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압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지? 수십 번, 수백 번이나 했던 걱정이 퇴근길에 떠오른다. 먼저 아이들 돌에 받았던 금반지, 비디오카메라, 디지털카메라, 홈시어터에 빨간 딱지가 붙을 거야. 이것들을 숨기고 싶어진다. 어디에 숨겨둘까. 아랫집창고, 아니면 친한 동네 할아버지집, 물론 이런 물건들을 들고 나른다면 다들 이상한 눈으로 볼 거야. 밤에 도둑처럼 이것들을 옮겨야 하나.
그때 라디오에서 광고가 나온다. 2000cc 자동차를 타면서 일반엔진오일을 쓴다고요, 하며 가수가 이런! 하고 혀를 차는 것 내지 화를 내는 듯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좋은 집에 살며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엔진오일을 넣으며 사는 사람들은 나 같은 서민들보다 더 좋은 소파가 있을 거야. 침대도 더 좋으니 더 달콤한 키스를 하고 섹스도 하겠지. 그러려면 그들은 아마 입술이 열 개는 될 거야. 이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우울해진다.
그런데 집에 돌아왔을 때쯤 흘러나온 광고는 더 가관이다. 광고는 어떤 것보다 즐거워야 하지 않은가. 적어도 스트레스는 주지 않아야 하는가. 누가 그랬던가. 날씬한 여자가 남자 친구에게 차가 있느냐고 묻더니, 엔크린 보너스 카드가 있냐고 묻는다. 남자가 없다고 하자, 대뜸 여자가 화를 내며 저 갈게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황당한 남자의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연예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자신이 광고한 제품에 대해 결코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한다. 단지 이미지만 팔았을 따름이에요. 하긴 원자력 발전에 대해 장중하게 광고를 했던 탤런트가 얼마나 원자력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아마도 원자력 교수나 반핵운동가만큼 아는 바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다시 말해서 너는 카드를 광고한 모델의 산뜻하고 귀여운 느낌 때문에 카드를 가지면 그만인 거야, 바보야! 그래, 그들을 욕할 수는 없어. 암 그렇지. 그럼 누구를 욕해야 하는가. 신문기사를 쓰지만 거기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법을 만들거나 정책을 집행하거나 사람을 구속하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리고 정작 카드를 과도하게 사용했지만 나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렇다. 나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모두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초인종을 누르자, 직, 직, 탕,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린다. 내가 이승이 아니라 여기 이 집에서 살 날은 얼마나 될까. 서글픈가. 아쉬운가.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인간이 살기 시작한 세월이 그랬어. 파리 뭐 만큼 작은 거였어. 다른 사람들처럼 삶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는 잠시 지구에 다녀가는 밤손님이야. 현관문을 열자, 작은애가 먼저 달려든다. 나는 아이를 안고 빙빙 돈다. 몇 차례를 돌고 나서야 소파에 아이를 내려놓는다. 앉았지만 여전히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이다.
“아빠, 나도, 나도!” 큰아이의 말에 나는 아이를 안고 빙빙 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내내 느끼지 못했던 지구가 빙빙 돈다. 나와 아이를 안고 빙빙 돈다. 도는 동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빙빙 도는 계통발생을 되풀이한 것 같은 생각이다. 몸 뿐 아니라 생각하는 것도 꼭 계통발생을 되풀이 하는 것 같다. 과거 내 조상들이 그런 생각을 한 것처럼 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아이를 내려놓고 나서 빙빙 도는 것을 어쩌지 못해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다시는 이 아이들을 볼 수 없다면 어쩌지? 눈을 감으면 세상이 사라지는 것처럼 아이들이 보이지 않겠지. 혹 내가 원양어선을 타고 바다에라도 나가야 한다면? 그렇다. 가족들끼리 헤어져 사는 사람도 많은데 이렇게 사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않은가. 누구일까. 감사하며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살라고 한 자들은. 아무튼 나는 세상의 곤고함을 지나 평온으로 가고 있다.
얼마 뒤 감기약을 먹자 몽롱해진다. 병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졌을 때 온다. 내 몸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잠시 나를 고통으로 끌어당겨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비눗방울 속에 들어가 날아가는 것처럼 세상이 환상적으로 보인다. 나는 누구를 돌볼 수 없지만 천진한 어린이가 된다. 비눗방울 속에서 보는 세상은 신기함과 무서움은 있지만 지지리 궁상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간 내가 보아온 세상은 가짜가 아닐까. 비눗방울 속이 진짜이고. 나, 아이들, 아내, 직장, 부모, 국가, 모든 것이 시도된 비눗방울일 뿐이다. 언젠가는 터지고 말 비눗방울. 그런데 이런 비눗방울은 누가 만들어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