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그 누구보다 싱글맘 싱글대디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당근마켓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설치하거나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중고거래를 하고 싶을 땐 중고로운 평화나라를 이용하는 정도로 충분했고, 몇 년 전, 아니 몇달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서는 당근마켓보다 수십수백 배의 물건들이 거래되고 있었기에 원한다면 훨씬 빠르고 편하게 어떤 물건이든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나와 아내는 당근에 빠져있다. 사실 이전에 중고나라에서 검색하고 거래하던 것보다 더 자주, 더 오래 당근을 이용하고 있다.
우선 기존의 중고 거래와 비교해서 당근마켓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당근마켓이 나의 연령, 취향에 맞춘 상품과 동내 정보를 끊임없이 제공해준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가정의 모든 중심이 아이에게 맞추어져 있는 만큼 우리 부부의 당근 사용의 관심과 목적은 역시 육아용품이다. 끊임없는 우리의 당근질 때문인지 당근마켓의 훌륭한 AI 덕분인지, 요즘 우리는 당근ing을 하며 재밌는 경험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당근마켓이 우리에게 주는 time killing은 우리의 주관심사에 맞추어 상품을 보여주고, 주변 사람들을 연결해준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 아내는 아이가 자라나는 단계에 따라 필요한 육아용품의 키워드를 수시로 바꾸어가며 상품 등록 알림을 받는다. 여기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찾는 상품을 구입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브랜드, 모델, 연식, 가격 등(의 중고가격)을 비교하기 위해 당근마켓에 자주 접속하게 되는데, 여기서 얻는 것은 단순히 상품의 정보뿐만이 아니다. 상품설명을 보고 있으면 우리 주변의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육아 사연을 보게 되는데 이 재미가 의외로 꽤 많은 시간을 잡아가는 것이다. 열심히 비교 분석해보고 사준 아이의 장난감 세트를 막상 아이가 좋아하지 않아서 눈물을 머금고 판매하는 아빠, 갑자기 아이에게 변비가 생겨서 고민해보니 며칠 전 새로 바꾼 분유가 문제였다는 엄마, 백화점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조카 옷 선물이 막상 입혀보니 사이즈가 얼토당토않았던 이모 등. 바로 나의 근처에 나와 비슷한, 나도 겪을 수 있는 이야기가 당근마켓에 있다.
당근마켓이 주는 또 다른 재미는 거래를 통해 직접 성사되는 이웃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대형 아파트 단지가 많은 동내 특성 때문인지 주변에서도 우리 또래와 비슷한 부부와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고, 또 당근마켓에도 그만큼 마침 필요한 육아용품들이 수시로 올라오는 편이다.(그래서 우리가 당근에 더 쉽게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주로 아내의 구매 대리자 역할을 하는 나는 직접 남의 집까지 찾아가야 할 일이 많은데, 갈 때마다 약속이나 한듯한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 몇 달 전 아이의 쪽쪽이를 사러 동내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에서 판매자인 아빠를 만났다.(내가 항상 당근 거래를 하러 찾아가듯 물건을 건네주러 나오는 쪽도 거의 아빠인걸 보면 모든 아이 둔 가정에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쪽쪽이 두 개짜리, 한 뼘도 안 되는 작은 상자였지만 종이백에 신경 써서 넣어준 모습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집에 돌아와 쪽쪽이를 꺼낸 종이백 아래에 뭔가 반짝반짝한 색깔이 눈에 띄어 자세히 보니 하리보 작은 봉지가 몇 개 들어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같은 부모 마음으로 준비한 선물인 건지 실수로 들어간 것인진 몰라도 정겨운 느낌이었다. 이미 거래도 끝난 마당에 작은 간식거리 찾아주자고 다시 연락은 하지 않았는데, 몇 번의 육아용품 당근거래를 더 거친 후 나는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선물이 의도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 번의 우연이 아닌 여러 번 나는 상대 부모와의 간식 나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받았던 하리보부터 레모나, 비타민 캔디까지. 내 또래 아이를 가진 부모와의 짧은 만남(거래) 속에서 나눈 정은 단순히 필요한 물건을 값싸게 사고 판 것에 그치지 않았다. 내 주변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위로한다는 것을 당근마켓을 통해 느끼게 된 것이다. 우리가 받은 정은 식탁 위 작은 파우치에 담겨있다. 우리 부부 모두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내 다른 만남(거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는 하지만 맛이나 크기로 비교할 수 없는 이웃과의 커뮤니케이션의 즐거움을 기대하며 나는 또다시 아내의 당근거래 지시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