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멈추라 할 때, 나의 우주는 팽창하기 시작했다

55세 계량경제학 박사, 세상의 시선 밖에서 진짜 공부를 시작하다

by 박정수

며칠 전에 지난 1년간 급여는 없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못 사는 나라, 덜 선진화된 나라로 인식되고 있는 몽골 관련 자문활동을 접었다. 고용계약이 된 상황이 아니고, 잘되면 보수를 받는 그런 형태의 소수정예 공동체에 몸과 꿈을 담았었는데, 세계적인 건설업의 불황이 더 길어지면서 결국 나는 급여를 주는 길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작년 말 몽골을 처음 방문했을 때 거리에서 밝게 웃던 중학생들의 얼굴, 공항에서 시내 호텔까지 4시간이 걸려 도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매연, 그리고 60대라는 기대수명, 고비사막의 황사와 겨울철 석탄난방으로 인한 미세먼지 등 내가 인생의 마지막을 바치려 했던 몽골인데, 그만 둘수도 있다 하고 사무실을 나왔을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서운하고 한심하고 집사람과 가족들에게 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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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를 하면서 호텔사업계획서도 만들고, 몽골정부 태양광발전사업에도 지원을 하는 등 소위 말하는 문과생의 영역을 분야에도 도전을 해야 하는 등 많은 공부도 해야 해서, 이제는 일정 수준에 올랐는데, 포기하려니 아쉬움도 크다.


어제는 스트레스를 푼다고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에 올랐는데, 매번 5K를 완주한다고 있는 야생마처럼 뛰고, 걷고 했던 내가, 체 3분을 뛰지 못하고 포기하고 그냥 천천히 걷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내가 지난 몇 주간 풀지 못했던 연구는 끝을 냈고 아래와 같이 그래프도 그릴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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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족이 10년을 해외 유학을 해서 약 20억이 들었는데, 기회비용으로 치면 안 벌고 쓴 것이라 50억은 되지 않을까 한다. 그냥 유학을 가지 않았더라면 가족들이라도 더 편하게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유학을 간 것이 후회가 아니지만 가끔 돈자랑하는 주변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부러운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의 솔직한 글을 쓰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저는 ‘박사 하고 노는 사람’입니다. 쉰다섯의 나이, 호주에서 받은 계량경제학 박사 학위. 이력서의 이 두 줄은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과잉 스펙’이자 ‘나이 든 신입’이라는 모순된 딱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학교, 연구소, 기업.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경계인. 그것이 저의 현실이었습니다.

“학사만 나온 나도 회사 잘 다니는데, 박사까지 하고 왜 저러고 있나.”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나.” “매번 잘난 체, 아는 체는 혼자 다 하더라.”


동창들의 술자리에서,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들려오는 말들은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가슴에 박혔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서러움보다, 시대에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보다, 나를 규정하고 재단하는 주변의 이런 시선이 때로는 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박사 학위가 보장된 미래의 증표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적응 못 하는 괴짜의 낙인이 되는 현실 앞에서 수없이 좌절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이 닫혔다고 생각했을 때, 역설적으로 가장 큰 문이 열렸습니다. 바로 제 자신에게로 향하는 문이었습니다. 세상이 정해준 길을 갈 수 없다면, 내 안의 지적 호기심이 이끄는 길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계량경제학의 틀에 갇혀 있던 제 머릿속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질문들이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인공지능의 예측 모델을 양자역학의 파동이론과 연결할 수는 없을까?’, ‘세상의 모든 불확실성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아름다운 수식은 존재하지 않을까?’


저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놀고 있는’ 시간에, 인공지능과 양자역학, 파동이론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월급도, 직함도 없는 이 공부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학위나 경력을 위한 공부가 아닌, 앎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되는 순수한 지적 유희였습니다. 경제학의 패턴 분석과 인공지능의 딥러닝, 그리고 양자물리학의 확률적 세계관이 제 머릿속에서 충돌하고 융합하며 새로운 별들이 태어나는 순간, 저는 세상이 주지 못했던 희열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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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습니다. 가끔 기고를 하며 버는 돈은 생활비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일’과 ‘성공’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려 합니다. 누군가는 월급이 찍히는 통장만이 ‘일’의 증거라고 말하지만, 저는 흩어진 지식의 조각들을 연결해 새로운 생각의 지도를 그려내는 이 과정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나이 듦이 멈춤이나 퇴보를 의미하는 사회에서, 저는 감히 계속해서 지혜롭게 나아가고 싶습니다. 장년의 지혜와 청년의 호기심을 모두 품고, 세상이 만들어 놓은 좁은 길 밖에서 더 넓은 세상을 탐험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저는 세상의 기준이 아닌, 제 우주의 법칙을 따라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혹시 저처럼, 세상의 시선 속에서 고독하게 자신만의 탐험을 계속하고 있는 또 다른 ‘장년의 탐험가’가 있다면 조용한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브런치스토리에서 본 생각 외로 많은 퇴직을 한 작가님들의 글도 의미를 두고 읽었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우리의 가치는 결코 월급 명세서에 있지 않다고. 이 고독하지만 충만한 탐험의 길 위에서,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젯밤에 어디에 이력서를 넣어 보라고 문자가 왔는데, 이 글을 먼저 쓰고 있어요. 그래도 감정의 동물인 제가 마음을 추리는 것이 먼저인 것 같아요. 브런치스토리의 글들은 제가 수십 년간 다음 카페, 네이버블로그 등에 기록했던 글들을 통합한 내용입니다. 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여러분의 인생 여정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어서 빨리 본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 결국 다 잘 해결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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