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 발의 미사일을 쐈다고 합니다. 그중 절반만이 목표한 곳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건 절반의 미사일이 공격에 실패했다는 뜻이고, 절반의 폭탄만이 사람들의 눈앞에 쏟아졌다는 뜻입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이내 지워버렸습니다.
유튜브에선 가자지구의 상황을 라이브로 보여줬습니다. 약 이천오백 발의 미사일이 쏟아진 곳을 보면서도 폭격이라든가, 전쟁이라든가 그런 건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무너진 도시에선 흔한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그 고요함이 기이해 영상을 끄고 싶었습니다.
카메라는 회색빛 도시의 풀샷을 찍다가 한 중년 남성을 포커싱 했습니다. 그 아저씨는 콘크리트 조각 더미 위를, 그의 집이었을지 직장이었을지 모를 그 잔해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무표정하게 걷다가 또 무심하게 책 몇 권을 주웠는데, 소설책보단 크고 얇은 것이 아마 교과서나 안내 책자쯤으로 보였습니다. 한 권을 줍고 먼지를 살짝 털어낸 후에 다시 걸어가 옆에 있는 책을 줍는 그 행동은 그리 신중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잔해 위에 놓인 책들만 대충 줍는 걸 보니 뭔갈 찾는 것 같지도 소중한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저 폐허에서 책을 줍는 것도, 약간 바랜 흰색책도, 책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것도, 그렇게 몇 발자국 걸어가는 아저씨의 눈빛도. ‘고작’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스쳤고 문장이 완성되기 전에 서둘러 영상을 껐습니다.
며칠 전 사망자가 칠백 명이라는 뉴스를 슬쩍 봤고, 그다음 날 사망자가 이 천명이 넘었다는 뉴스를 보고서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제야 검색창에 전쟁을 검색했습니다. 내 관심의 역치가 그 천삼백 명 사이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실망과 합리화를 동시에 삼켰습니다.
수많은 기사와 영상에서 이 전쟁에 대해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며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이 죽음과 파괴의 의미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사일과 군인과 사망자와 인질의 숫자들이 화면에 기록되고, 폭력과 폭격과 격돌과 진압의 시간들이 나열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전하는 데엔 너무 많은 숫자가 필요했고 셈에 약한 전 금세 아득해졌습니다. 자꾸만 뭔가 무의미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콘크리트 건물이 부서져 내리는 건 꼭 모래가 바스러지는 모양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왜 이리 충격적이었나 생각해 보면 허망함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작 녹아내리는 솜사탕 하나에도 허망한 세상에서 누군가의 마을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건 슬픔보다 더 크게 허망했습니다. 그러니 미사일은 고작 몇 개의 건물만 무너뜨린 게 아니었습니다.
모든 무너져가는 것과 망해가는 것이 느리길 바랐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찰나는 너무 잔인했습니다. 어떤 마음도 보호할 틈이 없었습니다.
전쟁 속에선 인도적 고려와 인도적 우려가 오갔습니다. 인도적 상황 악화를 걱정했고 인도적 배려로 인질 몇몇을 석방하고 인도적 지원으로 물품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도적’을 듣다 보니 그 의미가 헷갈려 사전까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니, 정말이지 복잡한 세상이네요. 언어까지 무용해질 것 같습니다.
사실 무의미하다거나 무용하단 건 이 글이 제일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한 문단 한 문단 써 내려갈 때마다 자신이 없어져 며칠 동안 숨겨두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삭제되지 않은 기록에는 뭐든 남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계속 쓰자면,
사실 그 폐허에서 건질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쓸만한 건 전부 큼직한 콘크리트 조각 밑에 깔려버렸고 그 위에 또 자잘한 조각이, 그 위엔 더 자잘한 먼지들이 잔뜩 쌓였으니까요. 그럼에도 뭔갈 줍는다는 건 그가 폐허에서 보일 수 있는 유일한 품위였습니다. 무슨 연유에서 폭탄이 쏟아졌든, 그로 인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무너졌든, 그 밑에 깔린 것이 얼마나 마음 아프든 간에 아저씨에겐 그만의 존엄함이 있고 그건 계속될 테니 그가 주운 것은 종이 쪼가리든 소설이든 상관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전 그가 지켜낸 품위를 오래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원한 건 없다지만 존엄만은 오래 유지되었으면 합니다. 이 폐허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것을 목격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불행 중 다행이 아니라 정말 큰 다행입니다.
comment,
어쩐지 이 글을 쓰면서 계속 생각나는 책이 있었습니다. 전쟁이나 폐허랑은 전혀 상관 없는 내용이었는데 참 이상하지요. 그래서 공유하자면 황정은 작가님의 <계속해보겠습니다.> 입니다. 계절을 타는 책은 아니라 언제든 여유가 있는 아침에 읽으면 적당할 듯 합니다.
그렇게 금방 망하지 않아.
세계는,하고 덧붙이자 나나가 말했다.
그렇게 길게 망해가면 고통스럽지 않을까.
단번에 망하는 게 좋아?
아니.
그럼 길게 망해가자.
망해야 돼?
그렇게 금방 망하지는 않겠다는 얘기야.
_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한편 생각합니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나쁜 걸까.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와 순자 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_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