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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Father, 시칠리아 와인과 권력무상

마리오 푸조의 이민자 서사와 키안티의 상징성

by 박정수

마리오 푸조의 소설 《대부》를 원작으로 파라마운트 픽쳐스가 제작하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연출, 마리오 푸조 본인이 직접 각색에 참여한 3부작 영화.

대부 3부작 - 나무위키


이 영화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족이자 거대 범죄 조직의 핵심인 콜레오네 가문의 3대에 걸친 행보를 그렸다. 1960년대 클래식 시대의 종결 이후 뉴 할리우드 시대가 빚어낸 범죄 영화 최고의 걸작이자 역사상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범죄 영화 역사상 실로 기념비적인 역할을 하여 수많은 동(同) 장르의 작품이 나오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으며, 범죄 및 누아르 장르뿐 아니라 영화계 전체에도 크나큰 영향을 끼친 명작이다.


이처럼 대부는 사전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은 영화이자 문학작품이다. 그리고 이 음악도 나의 인생에 오래 남을 위대한 영화음악이 될 것이다.


Love Theme From "The Godfather"





1. 들어가며: 와인잔에 담긴 가족의 역사

마리오 푸조(Mario Puzo)의 《대부(The Godfather)》(1969)는 단순한 범죄소설을 넘어 20세기 미국 이민자 문학의 정점에 선 작품이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화(1972)로 더욱 유명해진 이 작품은, 시칠리아에서 건너온 코를 레오네 가문의 3대에 걸친 흥망성쇠를 그린다. 이 서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와인이 있다. 비토 코를 레오 네가 손님을 맞이할 때, 가족회의를 할 때, 그리고 아들 마이클이 시칠리아로 피신해 아폴로니아와 결혼식을 올릴 때—키안티와 시칠리아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가족의 피, 전통의 상징, 그리고 권력의 언어였다.

《대부》에서 술, 특히 이탈리아 와인은 구세계와 신세계를 잇는 문화적 교량이다.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술은 불법이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것, 억압받으면서도 가장 자유로운 것의 상징이 된다. 코를 레오네 가문이 올리브 오일 사업으로 위장하면서도 밀주와 도박으로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은,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해야 했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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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야사는 저의 아래글을 참조하세요

08화 금주법 시대의 비밀: 절망 속에서 피어난 지하 와이너리


2. 키안티와 시칠리아 와인: 이탈리아 정체성의 액체화

키안티(Chianti)는 토스카나 지방의 대표적인 레드 와인으로, 산지오베제(Sangiovese) 포도를 주원료로 한다. 전통적으로 짚으로 감싼 둥근 병(fiasco)에 담겨 나오는 키안티는, 20세기 초 미국으로 건너간 이탈리아 이민자들에게 고향의 맛이자 정체성의 증표였다. 《대부》에서 비토 코를 레오 네가 식탁에 올리는 와인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시칠리아의 태양과 땅, 그리고 조상들의 땀이 응축된 문화유산이다.

시칠리아 와인은 키안티보다 더 강렬하고 토속적이다. 네로 다볼라(Nero d'Avola)나 프라파토(Frappato) 같은 품종으로 만든 시칠리아 와인은,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과 화산토의 미네랄이 만들어낸 독특한 풍미를 지닌다. 소설 속에서 마이클이 시칠리아에 피신해 있을 때 마시는 와인은, 그가 미국에서 잃어버렸던 순수함과 인간성을 되찾는 매개체가 된다. 아폴로니아와의 짧은 결혼 생활 동안 그가 경험하는 평화로운 일상—올리브 나무 아래에서 마시는 와인, 느긋한 오후의 시에스타—은 곧 폭력과 배신으로 점철될 그의 미래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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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주법 시대의 역설: 불법이 만든 제국

《대부》의 시간적 배경인 1945년 전후는 금주법(1920-1933)이 막 끝난 시기다. 금주법은 미국 역사상 가장 실패한 사회 실험 중 하나로, 술을 금지함으로써 오히려 조직범죄를 키웠다. 이탈리아계 마피아, 아일랜드계 갱단, 유대계 범죄조직이 밀주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이 바로 이 시기다.

푸조는 이 역설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비토 코를 레오네는 "나는 사업가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사업은 미국 사회가 불법으로 규정한 인간의 본능—술, 도박, 매춘—을 상품화한 것이다. 그가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불법 서비스가 아니라, 억압된 욕망의 해방구다. 금주법이 술을 금지했을 때, 사람들은 더 간절히 술을 원했고, 그 간절함이 코를 레오네 가문의 권력이 되었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비토가 올리브 오일 수입업자로 위장하면서도, 뒷방에서는 밀주 거래를 논의하는 모습이다. 올리브 오일과 와인—둘 다 이탈리아 문화의 핵심이지만, 하나는 합법이고 하나는 불법이다. 이 이중성은 이민자의 삶 자체를 상징한다. 겉으로는 미국 사회에 순응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들만의 규칙과 전통을 지키는 이중생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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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와인과 가족: 피보다 진한 유대

《대부》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들은 대부분 식탁에서 일어난다. 코를 레오네 가문의 일요일 저녁 식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의식(ritual)이다. 비토가 상석에 앉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파스타와 와인을 나누는 이 시간은, 가문의 위계와 유대를 재확인하는 시간이다.

와인은 이 의식의 핵심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와인을 따라주는 행위는 권력의 계승을 상징한다. 마이클이 처음으로 가족 사업에 깊이 관여하게 되는 것도, 부상당한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회의를 주재하면서부터다. 그때 그가 마시는 와인은, 그가 더 이상 전쟁영웅이나 대학생이 아니라 차기 대부임을 선언하는 성찬이다.

푸조는 와인을 "가족의 피"로 은유한다. 실제로 마피아 입문 의식에서는 피를 나누는 의식이 있지만, 일상에서 가족의 유대를 확인하는 것은 와인을 나누는 행위다. 와인잔을 부딪치는 소리, "살루테(Salute, 건강을 위하여)"라는 건배사, 그리고 함께 마시는 침묵의 시간—이 모든 것이 말보다 강한 유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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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칠리아의 목가적 환상과 폭력의 현실

소설의 중반부, 마이클이 시칠리아로 피신하는 에피소드는 작품 전체에서 가장 서정적인 부분이다. 뉴욕의 폭력과 배신에서 벗어나 코를 레오네 마을에 도착한 마이클은, 아버지가 떠나온 그 고향에서 잠시나마 평화를 경험한다. 그가 아폴로니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올리브 농장을 산책하며 와인을 마시는 장면들은, 마피아 서사 속에 삽입된 목가적 환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푸조는 이 환상을 오래 지속시키지 않는다. 아폴로니아가 자동차 폭탄으로 죽는 순간, 시칠리아의 목가는 산산이 부서진다. 마이클이 마시던 와인은 피의 맛으로 변하고, 그는 다시 복수와 권력의 세계로 돌아간다. 이 장면은 이민자들이 품었던 "고향으로의 귀환" 환상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보여준다. 그들이 떠나온 시칠리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설령 존재한다 해도 그들은 이미 너무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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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메리칸드림의 어두운 이면

《대부》는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가장 냉소적이면서도 가장 정직한 초상화다. 비토 코를 레오네는 아홉 살에 고아로 미국에 건너와, 맨손으로 제국을 건설한다. 그의 성공담은 전형적인 아메리칸드림 서사처럼 보이지만, 푸조는 그 이면의 폭력과 부패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와인은 이 이중성을 상징한다. 코를 레오네 가문의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정치인과 판사들이 고급 와인을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겉으로는 우아하고 합법적인 사교 모임이지만, 그 와인을 살 돈이 어디서 왔는지 모두가 알고 있다. 밀주, 도박, 매춘, 그리고 살인—이 모든 불법 행위가 만들어낸 부가, 합법적인 사업과 사회적 지위로 세탁된다.

마이클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전쟁영웅으로 돌아와 합법적인 삶을 살려했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범죄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일단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대부가 된 후 아내 케이에게 거짓말을 하고 문을 닫는 순간, 우리는 그가 영혼을 잃었음을 안다. 그가 마시는 와인은 이제 승리의 맛이 아니라 상실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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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결론: 와인잔에 비친 이민자의 초상

《대부》에서 와인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작품의 주제를 응축한 상징이다. 키안티와 시칠리아 와인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신세계에서 지키려 한 정체성의 마지막 보루였다. 언어를 잃고, 이름을 바꾸고, 차별을 견디면서도, 그들은 식탁에서만큼은 고향의 맛을 지켰다.


하지만 푸조는 이 문화적 향수를 낭만화하지 않는다. 와인을 나누는 가족의 식탁 아래에는 폭력과 배신이 도사리고 있으며, 전통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범죄가 있다. 《대부》의 위대함은 이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데 있다. 코를 레오네 가문은 괴물이면서 동시에 희생자이며,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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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대부》를 읽으며 와인을 마실 때, 우리는 단순히 이탈리아 문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민자들의 꿈과 좌절, 성공과 타락,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모든 것들을 음미하는 것이다. 와인잔을 들어 "살루테"를 외칠 때, 우리는 코를 레오네 가문의 영광과 비극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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