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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고스 Mar 10. 2024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굳이 굳이 좌우명을 말해야 하는 비상 상황에 대비한 메모장)


좌우명을 가슴 웅장하게 정해봐야 모든 상황에 맞출 수도 없으니 오히려 유연한 게 좋고, 상황마다 취해야 하는 태도가 다르다 보니 좌우명을 따로 품고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가장 보편적으로 명심하고 사는 것.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겸손은 아니다. 당연한 섭리를 덤덤하게 말하는 것이지, 특별히 낮추는 건 아니다. 우주나 지구의 시간에 비하면 인류의 역사는 쥐꼬리에 붙은 먼지 정도이다. 대자연 앞에 명함도 못 내미는 고작 그 정도 역사 안에서도 새로운 발견과 혁명, 패러다임의 전환이 세기마다 비약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때마다 우리 인식과 세계관의 지평선은 끝없이 확장되어왔다. 아는 만큼 보이고 생각하고 상상하게 된다. 지동설이 밝혀진 이후 얼마나 비약적인 과학과 철학의 발전이 이루어졌는가? 신대륙의 발견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용기와 열망을 가져다주었는가? 새로운 발견과 뒤엎음은 사람들의 우물을 하나씩 하나씩 깨부쉈다. 우물이 무너질 때마다 새로운 하늘을 바라보며 태양빛을 쬐었다.


안다고 확신하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내가 무얼 모르는지 아는 것은 객관적인 인지를 가진 사람이다. 한편 무얼 모르고 있는지도 꿈에도 모를 만큼 아득히 먼 개념, 혹은 법칙, 혹은 존재도 분명히 있다. 당연히 그게 뭔지 증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없다'고 하는 것보다는 양심적이다.


새로운 지식과 발견 앞에 겸손하고 배움에 솔직하고자 한다. 지금 가진 지식이나 가치관에 자아를 지나치게 투영하면, 시간이 지나 갈아엎거나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 순간이 와도 그깟 자존심 때문에 기회를 놓쳐버린다. 작은 자존심은 큰 자존심을 낳고, 큰 자존심은 더 큰 자존심을 낳는다. 이윽고 내려놓을 수 없을 정도로 고개가 빳빳해진다. 정말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보다 새롭고 완전에 가까운 그 외부 자극을 갈망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려 노력해야 한다. '자존심'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한다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말도 함부로 뱉지 말고 움츠러들어야 하는 건 아니다. 현재로서 최선의 정보와 논리로 구성한 가치관과 신념이라면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다. 다만 늘 신경 써야 하는 건 언제 마주하게 될지 모르는 '새로운 발견'이다. 새로운 것 앞에서는 겸손을 우선으로 들이고, 비판적 사고를 후에 첨가한다.


가치관과 신념에는 대개 각 사람의 배경에서 비롯한 '감정'이 실려있다. 그렇기에 객관적인 진리가 될 수 없다.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음에도 '그럴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건 대개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감정이 개입한 결과다. 이것을 인정해야 생각을 바꾸고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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