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독의 목소리에게

by 강유원

누군가 내게 “책을 참 좋아하시는구나.” 하면 겉으론 민망한 척 웃지만 속으론 그리 순수하지 않은 생각을 한다. 책에 대해 순도 100퍼센트의 애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 심신안정이나 허영심을 위해 읽기도 했고, 어떤 작가에 대한 애정과 질투가 기괴하게 섞인 집착에서 읽기도 했고, 가끔은 현실도피의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독서가 취미처럼 보이는 사람이 되었고, 어쩌면 스스로도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책과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최초의 책만은 기억이 난다. 내게 최초의 책은 질투였다.


2000년대 초반, 주말 오후 3시가 되면 모든 어린이 채널에선 약속이라도 한듯 교육방송을 틀곤 했다. 어른들의 입장에선 아이들이 공부하기 가장 적합한 시간이라 생각했겠지만 오전 내내 도파민을 뿜어내며 놀던 아이들에겐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느적거리며 티비 전원을 끄고 나면 한순간 집이 고요해졌다. 다들 날 빼고 무슨 재밌는 걸 하고 있는지 궁금해 참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럴 때마다 난 망설임 없이 안방으로 향했다.


활짝 열린 안방 안에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는 아빠가 있었다. 여전히 애니매이션의 열기가 남아 어수선한 거실과 달리 벽 하나 너머에 있는 안방은 나른한 주말 오후의 차분함에 가득했다. 순식간에 다른 세계에 발을 딛은 그 기분은 사랑과 참 닮아있어 난 아빠의 곁으로 뛰어들듯 눕곤 했다. 굳이 굳이 아빠와 책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이해도 못할 책에 대해 물어봤다. 재밌어, 아빠? 무슨 내용인데? 우와, 엄청 많이 읽었다. 언제 끝까지 읽어? 이만큼 남았네? 여기 누가 접어놓은거야? 그림은 없어? 다 글이네. 오, 여기 그림있다! 그러다 할말이 다 떨어지면 책 한 페이지를 누가 더 빨리 읽는지 대결하자며 아빠를 귀찮게 하기도 했다. 시작!하고 외치곤 문장 단위로 이해할 수 없던 책을 활자로만 또박또박 읽었고 내심 반칙으로 몇 줄씩 뛰어넘기기도 했다. 그 대결의 승률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질 때면 꼭 다음 페이지로 다시 한판 하자고 했으니 아마 아빠는 매번 못내 지는척 해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 책 읽는 속도는 이 시절의 승부욕에서 시작되었다.


해가 지고 배부르게 먹은 저녁이 소화될 때쯤엔 엄마의 서재로 향했다. 공부하는 엄마를 방해할 수 없어 살짝 연 문틈으로 방안을 훔쳐봤다.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던 언니가 뒤에, 내가 앞자리였다. 불꺼진 좁은 방 안엔 조그마한 원형 스탠드 빛에 반사된 엄마의 옆모습이 보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잔뜩 집중한 서늘한 눈매에 우리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내게 활짝 웃는 얼굴을 가르쳐준 엄마의 무표정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난 그 표정이 낯설어 당장 달려가 엄마를 웃음짓게 만들고 싶은 충동과 숨죽이고 쳐다보고 싶은 마음이 이리저리 섞였다. 이미 요란스럽게 열리는 문 경첩 소리에 들켰겠지만 숨소리마저 잘 참으며 훔쳐보았다. 머지 않아 아빠가 문틈 사이를 온몸으로 가로막으며 우리를 다른 방으로 안내하겠지만. 낮에 엄마가 서재에 없을 때면 엄마의 책상에 몰래 들어가 앉아보곤 했다. 엄마가 쓰던 주황색 귀마개를 귀에 끼워보고, 형광펜을 열어 아무 단어에나 그어보기도 했다. 공부한 흔적이 가득한 사전을 뒤적거리며 종이 냄새도 맡아봤고 책장에 꽃힌 책을 괜히 뺐다가 순서를 까먹어 맘대로 꽃아놓기도 했다.


그러니 최초의 책은 질투였다. 책이 나보다 재미있어 그들의 시간을 가져가는 건가 싶어 괜히 건드려보다가 익숙한 장남감이 되었다. 하지만 사실, 어리숙한 감정을 차치하고 기억을 되돌아보면, 책 때문에 빼앗긴 시간보다 책 덕분에 함께한 시간이 더 많았다. 책을 미워하는 마음이 진해지기도 전에 책이 애틋해졌다.


우리는 매일 밤 책을 함께 읽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오면 그들의 품에 안겨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난 시간을 독점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 온전한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책을 신중히 골라야했다. 결국 매번 비슷한 책을 골라오긴 했지만 말이다. 책등을 하나하나 읽으며 이 책을 함께 읽는 상상으로 고민하던 그때부터 난 행복을 유예시키는 기대감이 얼마나 벅차오르는 것인지 깨달은 것이다. 여전히 내겐 책등을 오래 훑는 버릇이 있다. 도서관에서나, 친구의 집에서나, 카페에서나 책장을 보면 습관적으로 시선을 돌려 찬찬히 훑곤 한다. 함께 읽을 책을 고르기 위한 그 신중한 10분이 내겐 체화된 행복이었다.


그 시절 읽던 책의 끝자락엔 꼭 몇개의 질문들이 있었다. “소중한 물건을 빼앗긴 주인공의 기분은 어땠을까요?”나 “내가 그 인물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같은 학습적인 물음이었다. 엄마는 그 질문들을 놓치지 않고 꼭 묻고 넘어갔는데, 사실 난 민수의 기분도, 초롱이의 행동에도 큰 의문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답할 말이 없었지만 대답을 기대하는 엄마의 눈빛에 “속상했겠다”, “왜 그랬을까, 모르겠네.” 같은 단순한 대답을 했다. 그러면 엄마는 질문을 다시 설명해주며 대답을 바랐지만 난 그저 다음 책을 더 읽고 싶었다. 어쩔 땐 책장을 넘기려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버티거나, 다시 앞장으로 넘겨버리는 행동으로 졸린 엄마의 속을 터지게 하기도 했다.


가끔 시간이 날 두고 흐르는 것만 같을 때면 그 시절 붙잡았던 동화의 마지막장이 떠오른다. 그런 얇은 종잇자락이 아니라 그 안온한 시간을 붙잡고 싶었던 작은 손이 떠오른다. 붙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어린 마음과 못 이기는 척 세 권 정도 더 골라 오라며 웃던 그들의 표정이 떠오른다.


그 시절 그들이 내게 조근거렸던 목소리는 이제 내 묵독의 소리가 되었다. 자기 전 속으로 읊조리며 읽는 책들은 애틋할만큼 다정한 목소리로 읽히는데, 그건 아마 그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내 안에 남은 탓일 것이다. 숨소리가 담긴 낮고 담담한 목소리, 졸음기가 섞였지만 유쾌함을 잃지 않은, 하루 중 가장 부드럽고 고요한 시간을 함께하는, 이 행복에 대한 따뜻한 확신이 담긴 우리의 목소리.


그 땐 책이 있으면 늘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도 책 근처에 얼쩡거리다 보면 행복 언저리에 닿은 기분이다. 그러니,


네. 책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책에 얽힌 우리의 추억을 소중히 아끼고 있습니다. 여전히 당신의 목소리로 책이 읽힙니다. 여전히 당신의 목소리로 세상을 읽고 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 시절 당신이 읽어준 모든 사랑에 감사하며,

2023.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