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학이야기 시리즈
1992년 늦여름, 나는 가족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김포공항에서 유학가방이라는 대형가방에 이삿짐을 분산시켜서 무게제한을 통과했지만, 예비군 관련 신고가 미필이 되었다고 해서 이를 처리하는 동안 비행기는 하늘로 이미 날아갔고, 다행히도 당일 밤비행기의 맨 뒷자리를 배정받았다. 부잣집 아들로 유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POSCO라는 좋은 직장에 취업한 아빠 덕에 미국행에 동반하는 큰딸과 집사람에게는 오히려 고생길이 훤한 그런 출국이었다. 딸아이가 공항 면세점에서 사달라고 한 작은 인형을 가슴에 꼭 품고 우리는 미국으로 향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큰 딸과 아내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이 난다. 무사히 뉴욕공항에 도착해서 하루를 보낸 후 다음날 보스턴으로 가기 위해 다시 JFK에서 발권을 했다. 비행기표가 23 열이라 어제의 비행기보다 훨씬 판자리에 배정을 받았다고 좋아했는데, 그 비행기가 소형비행기라 역시 맨 뒷자리였다. 불행히도 그날은 미국 남부에서 심한 태풍이 부는 등 기상악화로 인해 비행이 취소되었다가 처음 이륙하는 비행기라고 들었는데, 하늘에서 그 작은 비행기가 요동을 치다 못해 연속으로 2번 낙하까지 엄청난 경험은 한 후 보스턴의 로건 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길은 인생 처음인 해저터널을 통과했는데, 솔직히 바다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듯한 신비로움보다는 공포감이 더 컸다. 차창 너머로 펼쳐지는 보스턴의 풍경은 마치 오래된 유럽 도시에 발을 디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찰스강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도심을 휘감고 있었고, 그 위에는 강바람을 가르며 조정 연습을 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미국이 아니었다. 내가 알던 미국의 이미지보다 훨씬 더 낭만적이고, 섬세하며, 부유하고, 품위 있는 모습이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보면 찰스강은 여전히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고, 그 강변에는 조깅을 하는 시민들과 조정 연습을 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학교의 강건너에는 MIT가 있고, 보이지는 안지만 차로 10분 거리에 Havard대학교가 있다. 또한 보스턴의 지하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였다. 1897년에 시작된 미국 최초의 지하철은 도시의 심장을 연결하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나는 그 오래된 지하철을 타고 도시 곳곳을 탐험하며, 보스턴이 단순히 현대적인 도시가 아니라,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곳임을 깨달았다. 특히 찰스강을 지나 하버드대학교로 가는 빨간색 전철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차로는 10분인데, 우리 집은 2호선 신촌역과 같은 출발역이고, 강남방향으로 가서 당산역에 해당하는 역이 Harvard대학교역이라 45분이 걸린다. 보스턴의 상징인 옛날 건축물들과 현재식 고층건물이 조화가 된 최고의 Photo-zone이 되기도 한다.
내가 살던 Commonwealth Avenue의 집 앞에는 1879년에 지어진 교회가 있었고, 나는 종종 그 교회 앞을 지나며, 보스턴이 품고 있는 깊은 역사를 느꼈다. 이 도시의 건물들은 단순한 벽돌과 돌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유산이었다. 보스턴 차 사건은 이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1773년, 이곳에서 시작된 혁명은 미국의 독립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나는 찰스강을 따라 걷다가, 그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지나며,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자유와 저항의 정신을 느꼈다. 보스턴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도시가 아니라, 그 과거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곳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크고 작은 공원들이 집 주변에 많이 있었다
주말이 되면 공원은 가족들로 가득 찼다. 드넓은 잔디밭에서 펼쳐지는 재즈 음악과 함께하는 피크닉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다양한 고급차들이 도로를 채우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보스턴은 뉴욕과는 다른 한적함과 낭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도시는 대학교와 교수진, 교직원, 그리고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특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내 첫 번째 목적지, 보스턴 대학교는 마치 도시의 심장부에 자리한 또 하나의 작은 우주 같았다. 캠퍼스는 경건한 정적 속에서도 열정과 지성이 넘치는 활기를 품고 있었다. 경제학과의 건물 앞에 서자,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미래를 꿈꾸며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마주한 교수님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큰 설렘을 안겨주었고, 중앙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부패된 책의 이상 야릇한 냄새를 간직한 그곳이 단순한 책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끝없는 지식의 바다임을 깨달았다.
Dos를 이용한 컴퓨터만 쓰다가 컴퓨터 도서관에서 Apple이 만든 최초의 Graphic형 컴퓨터에서 Excel이라는 프로그램을 쓰는 학생들의 모습이 참으로 부러웠다. 주말이면 나는 가족과 함께 찰스강을 따라 걷거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드넓은 잔디밭에서는 가족들이 재즈 음악과 함께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고, 빨간색 전철은 나를 하버드 대학이 있는 캠브리지로 데려다주었다. 전철에서 내리면 다시금 유럽풍의 건축물이 나를 맞아주었고, 그 모든 것이 나의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이 도시에서의 첫인상은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면모를 온전히 느끼게 해 주었다. 단순히 발전된 기술이나 경제의 중심지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여유와 학문을 향한 열정,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 그것이 내가 느낀 보스턴이었다
보스턴은 뉴욕과 같은 화려한 빌딩숲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엔 하버드, MIT, 보스턴 대학교와 같은 세계적인 학문의 요람이 있었다. 이곳은 단지 도시가 아니라, 살아 있는 학문과 역사의 집합체였다. 교수진, 교직원, 학생들 모두가 도시의 조화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보스턴 대학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세계였다. 경제학과는 특히 뛰어난 교수진과 연구 성과로 유명했다. 학문적 깊이와 실용성을 겸비한 커리큘럼은 학생들에게 경제학의 본질을 이해하게 했고, 이를 통해 세계 경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중앙도서관은 그야말로 지식의 보고였다. 수많은 책과 자료들이 가득한 이곳은 학생들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는 공간이었다.
보스턴 대학교는 또한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학문적 성취를 넘어,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업적은 학교의 명성을 더욱 빛나게 했다.
학교를 걷는데 신문기사에서 보스턴 대학교에서 데릭 월콧(Derek Walcott) 교수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듯이 이 나라는 참으로 노벨상 수상자들이 흔한 나라이구나 하고 새삼 놀라기도 했고, 그 무렵 US News & World Report에서 Boston대학교가 미국 50대 대학에 최초로 선정이 되었다. 50개 주에서 1개씩만 포함이 되어도 50위인데, LA나 뉴욕, 보스턴등은 후보들이 즐비하다 보니 한주에서 3번째 순위인 학교가 50위에 선정된다는 뉴스는 기적적인 사건이라고 평가를 한 기억이 난다.
보스턴 대학교와 관련된 다른 노벨상 수상자들로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있는데,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1964년 노벨 평화상 수상. 그는 보스턴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인종 평등과 비폭력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고,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Oscar Arias Sánchez): 1987년 노벨 평화상 수상. 그는 코스타리카의 대통령으로 중미 평화 협정에 기여했습니다. US News & World Report에서 Boston대학교 경제-경영 대학은 미국 20위로 평가되는 등 가부심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