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에 보스턴대학교 경제학과 입학

나의 해외유학 이야기 시리즈

by 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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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 근무하던 회사원이 졸지에 보스턴 유학생이 되어, 가족과 함께 미국 최초의 도시 보스턴이자 최고의 교육도시인 보스턴을 돌아다니는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학교에서 Orientation 행사 중의 하나인 대학교인근 Fenway 야구장에서 Boston Redsox 프로야구도 관람하고, Lobster 낚시도 구경하고 하는 등 보스턴에도 적응을 해갔다. 개학을 앞둔 학교에서는 수강신청에 앞서 수학/통계학 기초소양 배치고사(?)가 있었고 나는 수학은 박사과정, 통계학은 석사과정을 수업을 들을 것을 권유받았다. 박사들과 같이 수업을 받다 보니, 그들과 이 실력 격차를 많이 실감하게 되었고, 또한 영어로 듣는 수업이란 것이 호락호락하질 않아 결론적으로 동쪽으로 가라는 건지, 아님 서쪽으로 가라는지 결론을 내기가 힘들었다. 동양인들에게 교수탁자가 있는 바로 앞자리가 자리가 VIP석이었는데, 교수강의를 녹음하기에 제일 좋은 자리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일본인 학생 등 아시아계 학생들이 어서 경쟁이 있기는 했다. 나는 맨 앞자리에서 어김없이 SONY 미니 녹음기로 강의내용을 녹음했지만 다시 몇 번을 들어도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


교수임들은 9시 강의면 항상 8시 58분 등 최소 몇 분 전에 미리 오시고, 강의가 끝나도 휴식시간 10분 동안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졌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절이 아니라 편지함에 질문을 하면 다시 편지함에 답변이 오는 아날로그 시절이긴 했지만 교수들의 열의는 대단했다. 물론 학생들의 열의도 대단했는데, 폭설 등으로 교수가 결강이라도 하면, 성난 사자로 돌변한 학생들이 거칠게 학교에 항의를 했다. 나는 결강 소식에 미소를 띠며 좋아하다가 이내 표정을 바꿨던 기억이 난다.


보스턴대학교는 졸업률이 25%가 되지 않는 등 졸업정원제가 시행되는 몇 안 되는 대학교인데, 4과목에서 평균 B학점을 유지하지 못하면 다음 학기에 탈락하는 시스템이다. 더욱이 C가 두 개면 평균 B학점이라도 탈락을 하게 된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성적표는 매번 시험 후 교수님 방문에 공개를 한다. 다만 학번과 학점만 나오기 때문에 누가 A인지, F학점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F를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매번 새 학기가 되면 박사과정 학생들의 편지함에는 분홍색종이에 "Recommendation for Termination"이라는 Letter가 여럿 발견된다. 이렇듯 미국 대학원 공부는 비싼 학비만큼 내용도 알차고, 졸업을 위해서 정신없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직장인들이 모여있는 MBA와는 달리 순수학문만 연구하는 경제학에서는 수학과 통계학이 많이 필요하고, 특히 계량경제학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나로서는 가장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매일 아침 9시에 도서관에 가서 도서관이 문을 닫는 12시에 집으로 오는 패턴으로 첫 일 년을 보낸 것 같다. 초기에는 수업을 따기가 힘들어 휴일에도 학교를 나갔었는데, 너무나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것 같아 휴일에는 하루 쉬는 일정으로 2년 차를 보낸 것 같다. 집사람은 한국 유학생들을 상대로 베이비시터를 알아보기도 하고, 교민들이 이용하는 슈퍼등에 전화번호를 남기곤 했는데, 첫 학기에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방학도 길어서 여행 등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던 나는 이 기회에 아르바이트를 하려 했는데, 첫여름방학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본사의 승인을 얻어 하버드대학교에서 여름학기 수강했다. 환경경제학과 국제금융론 두 과목을 들었는데 임시학생으로 하버드에서 보낸 두 달은 유학시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 중 하나였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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