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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아

"외로워서요. 외로워서 시를 썼습니다.”
한국시인협회가 주관한 ‘제2회 어르신의 짧은 시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분의 소감이다.
이번 공모전에는 8,500편이 넘는 응모작이 접수됐다고 한다. 당선작들을 읽어보니 90세가 넘으신 분들이 많다. 꾸미지 않은 소박한 언어로 마음속 상념을 써 내려간 시의 소재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 배우자에 대한 애증, 인생의 허무함 등 다양했다.
시 공모전의 시를 읽고 나니 문득 영국 시인 셰익스피어가 떠오른다. 연휴나 명절 등이 지나고 번잡한 마음을 다독이고 싶을 때 나는 고전을 읽는다. 영국인이 가장 사랑한다는 시인이자 극작가인 셰익스피어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고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형태로 각색되어 왔다. 그래서인지 읽지 않고도 읽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한다.
처음 셰익스피어를 읽었을 때는 예상보다 어려워서 놀랐다. 모든 문단이 시로 이루어져 있고 은유적 표현이 많아 소설만 읽던 나에게는 조금 어려웠다. 다 읽고 났을 때는 권선징악의 막장 드라마를 한 편 본 느낌이 들었다. 인기 많은 TV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이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꽤 받는다는 게 이해가 갔다.
이번에 다시 읽은 책은 4대 비극의 마지막 작품 『맥베스』이다. 권력욕에 사로잡혀 잔혹한 살인과 협잡에 가담해 왕이 되지만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내용의 맥베스는 인생의 중요한 근본을 보여준다. 장중하고 위엄 있는 언어의 대서사시에서 우리는 나약한 인간에 연민을 느끼며 인생을 고찰해 보게 된다.
어르신 시 공모 대상 수상을 하신 분은 은퇴를 하고 외로움에 젖어 있을 때 가장 돈이 안 드는 취미생활이 무언가 찾다 시를 선택했다고 한다. 시를 쓰며 외로움을 달래게 되었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한다.
어떤 연유로 선택했든 나의 취미생활이 취미로만 머무는 게 아니라 내 정체성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로만 국한하지 않고 때로는 시인으로 문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안하고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위한 정신의 보험을 드는 게 아닐까 싶다.
나 역시 늦은 나이에 글 쓰기를 배우고 있다. 어설프게나마 글을 쓰다 보면 인지하지 못했던 내 내면을 알게 되어 놀라기도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글 쓰기가 정서에 안정을 주고 사람의 품을 넓게 만들어주나 보다.
어제 쓴 글을 오늘 읽으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우가 많아 나 혼자 글을 썼다면 오래 지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같이 글 쓰기를 하는 벗들이 있어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는다. 글벗들이 써 온 글을 읽으며 거기에 쏟아부었을 정성과 노력을 헤아려본다. 저마다 속을 내보이지 않는 시대에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 있는 글을 쓴 벗들의 작품을 읽어본다. 절로 존중하는 마음이 우러나며 그 시간 진정한 문학 공부를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의 부끄러움을 아는 자기 이해에 도달하고 관대함을 가질 때 깊이 있는 글이 쓰여짐을 깨달아간다.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일은 혼자서는 할 수 없으며 누군가와 함께 해 나가야 하는 것 같다. 문학 역시 사람 사이에서 배우고 익힐 수 있다는 것, 타인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해 가는 문학수업은 사실은 인생수업이다.

저렇게 지는 거였구나
한 세상 뜨겁게 불태우다
금빛으로 저무는 거였구나

-‘저녁노을’ 이생문(74)
(제2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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