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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장들은 일식집에서 먹고 우리는 삼겹살집이라? 차이가 나긴 나네.”
양산의 허우대 큰 J의 말에 창원의 Y가 받았다.
“아, 우리는 옛날의 머슴이라고 생각하면 돼. 머슴은 상도 따로 차려주잖아.”
과연 Y의 말이 맞았다. 지주와 머슴이 한 자리에서 즐거운 식사를 할 수는 없었다. 아직까지는. 우리는 언제쯤 그런 사회를 갖게 될까. 그럴 리 없다. 인간에게 위계의 욕망이 사라진다면 모를까. 그만 둬. 실현 가능성 없는 꿈은 고문의 재료가 된다.
“속 편하고 좋지 뭘 그래. 우리끼리 삼겹살 먹는 게 좋다구.”
김해 S의 말에 나도 맞장구를 쳤다. 비정규직 기사가 겸상을 하고 대화에 끼어든다면 버르장머리 없는 가축들이 맞먹으려 든다고 영감님들은 말하리라.
사무실을 나와 똘똘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여기 양쪽에 삼겹살 4인분씩 주세요. 소주도 한잔 주고요.”
모두 5명이었다. 2개의 테이블에 나눠 앉았다. 텔레비전에서는 대선자금에 관한 대통령의 해명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 과거 나는 대통령의 자질을 한 가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사적인 의도나 야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뀌었다. 본인의 욕심 바로 옆에 전체를 위하는 이타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마음에 들었지만 지금 들리는 목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 사회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기득권을 상대하기에는 너무 미약한 수장이었다.
“다른 데 좀 봤으면 좋겠구만.”
내 말에 J가 이렇게 말했다.
“좀 약하기는 약하지요.”
“찍은 사람들 책임져야 해.”
부산의 H가 나와 J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면 전두환 찍은 사람들, 아니 지지한 사람들 책임을 졌나. 자신이 광고한 물건에 대해 연예인도 책임지지 않는데 투표에 대해 책임을? 그러나 변화를 바라는 내게도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우리 같은 비정규직, 도대체 언제 살게 해주는 거야?” “그건 나도 모르지요.”
J가 힘없이 대답했다.
“난 다음에는 민노당을 찍어야겠어. 지금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빈부격차가 심해지기 전에. 유럽에는 좌파가 있어 그래도 사회복지가 낫잖아.”
내 말에 아무도 말이 없었다. 하긴 좌파라면 다들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이니 원! 다들 입 다물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누가 들을까 아직도 무서운지.
“농부의 아들은 농부가 되고 법관 아들은 법관이 되고 있어요.”
“맞아요. 얼마 전 신문에 보니까.”
J의 말에 H가 대답했다.
“아, 농부가 되면 어떻고 의사가 되면 어떻습니까? 돈만 많이 벌면 되지.”
“저런 저런! 그런 생각을 가지니까 세상이 썩어가는 거야. 이건창이 대통령이 됐으면 어쩔 뻔 했어. 대선자금 까지도 못하고. 또 친일을 하고도 그 집안이 대대로 잘 살면 어디 될 일이야?”
“그런 허튼 소리 말고 내 직장이나 좀 알아봐 줘. 버스 기사도 좋고.”
창원의 Y가 불쑥 둘 사이를 훼방 놓았다.
“대형면허는 있어?”
“면허야 10년 전에 따놓았지. 근데 경력이 없으니까 버스 회사에 들어갈 수 없더라고.”
“계약기간이 얼마나 남았어?”
“한 7개월 남았어.”
“나는 그만두면 이라크나 가야겠어. 하루 일당이 30만원이라니까. 한 달이면 도대체 얼마야?”
“가면 위험한데 가족들은 어쩌라구?”
“여기서 죽으나 전쟁터에서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야.”
“쯧쯧 왜 이리 극단적이야.”
여전히 텔레비전에서는 대통령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이구 차떼기 돈, 풀었으면 죽는 사람들 없었을 텐데.”
“아, 죽을 놈은 다 죽게 돼. 살 놈은 살고.”
그때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A카드사다. 나는 주위 사람이 알세라 서둘러 핸드폰을 호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었다.
“담뱃값 5백원은 올리기로 했다면서?”
“담뱃값 올리면 사람들이 정말 많이 안 필까?”
“부자들한테 세금 내라는 소리는 제대로 못하고 애매한 서민들한테만 죽도록 거두겠다는 거지.”
“정부라는 게 그렇지. 약한 사람들한테만 힘을 써. 군대 가야지. 세금 내야지. 죽는 건 서민이야. 변호사, 대기업, 관료, 국회의원 이런 사람들한테는 큰소리도 못 치고.”
“그리고 지역감정 문제 그거 해결할 것 같애? 아니야. 그놈이 그놈이야. 지금껏 이들을 봐왔는데 빨아먹을 수 있는 대로 다 빨아먹을 거야.”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투표는 좋은 놈을 찍는 게 아니고 덜 나쁜 놈을 찍는 거라고 말이야.”
다들 흥분해서 누구의 말도 듣는 것 같지 않다. 마구 떠들어 댄다.
“빈부 격차 줄이기는 개뿔! 부자는 더 많은 돈을 모아 격차를 벌리고 대대로 누리기 위해 고액 과외 시키지. 유학 보내지. 원정 출산하지.”
“그렇다고 한 번에 와이셔츠를 열 장 입겠어, 오입을 한 번 할 걸 열 번 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