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선율이 끊이지 않고,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시대. 우리는 그 시절을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 부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악몽에서 깨어난 미국은 유례없는 풍요에 취해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술을 법으로 금지한 ‘금주법(Prohibition)’ 시대에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술이 소비되었습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걸작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는 바로 이 모순적인 시대를 관통하는 소설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터져 오르는 폭죽처럼 화려하지만,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샴페인’의 비극적인 미학이 흐르고 있습니다.
뉴욕 롱아일랜드 웨스트 에그에 위치한 개츠비의 대저택. 여름밤이 되면 이곳은 거대한 불야성으로 변합니다. 롤스로이스가 손님들을 실어 나르고, 정원에는 오색찬란한 조명이 켜집니다. 그리고 그 파티의 주인공은 단연 샴페인입니다.
소설 속 묘사에 따르면, 샴페인은 잔에 따르는 수준이 아니라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 웨이터들은 쟁반 가득 황금빛 거품이 넘실거리는 잔을 나르고, 사람들은 서로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술잔을 부딪칩니다.
"내 정원에서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나방처럼 속삭임과 샴페인과 별들 사이를 오갔다."
개츠비에게 이 엄청난 양의 샴페인은 단순한 접대용 술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미끼’**이자 **‘신호탄’**이었습니다. 건너편 이스트 에그에 사는 옛 연인, 데이지 뷰캐넌이 혹시라도 이 불빛을 보고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기다림. 그는 밤마다 수천 개의 샴페인 코르크를 터뜨리며 그녀에게 닿지 않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샴페인은 축배의 술입니다. 탄산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시각적 아름다움과 혀끝을 톡 쏘는 달콤함은 성공과 환희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샴페인의 거품은 찰나의 순간에만 존재할 뿐, 시간이 지나면 힘없이 사그라듭니다. 김 빠진 샴페인만큼 처량한 술도 없지요.
개츠비가 쫓았던 ‘아메리칸드림’과 ‘데이지’라는 존재가 바로 이 샴페인 거품 같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장교 출신이라는 과거를 지우고, 밀주 사업(불법)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아 자신을 화려하게 포장했습니다. 오직 데이지에게 걸맞은 남자가 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그가 사랑한 데이지는 그가 꿈꾸던 순수한 천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샴페인의 달콤함(부와 쾌락)은 즐기지만, 현실의 무게는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 속물적인 존재였습니다. 개츠비가 쌓아 올린 그 찬란한 샴페인 탑은 결국 현실이라는 바람 한 점에 와르르 무너질 운명이었습니다.
개츠비의 술이 낭만과 환상의 샴페인이라면, 데이지의 남편 톰 뷰캐넌의 술은 ‘진 리키(Gin Rickey)’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플라자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톰은 차가운 얼음이 짤랑거리는 진 리키를 들이켭니다.
진(Gin)에 라임과 탄산수를 섞은 이 칵테일은 달콤함이 거의 없고 드라이하며 차갑습니다. 이는 태생부터 상류층이었던 톰의 오만함과 냉혹함을 상징합니다. 그는 개츠비의 낭만을 ‘싸구려 감상’이라 비웃으며,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몽환적인 샴페인의 취기와 달리, 진 리키의 취기는 날카롭고 이성적입니다. 결국 낭만(개츠비)은 현실(톰)의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납니다.
소설의 배경이 금주법 시대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개츠비가 파티에서 쏟아부은 그 많은 술은 사실 합법적인 경로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는 주류 밀매상이었고, 그의 부는 검은돈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법으로 술을 금지하자 사람들은 술에 더 열광했습니다. 도덕성을 외치던 사회의 이면에는 탐욕과 위선이 넘쳐났습니다. 피츠제럴드는 끊임없이 터지는 샴페인을 통해,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은 썩어 들어가던 1920년대 미국의 초상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모든 파티가 끝나고, 샴페인 잔이 깨진 자리에는 적막만이 남습니다. 개츠비는 죽는 순간까지도 데이지가 전화를 걸어줄 것이라는 희망, 즉 샴페인의 거품이 꺼지지 않았으리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화자 닉 캐러웨이는 개츠비가 그토록 갈망했던 데이지 집의 ‘초록 불빛(Green Light)’을 바라보며 이렇게 독백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속에 자신만의 ‘개츠비’를 품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닿을 수 없는 꿈, 지나간 사랑, 혹은 성공이라는 이름의 황금빛 샴페인을 좇으면서 말이죠. 비록 그것이 언젠가 사라질 거품일지라도, 그 순간의 찬란함에 취해 우리는 오늘도 건배를 제의합니다.
화려해서 더 슬픈 술, 『위대한 개츠비』의 샴페인 향기는 그래서인지 유독 긴 여운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