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를 주체할 수 없어 미용실에 전화를 걸어본다. 담당 디자이너가 출산 휴가 중이란다. 급한 대로 다른 미용실을 찾아본다.
들어간 곳은 오가는 길에 있는 작은 미용실이다. 원장님이 백발의 긴 머리를 질끈 묶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다. 처음 이 미용실이 들어섰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큰 미용실이 많은 동네에서 이렇게 작고 초라한 가게가 유지가 될까, 유행에 민감하고 까다로운 여성들의 머리를 나이도 많아 보이는 저분이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손님이 꽤 많다. 일단 믿고 들어간다. 원장님이 권하는 대로 머리를 맡기고 앉아 있는데 여러 손님들이 와서 기다린다. 직원 없이 원장님 혼자 일하려니 분주하다. 전화를 해 아내를 부른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걸음걸이가 느린 할머니가 들어온다. 머리를 말리는 것과 청소하는 것을 돕는다.
머리에 열을 가하며 앉아 있는데 할머니가 묻는다. "식빵 좀 줄까요? 우리 간식이 옥수수식빵 얼린 건데 꽤 맛있어요."라 한다. 배가 고프던 참이라 고맙다 하고 얼린 식빵을 먹는다. 원장님 부부는 얼린 옥수수식빵을 자주 먹는데 허기도 면해지고 맛도 좋단다. 옥수수식빵만이 언 채로 먹어도 맛있단다. 생소한 맛이었지만 다 먹고 나니 든든해진다.
이 미용실 벽에는 그림 액자가 많이 걸려 있다. 원장님이 그린 거란다. 주문도 받는다고 쓰여 있다. 예전에 그림을 그리던 분인가 보다. 공모전도 준비 중이란다. 예술을 하던 분이라서인지 머리를 만지는 손끝이 남다르다. 힘이 있으면서도 섬세하다. 강약을 주며 고데기를 사용하는 손짓이 마치 붓질을 하는 것 같다.
파마가 다 끝나 결제를 하는데 새삼 원장님이 대단해 보인다. 초반 몇 개월은 손님이 없어 분명 문을 닫을 거라 여겼는데 여기까지 이르렀다. 내외가 모두 칠십을 훌쩍 넘기신 거 같은데 매일 밤 12시까지 영업을 한다. 밤늦게 오는 손님도 많단다.
얼마 전 모임에서 노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노년이 아직 먼 것처럼 말하지만, 도둑처럼 중년이 왔듯이 짐작하지 못하는 새 노년도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에 다다를 것이다.
노년의 평온함을 노래했던 박경리 작가가 떠오른다.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라고 고백했던 작가는 이십 대에 남편과 아들을 여의고 가난과 속박 속에서 가장 노릇을 했다. 신산한 삶을 살았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고 오로지 시와 소설로만 말했다. 글 쓰는 후배들을 아껴 많이 베풀었고, 수시로 불러 배불리 먹였다. 그런데 사위(김지하 시인)가 유신 독재에 저항하여 투옥되자 하루아침에 모두들 발길을 끊었다. 골목 저 끝과 이 끝에서 마주치면 돌아서 나가는 그들을 보고, 방문을 닫아걸고 세상과의 정신적 연결도 끊고 써 내려갔다. 근심 많은 세상에서 평생 글로 내면을 다스렸다. 불가피한 불행을 성숙의 디딤돌로 삼아 그 정한을 작품에 녹여냈다.
여든이 넘어 고혈압, 백내장, 황반변성 등으로 몸이 아프고 앞이 보이지 않아 비틀거릴 때도 “남보다 더 살았으니 아픈 게 당연하다. 억울할 것 없다.”라고 했다. 죽음을 오래 숙고하여 생의 마지막을 두려움이 아닌 ‘끝남에 대한 안도감’으로 수용했다. 엄살 부리며 어설프게 세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는 분이다.
오랜만에 ‘토지’를 꺼내 들며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옥수수식빵을 꺼낸다. 속이 출출할 때 먹는다. 달콤한 케이크와 쿠기로 단련된 입맛에는 이 담백한 간식이 다소 밍밍하지만 자꾸 먹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