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본의 이자카야에서 자신 있게 주문할 준비 완료
최근에 일본을 다녀온 지인이 "닷사이 23"이라는 일본의 사케를 먹어 본 후담을 듣고, 저도 나름 선수인데, 사케는 와인이나 중국백주 영향으로 자주 경험하지 못했던 술이라, 이 기회에 많은 자료를 읽고 공부를 해서 저도 글로서라도 먼저 닷사이 23을 맛보려 합니다. 본글은 저의 사케에 대한 경험 그리고 CLAUDE, GPT5, GROK, GEMIN 등 인공지능의 최고수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 제가 사전에 만들어둔 "23"이란 의미를 이해하는 글을 먼저 읽고 오시면 이해가 쉬울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의 부런치스토리글입니다.
우리는 초밥 장인의 손놀림을 감상하고, 라멘 국물의 깊은 맛을 논하는 데는 익숙합니다. 하지만 그 완벽한 식사를 완성시켜 줄 사케 한 잔을 고르는 일은 왜 이리도 망설여질까요? 수많은 한자와 등급, 그리고 감히 예측하기 어려운 가격대까지. 사케의 세계는 마치 친절한 안내문 하나 없는 거대한 박물관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 박물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 가장 중요한 작품들부터 차근차근 감상해 보려 합니다.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적어도 당신은 '준마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후배가 자랑한 '23% 사케'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될 것입니다.
가장 큰 호기심을 자아냈던 그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23%만 남기고 깎아낸 사케를 마셨다." 이 말은 99%의 확률로 '닷사이 23 (獺祭 23)'이라는 이름의 사케를 마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23%'라는 숫자는 사케의 등급과 가격, 그리고 맛을 결정하는 가장 극적인 지표, **'정미보합(精米歩合, 세이마이부아이)'**을 의미합니다.
정미보합이란 무엇인가? 사케는 쌀로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밥쌀(식용미)이 아닌, 알이 더 굵고 중심부에 '심백(心白, 신파쿠)'이라 불리는 흰 점이 뚜렷한 '주조미(酒造米)'를 사용합니다. 쌀의 겉면에는 단백질과 지방, 무기질 등이 많아 술을 빚었을 때 잡미(雜味)를 내는 원인이 됩니다. 반면 중심부의 '심백'은 순수한 녹말로 이루어져 있어, 깨끗하고 향기로운 술을 만드는 핵심이 됩니다. '정미보합 23%'라는 것은, 쌀 한 톨의 겉면을 77%나 깎아내고, 오직 중심부의 23%만을 사용해 술을 빚었다는 의미입니다. 쌀을 깎아내는 이 지난한 과정을 '정미'라고 부릅니다. 쌀 한 톨을 23%까지 깎아내는 데는 며칠 밤낮이 걸리며, 엄청난 양의 쌀이 가루로 사라집니다. 이는 곧 원재료의 막대한 손실이자, 장인의 엄청난 노고가 투입되었음을 의미하죠.
왜 깎아내는가? 적게 깎아낸 쌀(예: 정미보합 70% = 30% 깎아냄)로 빚은 술은 쌀 본연의 구수함과 감칠맛이 진하게 남습니다. 반면, 많이 깎아낸 쌀(예: 정미보합 40% = 60% 깎아냄)로 빚은 술은 잡미가 사라지고, '긴 조향(吟醸香)'이라 불리는 과일이나 꽃처럼 화사하고 깨끗한 향기를 뿜어냅니다. '닷사이 23'은 이 과정을 23%라는 극한까지 밀어붙여, 극도로 맑고 화려한 향을 구현해 낸 사케인 셈입니다.
이제 우리는 첫 번째 열쇠를 얻었습니다. 사케의 등급은 '쌀을 얼마나 깎아냈는가'에 달려있다.
메뉴판을 보면 '준마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보입니다. 이것이 사케를 구분하는 가장 근본적인 첫 번째 갈림길입니다.
준마이 (純米, 순미): "오직 쌀로만" 이름 그대로 '순수한 쌀'로 빚은 술이라는 뜻입니다. 원재료명에 오직 '쌀, 누룩(쌀누룩), 물'이 세 가지만 들어갑니다. 쌀 본연의 풍부한 감칠맛(우마미)과 깊고 묵직한 바디감을 가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쌀의 품질이 맛을 그대로 좌우하기에, 좋은 쌀을 썼다는 양조장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혼죠조 (本醸造, 본양조): "알코올의 마법" '준마이'가 아닌 사케들은 대부분 '혼죠조' 계열입니다. 이는 '쌀, 누룩, 물'에 '양조 알코올(주정)'을 소량 첨가한 것입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아, 소주 섞은 싸구려 술이구나"라고 오해하십니다. 하지만 이는 '후츠슈(보통주)'라 불리는 저가 사케의 이야기이고, 프리미엄 등급인 '혼죠조'의 알코올 첨가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집니다. 알코올은 발효가 끝난 술덧(모로미)에서 향기 성분을 더 효과적으로 추출해 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 결과, 준마이가 쌀의 묵직한 감칠맛을 가졌다면, 혼죠조는 더 가볍고, 더 깔끔하며(드라이하며), 향기가 더 선명하게 살아나는 경쾌한 맛을 냅니다. 이는 맛의 우열이 아닌, '스타일의 차이'입니다.
이제 우리는 두 번째 열쇠를 쥐었습니다. 묵직하고 구수한 쌀의 맛을 원하면 '준마이', 가볍고 깔끔하며 향긋한 맛을 원하면 '혼죠조' 계열을 고르면 됩니다.
이제 두 개의 열쇠, '정미보합'과 '준마이 여부'를 조합해 사케의 등급 피라미드를 완성할 차례입니다. 이 등급을 '특정명칭주(特定名称酒)'라고 부릅니다.
[알코올 첨가 O - 혼죠조 계열]
다이긴조 (大吟醸, 대음양): 정미보합 50% 이하. (쌀의 절반 이상을 깎아냄) 양조 알코올을 첨가해, 맑고 깨끗하며 화려한 과일 향(긴 조향)을 극대화한, 사케 장인의 '예술 작품'입니다. 주로 차갑게 마십니다.
긴조 (吟醸, 음양): 정미보합 60% 이하. '다이긴조'의 동생 격으로, 향긋한 긴 조향과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가성비 좋게 화사한 사케를 즐기고 싶을 때 좋습니다.
혼죠조 (本醸造, 본양조): 정미보합 70% 이하. 깔끔하고 드라이하며 경쾌한 맛이 특징. 어떤 음식과도 무난하게 잘 어울리며, 차갑게도 따뜻하게도(아츠칸) 좋습니다.
[알코올 첨가 X - 준마이 계열]
준마이 다이긴조 (純米大吟醸): 정미보합 50% 이하. (쌀의 절반 이상을 깎아냄) 준마이 계열의 최고봉. '닷사이 23'이 여기에 속합니다. 쌀의 순수한 감칠맛과 다이긴조의 화려한 향이 만나 가장 복합적이고 우아한 맛을 냅니다.
준마이 긴조 (純米吟醸): 정미보합 60% 이하. 가장 인기가 많은 등급 중 하나. 쌀의 부드러운 감칠맛과 '긴조'의 향긋함을 균형 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준마이 (純米): 본래 정미보합 규정이 없었으나(그래서 구수한 맛이 특징), 최근에는 70% 이하로 깎는 곳이 많습니다. 쌀의 풍미가 가장 진하게 살아있어, 따뜻하게 데워 마셨을 때 그 매력이 폭발하기도 합니다.
메뉴판에 '도쿠베츠 준마이(特別純米)'나 '도쿠베츠 혼죠조(特別本醸造)'가 보인다면, 이는 '특별한'이란 뜻으로, 정미보합을 60% 이하로 더 깎았거나 특별한 쌀을 썼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당신은 메뉴판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시미, 초밥 등 섬세한 요리에는: 향이 좋은 '준마이 긴조'나 '준마이 다이긴조'를 차갑게(레이슈, 冷酒) 주문해 보세요. 쌀의 감칠맛이 회의 감칠맛과 어우러지고, 화사한 향이 비린 맛을 잡아줍니다.
야키토리, 튀김 등 기름진 요리에는: 쌀의 풍미가 진한 '준마이'나, 깔끔하게 입안을 정리해 줄 '혼죠조'를 추천합니다. 이들은 따뜻하게(아츠칸, 熱燗) 데워 마셔도 좋습니다.
초보자의 첫 잔으로는: 실패 확률이 적고 대중적인 '준마이 긴조' 등급에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한국에서 유명한 스타플레이어들]
닷사이 (獺祭): '닷사이 23'으로 일약 스타가 된 브랜드. 화사한 멜론, 복숭아 향이 특징. '닷사이 45'(정미보합 45%)가 입문용으로 가장 인기가 많습니다.
쿠보타 (久保田): '단 레이 카라쿠치(淡麗辛口)', 즉 '맑고 드라이함'의 대명사. 니가타현의 대표 주자로,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모범생입니다. '쿠보타 만쥬(萬寿)'가 최고 등급이며, '센쥬(千寿)'나 '햐쿠쥬(百寿)'는 가성비가 좋습니다.
핫카이산 (八海山): 쿠보타와 함께 니가타를 대표하는 명주. 물처럼 깨끗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입니다.
오너라나카세 (女泣かせ): '여자를 울린다'는 재미있는 이름의 사케. '준마이 다이긴조' 등급으로, 1년에 한 번만 출시되며 부드럽고 향기로워 인기가 높습니다.
[가격대는 어느 정도일까?]
이자카야 기준으로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도쿠리(작은 도자기 병, 180ml): 10,000원 ~ 20,000원 선.
병 (720ml):
- 준마이 / 혼죠조: 50,000원 ~ 80,000원
-준마이 긴조 / 긴조: 80,000원 ~ 130,000원
-준마이 다이긴조 / 다이긴조: 130,000원 ~ (브랜드에 따라 20, 30만 원 이상)
-'닷사이 23' 같은 사케는 업장에서 30만 원을 훌쩍 넘기기도 합니다.
사케는 더 이상 어려운 암호가 아닙니다. 그것은 쌀을 얼마나 소중히 깎아냈는지, 그리고 쌀 외에 다른 것을 더했는지에 대한 '양조장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당신은 메뉴판 앞에서 '준마이 다이긴조'를 보며 '아, 쌀을 50% 이상 깎아내고 쌀로만 빚은, 화사하고 우아한 술이겠구나'라고 상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배가 자랑한 '닷사이 23'이 어떤 노고가 담긴 술인지도 이해하게 되었죠.
사케의 세계는 넓고 깊지만, 그 첫걸음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오늘 배운 몇 가지 용어만으로도 당신의 미식 경험은 훨씬 더 풍부해질 것입니다. 두려워 말고, 이자카야 사장님께 당당하게 물어보세요. "오늘 사시미와 어울리는 준마이 긴조, 추천해 주시겠어요?" 그 한마디가 당신을 새로운 미식의 세계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간파이! (乾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