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와 한집에 있다 보면 제일 많이 마주하는 광경이 싸움이다. 참 갖가지 이유들로 싸운다. 싸움이 시작되면 일단 나는 내 위치부터 정한다. 세탁실에 가서 빨래를 하거나 주방을 어슬렁거리다 설거지 감이라도 발견하면 열정적으로 해댄다.
내가 개입해서 내려준 결론엔 늘 억울한 사람이 생겼다.
그 뒤론 참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없는 사람인양 조용히 시간을 벌고 있으면 막내가 잔뜩 억울한 얼굴을 하곤 아직 못 다한 이야기를 제 입장에서 쏟아 낸다. 잘못 한 게 하나도 없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냐고 맞장구를 쳐주면 좋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라고 말해준다.
훈훈한 마무리는 쉽지 않고 막내의 눈빛도 물러서지 않는다.
‘누나와 형의 입장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내가 제일 중요하다’ 라는 마음이 읽힌다.
다음날 같은 이유로 또 싸운다.
며칠 전 남편과의 말다툼을 복기해 본다. 별거 아닌 시작, 나는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을 나열했다. 마지막에 “입장을 바꿔서 한번 생각해봐” 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이들의 싸움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시작과 끝
내 눈에 물러서지 않겠다던 막내의 눈빛이 얹어 진다.
이해받고 싶은 맘 너도 나도 이맘이 간절하다. 그런데 이해를 받고 싶은 마음의 크기만큼 나는 다른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나?
생각해 보면 나는 잘 싸웠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대방이 있으면 집요할 만큼 따져 묻고 대체 왜 그런 거냐고 궁금해 했었다. 그러나 이제 싸울 일이 있거나 그런 관계가 감지되면 슬금슬금 피하며 멀어진다. 무엇보다 싸우고 나서 치러야할 그 뒷수습이 귀찮다.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기보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맘이 더 크다. 아이들에게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고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게 쉬운 것처럼 말해 왔다. 그런데 상대의 마음은 고사하고 내 맘을 알고 그걸 진실하게 표현 할 수 있는 어른이 얼마나 될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 생각을 온전히 다 끄집어 내놓고 좋았던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지 못하다. 마음은 마음이라서 무시되기 쉽다 보니 꾹 눌러 두는 것으로 처리해왔다.
아이들의 싸움을 지켜보다 보면 제일 신기한 것이 뒤끝이 없다는 것이다. 방금 싸운 사람들 맞나 싶게 잘 논다. 나를 들어내고 온전히 보여주는 일, 아이들은 이 과정을 적극적으로 치러 낸다. 내 맘은 이렇다고 그래서 화가 났다고 내 맘을 제대로 알라고 상대가 못알아 먹는 것 같으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격렬하게 본인을 다 들어내고 싸운 아이들에겐 뒤끝 따윈 없다. 애매하게 뒤끝이 긴 건 오히려 나다. 나를 솔직하게 내보이지 않으면서 상대를 이해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관계에 뒤끝이 생기는 건 자연스럽다.
그렇게 이해받고 싶어 했으면서도
“그럼 니 맘 얘기해봐” 라고 말하면
“그걸 꼭 말로 해야되? ”
“여태 내맘도 모르고 라며 성을 내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상대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을 생각해 보라는 말을 쉽게 해왔다. 그러나 이해는 노동의 언어다. 적극적으로 이해하자 덤벼도 오해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상대방의 상황을 아는 일에 주춤 거리지 않고 나를 표현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