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의 거품 이해하기 2편
LPPLS 모델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질문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금융 시장의 갑작스러운 붕괴는 예측 불가능한 재앙일까, 아니면 미리 알 수 있는 신호가 있을까?"
전통 경제학, 특히 **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에 따르면, 시장의 모든 정보는 즉시 가격에 반영되므로 미래 가격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대폭락과 같은 사건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블랙 스완(Black Swan)'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물리학자들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금융 시장을 독립적인 개인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수많은 입자(투자자)들로 이루어진 **복잡계(Complex System)**로 보았습니다. 이 관점에서 시장의 붕괴는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마치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수많은 작은 전조(前兆)들이 나타나는 현상이나, 댐이 무너지기 전에 미세한 균열들이 점점 많아지는 현상과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접근법을 **경제물리학(Econophysics)**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 바로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의 디디에 소네트(Didier Sornette) 교수입니다. 그는 원래 지구물리학자로, 지진 발생과 암석 파괴 현상을 연구하던 중, 이 현상들이 보여주는 패턴이 금융 시장의 버블 붕괴 패턴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핵심 아이디어: "거대한 시스템(지각, 댐, 금융 시장)이 파국적인 붕괴에 이르기 전, 시스템 내부의 스트레스가 임계점(critical point)에 가까워지면서 미세한 균열과 진동이 특정한 패턴을 보이며 증가한다."
LPPLS 모델은 바로 이 '특정한 패턴'을 수학적으로 공식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LPPLS가 찾으려는 그 '특정한 패턴'은 무엇일까요? 바로 **'로그-주기성을 가진 거듭제곱 법칙 특이점(Log-Periodic Power Law Singularity)'**입니다. 이름은 어렵지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쉽습니다.
거듭제곱 법칙 특이점 (Power Law Singularity): 이는 버블이 꺼지기 직전에 가격 상승 속도가 단순히 빠른 수준(지수 함수적 상승, exponential growth)을 넘어, '초지수적(super-exponential)'으로, 즉 미친 듯이 가속화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물체처럼, 특정 시점(특이점)을 향해 점점 더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패턴입니다.
로그-주기성 (Log-Periodicity): 더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가격이 단순히 가속하며 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점점 더 잦아지는 작은 등락(미니 버블과 조정)을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불안한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다가 화들짝 놀라 브레이크를 살짝 밟고, 다시 가속하다가 더 짧은 간격으로 브레이크를 밟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브레이크를 밟는 간격'이 로그 스케일에서 주기성을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LPPLS의 목표: 시장 가격 데이터 속에서 이 두 가지 특징, 즉 ①특정 시점을 향한 초지수적 가격 가속과 ②점점 더 주기가 짧아지는 미세한 진동을 동시에 찾아내어, "현재 시장이 지속 불가능한 버블 상태에 있으며, 곧 임계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동평균선, RSI, MACD, ARIMA 모델 등 기존의 시계열 분석 기법에 익숙하실 겁니다. LPPLS는 이들과 근본적인 철학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기존 시계열 분석 (e.g., ARIMA): 이 모델들은 기본적으로 **'과거는 미래를 설명한다'**는 가정에 기반합니다. 과거 데이터의 평균, 분산, 추세 등을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미래의 값을 '외삽(extrapolate)'하거나 예측합니다. 이는 시장이 비교적 안정적인 '정상 상태'일 때 잘 작동합니다. 비유하자면, 평온한 길을 운전하면서 백미러에 비친 과거의 길 모양을 보고 앞으로의 길을 예측하는 것과 같습니다.
LPPLS 분석: LPPLS는 과거의 평균적인 패턴을 미래로 연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미래에 발생할 특정 이벤트(붕괴)는 현재의 데이터에 특정한 패턴의 씨앗을 남긴다'**고 가정합니다. 즉, 미래의 '임계점'이 현재의 가격 움직임을 지배하고 있다는 매우 독특한 관점입니다. 이는 마치 다리 붕괴라는 미래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다리 전체에 미세한 진동 패턴이 나타나는 것을 감지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백미러가 아닌, 다리 전체의 진동을 측정하는 특수 센서에 가깝습니다.
핵심 차이: 기존 분석이 과거 데이터의 통계적 특성을 이용한다면, LPPLS는 미래의 임계점을 향해 수렴하는 동역학적(dynamical) 패턴을 찾습니다.
LPPLS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바로 tc (t-critical), 즉 임계 시간입니다.
tc는 모델이 예측하는 버블의 가장 가능성 높은 종료 시점을 의미합니다.
수학적으로는 가격이 무한대로 발산하는 '특이점(singularity)'입니다. 물론 실제 가격이 무한대가 되지는 않지만, 이는 기존의 성장 규칙(regime)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한계 지점을 상징합니다.
중요한 점: tc가 반드시 '대폭락의 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버블이라는 '초지수적 성장 국면'이 끝나는 시점을 의미하며, 그 이후에는 ①급격한 폭락(Crash), ②장기간의 횡보(Plateau), ③느리고 점진적인 하락(Slow deflation)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LPPLS는 "O월 O일에 폭락한다!"고 족집게처럼 예측하는 수정구슬이 아니라, "현재의 버블은 O월 O일경을 한계점으로 보고 달려가고 있으니, 이 기간 전후로 매우 높은 수준의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알려주는 조기 경보 시스템에 가깝습니다.
LPPLS 모델의 핵심 수학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초보자에게는 복잡해 보이지만, 각 부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E[lnP(t)]≈A+B(tc−t)β+C(tc−t)βcos(ωln(tc−t)+ϕ)
이 식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P(t)$는 시간 t에서의 가격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버블의 근간을 이루는 '거듭제곱 법칙(Power Law)' 파트입니다.
tc: 위에서 설명한 임계 시간입니다.
t: 현재 시간입니다. 따라서 $(t_c - t)$는 임계점까지 남은 시간을 의미합니다.
β (베타): 0과 1 사이의 값을 가지는 매우 중요한 지수입니다. 이 값이 1보다 작기 때문에, 시간이 tc에 가까워질수록 $(t_c - t)$는 0에 가까워지고, 전체 가격($\ln P(t)$)은 매우 가파르게, 즉 '초지수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이 항이 버블의 폭발적인 가속을 모델링합니다.
A,B: 상수입니다. A는 임계점 근처에서의 가격 수준을, B는 버블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이 부분이 버블의 뼈대 위에 그려지는 아름답지만 위험한 무늬, 즉 '로그-주기(Log-Periodic)' 진동 파트입니다.
cos(...): 코사인 함수는 주기적인 진동, 즉 오르내림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바로 미니 조정과 반등을 표현합니다.
ln(tc−t): 이 로그 항이 마법을 부립니다. 시간이 tc에 가까워질수록 이 값은 빠르게 변하며, 코사인 함수의 주기를 점점 더 짧게 만듭니다. 즉, 임계점에 다가갈수록 조정과 반등이 더 잦아지는 현상을 수학적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ω (오메가): 진동의 빈도(주파수)를 결정합니다. 이 값이 클수록 더 잦은 진동이 나타납니다.
C,ϕ: 진동의 진폭과 위상을 조절하는 상수입니다.
종합: LPPLS 모델은 가속하며 상승하는 거대한 파도(거듭제곱 법칙) 위에, **점점 더 잦아지는 잔물결(로그-주기 진동)**이 겹쳐진 패턴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