 노래 빼고는 실제 홍콩말 발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꽉막히고 악센트가 빡 들어가는 된소리의 경연 같달까? 한 문화의 발음을 낮춰 보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개인의 취향에서는 영 빡빡하고 멋없는 발음으로 들린다. 전반부 강세와 비음, 된소리와 막힘 소리가 일반화된 발음은 적어도 내겐 아름답다는 느낌은 없다.
얼마전 공원에 아이들과 놀러 나갔더니, 옆 벤치에서 두세명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집중해서 듣지 않고 있으니 꼭 홍콩말 같이 들리는 것 아닌가? 좀 더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 말에 귀기울였다. 그래도 거리가 있어서 인가, 웅얼웅얼 된소리도 들리고 빠른 말소리도 들리고 도통 못 알아 듣겠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목소리에 익숙해질 쯤, 소리보다 먼저 교복입은 학생들이구나 눈에 들어왔고 그제야 말이 또렷히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 말이었다.
우리 말 발음이 이랬던가? 전반부에 빡 들어가는 악센트는 고정값이고, 비음이 섞여 끌고가는 끝소리도 반복된다. 목구멍이 막히 듯히 내는 소리와 된소리는 빠짐이 없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 SNL에서 봤던 주기자의 목소리 컨셉이 딱 떠오른다.
"이 말투를 정돈해서 하면 주기자가 되겠구나.."
말투 참 많이 변했다. 모르고 지나왔는데, 90년대 서울사투리라고 지난 방송 들려주면, 특유의 나른하고 된소리가 배제된 발음이 들린다. 지금과는 사뭇, 아니 엄청나게 다른 발음이다.
지금의 소리는 뭐랄까, 문자로 치면 줄임말 같은 느낌이다. 소리를 내는 가장 쉽고 빠르고 에너지가 덜 소모되는 방법으로 발음을 간소화하는 느낌이랄까? 우리말 발음이 아름답게 들리길 바랄 뿐인데. 내게 그런 소리는 장국영 목소리 하나로 족한데.
영어의 묵음도 고대어에서는 대부분 발음되었다더라... 말씨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날로 급격히 덥고 습해지는 날씨 마냥, 빠르게 변해가는 말과 소리들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