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와 압생트-고독한 영혼을 삼킨 '녹색'

by 박정수


I. 서론: 아를의 밤, 별이 빛나는 카페의 고독한 술잔

우리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를 생각할 때, 캔버스 위에서 소용돌이치는 강렬한 노란색과 짙푸른 밤하늘의 별들을 떠올립니다. 그의 대표작 <밤의 카페테라스(Café Terrace at Night)>를 보십시오. 가스등 불빛이 환하게 비추는 아를(Arles)의 노란 카페, 그리고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 하지만 시선을 조금 더 아래로, 카페의 테이블로 옮겨보면 우리는 그곳에 놓인 작은 술잔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19세기말, 파리와 프랑스 남부를 배회하던 가난한 예술가들의 영혼을 잠식했던 술. 물을 섞으면 오묘한 우윳빛 연두색으로 변하며 몽환적인 향기를 피워 올리는 술. 사람들은 그것을 '녹색 요정(La Fée Verte)'이라 불렀고, 도덕주의자들은 '녹색 악마'라 불렀습니다. 바로 '압생트(Absinthe)'입니다.


반고흐가 즐겼다고 하는 "압생트 55"는 55도의 독주였는데, 인체에서 55도의 의미는

알코올 중독 위험 증가: 고 도주는 적은 양으로도 강한 효과를 내기 때문에 반복적인 섭취는 중독 위험이 높습니다.

간 손상: 고농도의 알코올은 간세포를 빠르게 손상시켜 간염, 간경변, 간암 등의 위험을 높입니다.

신경계 영향: 고 도주는 뇌 기능을 억제하거나 과도하게 자극해 불안, 우울, 환각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심혈관계 부담: 혈압 상승, 심장 박동 이상 등도 나타날 수 있어요.

그의 작품 속 강렬한 색채와 소용돌이치는 하늘은 압생트의 영향이라는 해석도 있어요.

특히 노란색에 대한 집착은 압생트에 의한 황시증(xanthopsia)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논할 때, 이 독한 초록색 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 압생트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독한 가난과 고독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친구였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지친 정신을 달래주는 마취제였으며, 끝내는 그의 정신을 갉아먹고 파멸로 이끈 치명적인 독배였습니다.

본고(本稿)는 [술의 향기가 문학과 예술에 흐를 때] 다섯 번째 여정으로, 예술사의 가장 비극적이고도 찬란한 이름, 빈센트 반 고흐와 압생트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과연 그의 캔버스에 폭발하듯 칠해진 그 노란색은 태양의 색이었을까요, 아니면 압생트가 보여준 환각의 색이었을까요?


II. 본론 1: 19세기 보헤미안의 성수(聖水), '녹색 요정'의 탄생

압생트는 본래 쑥(Wormwood), 아니스(Anise), 펜넬(Fennel) 등 다양한 허브를 알코올에 담가 증류한 술입니다. 이 술이 19세기 후반 프랑스 예술계를 강타한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저렴한 가격'이었고, 둘째는 '강력한 도수와 환각성'이었습니다.


당시 와인 생산량이 병충해(필록세라)로 급감하면서 와인 가격이 폭등하자, 가난한 노동자와 예술가들은 값싼 압생트로 몰려들었습니다. 알코올 도수가 45도에서 74도에 이르는 이 독주는 빠르게 취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반코흐4.png gemini가 그린 상상도입니다.

하지만 압생트의 진정한 매력은 특유의 음주 의식(Ritual)에 있었습니다. 전용 잔 위에 구멍 뚫린 '압생트 스푼'을 걸치고, 그 위에 각설탕을 올립니다. 그리고 차가운 물을 설탕 위로 한 방울씩 떨어뜨립니다. 설탕이 녹아내리며 투명한 초록색 술이 뿌연 오팔빛(Louche effect)으로 변하는 과정은 마치 마법과도 같았습니다. 보들레르, 랭보, 베를렌 같은 시인들은 이 몽환적인 변화를 보며 시상을 떠올렸고, 이 술을 '초록색 요정'이라 칭송했습니다.


파리에 도착한 빈센트 역시 이 유행에서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몽마르트르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그는 압생트를 배웠습니다.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이 파스텔로 그려준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 앞에는 어김없이 압생트 잔이 놓여 있습니다. 그에게 압생트는 낯선 도시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동료들과 예술을 논하게 하는 '보헤미안의 성수(聖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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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본론 2: 아를의 '노란 집'과 '녹색 시간' - 광기의 점화

1888년, 고흐는 파리의 회색빛 겨울을 피해 남부의 아를(Arles)로 떠납니다. 그는 그곳에서 강렬한 태양과 색채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예술 공동체를 꿈꾸며 '노란 집(The Yellow House)'을 빌립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지독한 고독과 과로였습니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음주 습관을 이렇게 변명합니다. "내가 술을 마시는 건, 폭풍우 치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처럼 흔들리는 내 정신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야."

그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종일 그림을 그리고, 밤이 되면 카페로 가서 압생트를 마셨습니다. 당시 프랑스에는 오후 5시를 '녹색 시간(L'Heure Verte)'이라 부르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고독한 이방인 고흐에게 이 시간은 하루의 노동을 보상받는 시간이자, 과열된 뇌를 식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70도가 넘는 독주와 부실한 식사, 그리고 끊임없는 과로는 그의 정신을 서서히 파괴했습니다. 특히 폴 고갱(Paul Gauguin)이 아를에 합류한 뒤, 두 천재의 갈등은 압생트와 함께 폭발했습니다. 고갱은 훗날 "고흐가 압생트 잔을 나에게 던지기도 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압생트의 주성분인 '투욘(Thujone)'은 다량 섭취 시 뇌세포를 흥분시키고 환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예민한 고흐의 신경계에 쏟아부어진 매일 밤의 압생트는, 그의 내면에 잠재된 광기에 불을 붙이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IV. 본론 3: 황시증(Xanthopsia) - 압생트가 칠한 '해바라기'와 '별'

미술사와 의학계에는 오랫동안 흥미로운 가설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고흐의 후기 작품들을 지배하는 그 눈부시고 비현실적인 '노란색(Yellow)'이 혹시 압생트 중독에 의한 '황시증(Xanthopsia)'의 결과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압생트에 포함된 산토닌(Santonin)이나 투욘 성분, 혹은 그가 치료제로 복용했던 디기탈리스(Digitalis)가 시신경에 영향을 주어 세상을 노랗게 보이게 만들었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별이 빛나는 밤>에서 별 주위에 그려진 거대한 소용돌이와 후광(Halo) 역시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시각적 왜곡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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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이 의학적으로 완전히 증명된 사실은 아닙니다. 고흐는 누구보다 색채를 치밀하게 연구했던 화가였기에, 그 노란색은 보색 대비(파란색과 노란색)를 통한 예술적 의도였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가설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그가 압생트에 취해 바라본 세상이 노랗게 일렁거렸든 아니든, 분명한 것은 그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느끼는 강렬한 감각을 캔버스에 쏟아부었다는 점입니다. 술기운이 만들어낸 몽롱함 속에서, 아를의 태양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고, 사이프러스 나무는 불꽃처럼 솟아올랐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노란색은 황시증의 결과가 아니라, 고독과 알코올로 타들어 가던 그의 '영혼의 색'이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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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결론: 귀를 자른 화가, 그리고 텅 빈 압생트 잔

운명의 1888년 12월 23일 밤. 고갱과의 격렬한 다툼 끝에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귀를 면도칼로 잘라냅니다. 그날 밤에도 그의 혈관 속에는 압생트가 흐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아를의 주민들은 그를 "빨간 머리의 미치광이"라 부르며 배척했고 청원서를 내어 그를 쫓아냈습니다. 결국 그는 생레미의 정신요양원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밀밭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37세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고흐의 삶은 압생트처럼 쓰고 독했습니다. 그가 남긴 정물화 <압생트가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Absinthe)>을 보면, 물병과 빈 잔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그 그림에는 화려한 파티도, 즐거운 대화도 없습니다. 오직 견딜 수 없는 고독과 쓸쓸함만이 감돌고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 압생트는 '녹색 요정'이었을까요, 아니면 '녹색 악마'였을까요? 아마 둘 다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에게 창조의 영감을 주는 요정인 동시에, 그의 이성을 파괴하는 악마였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악마의 술이 그를 태우고 남긴 재가 바로 우리가 지금 사랑하는 불멸의 명작들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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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우리는 고흐의 그림을 보며 상상해 봅니다. 별이 소용돌이치는 밤하늘 아래, 홀로 카페에 앉아 녹색 술을 응시하던 그 고독한 등을 말입니다. 그의 광기는 비극이었지만, 그 광기가 남긴 예술은 인류에게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나온 사진은 모두 인공지능 도우미들의 도움으로 만들어 진 것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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