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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여행

by 난아

"형제들끼리의 마지막 여행을 가려하는데 혹시 주말에 시간 내줄 수 있니?"

어머니 형제 칠 남매 중 남은 네 분이 함께하는 여행에 동행해 줄 수 있냐는 이모의 부탁이다. 다들 연로하여 아마도 다시는 같이 여행을 가지 못할 것 같아 '마지막 여행'이라 한 것이다.


올해 아흔인 큰 이모는 황반변성으로 한쪽 눈은 실명 상태이고 다른 쪽 눈도 녹내장 때문에 거의 안 보인다. 게다가 귀 역시 보청기를 끼었어도 잘 듣지 못한다.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조금씩 걸을 수 있다. 옆에서 도와주는 이가 없으면 혼자 식사도 못 하는 상황이다.


삼촌은 인지장애가 있어 자꾸 기억을 잃는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상실감에 젖어 가까스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으며, 막내 이모는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로 목발이나 휠체어 없이는 다니지를 못한다. 이분들을 막내 이모부 혼자 강원도 속초까지 이끌고 다니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하여 함께 하자는 이모의 부탁이다.


별일이야 있겠나 하며 가볍게만 생각했지 고난의 여정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속초로 가는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간식을 사 먹고 출발하는데 큰 이모가 속이 울렁거린다고 하더니 먹은 걸 내보낸다. 그걸 본 삼촌도 비위가 상했는지 같은 행동을 한다. 나는 부랴부랴 물티슈며 휴지를 꺼내 뒤처리를 했다. 초반부터 심상치 않다.


케이블카를 타고 웅장한 설악산 풍광을 보고 나서 근처 사찰에 들르는 동안 나는 이모 옆에서 "바닥 조심하세요. 여기는 턱이 높아요. 미끄러워요"라며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이모의 손발 역할을 한다. 식당에서는 반찬을 수저에 놓아드리며 "이건 버섯볶음이에요. 미역국 뜨거워요" 등 잘 드시게끔 도움을 드린다. 머리로는 다 이해하는데 몸의 기능이 따라주지 못하는 노년의 안타까움을 이모와 같이 경험한다.


이른 새벽,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다들 일어나 있다. 시계를 보니 5시 반이다. 좀 더 자고 싶은 걸 참고 큰 이모에게 따뜻한 물을 드리며 화장실 수발을 든다. 낮에 다니는 동안 잠깐 손을 놓쳐 이모가 넘어질 뻔해 놀란 기억이 있어 행여라도 잘못돼 고관절이나 엉덩이뼈에 금이 갈까 싶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그렇게 총명하고 깐깐한 교사였던 큰 이모가 지금은 거의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하루 세 시간 함께 해주는 요양보호사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어울리던 친구분들도 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혼자 남은 외로움이 이모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싶다.


오후에는 카페에 가서 사진을 찍고 차를 마시고 앉아서 쉰다. 모두 별말 없이 있지만 굳이 대화를 안 해도 같이 있는 이 시간이 평화롭다. 나는 큰 이모 옆에서 잘 못 들으시는 이모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고함을 치다시피 말한다. 이모는 그 와중에도 쿠키며 먹을 것을 내 손에 쥐여준다. 그래서인지 더 특별한 맛이 나는 듯하다.


우여곡절 많았던 이틀 간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데 저녁밥을 먹는 건지 피곤을 먹는 건지 자각도 없다. 헤어지는 길에는 큰 이모와 삼촌이 와서 악수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네가 없었으면 나는 개밥에 도토리였을 거야. 여행을 방해만 하는 찬밥 신세 늙은이였을 텐데 네 덕분에 즐거운 여행이었다"라는 큰 이모의 말에 가슴이 찡한 게 모든 피로가 다 가신다. 마지막이 좋은 여행이라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초고령 사회가 되어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퍼센트가 넘는다고 한다. 겪어보지 않으면 체감하지 못하는 사실 "누구나 노인이 된다"를 다들 잊고, 마치 나만은 영원히 나이 들지 않을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산다.


이번 여정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체험이었다. 외모는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지만 마음은 여전히 소녀 소년 같고, 노년의 불편함을 토로하지만 노년에서야 느낄 수 있는 여유와 관조를 엿볼 수 있었다.


일상을 벗어난 시간을 함께 즐기고 마음을 나누며 이번 여행의 보람을 느꼈다. 우리는 서로를 인식하고 경험하며 이틀 밤을 함께 한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함께 한다는 건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감수하며 서로의 식성이나 습관, 기호를 알아가는 것 아닐까. 연로한 이모 삼촌을 돕기 위해 동행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수혜자였고 같이 하는 공간을 함께 만들어 나간 것이었다. 자신의 시간을 서로를 위해 쓴 거였다.


나의 노년을 미리 본 것 같은 체험 속에서 나이 듦의 경건함과 숙연함을 느꼈다. 지난하고 평탄치 않은 삶이었겠으나 살아남아 무탈히 노인이 되었음에 어른들은 감사한다. 그리하여 삶에 대해서는 겸손해지고 사람에 대해서는 더 너그러워지는 그분들을 보며 나도 노년에 저렇게 주위에 귀감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생명, 노년, 나이 듦을 바라보는 시선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삶의 고귀함과 소중함을 되새겼다고 할까. 값진 여행의 경험으로 이제는 그 어떤 경우에도 세상을 쉽게 냉소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 이모, 삼촌의 이야기는 곧 우리 모두의 이모, 삼촌의 이야기이다. 미래에 내가 마주할 현실이기도 하다. 이번이 그분들의 마지막 여행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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