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향기가 문학과 예술에 흐를 때 시리즈
창밖으로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한국인의 DNA 속에는 으레 ‘부침개에 막걸리 한 잔’이라는 공식이 떠오릅니다. 빗소리가 기름 끓는 소리와 닮아서라는 낭만적인 이유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슬픈 비 내리는 날의 풍경이 무의식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1920년대,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하층민과 지식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 속에서 ‘술’은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대의 울분을 삼키게 해주는 마취제였으며, 맨 정신으로는 마주할 수 없는 비극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진통제였습니다.
오늘은 현진건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제가 대학시절 읽었던 현진건 단편시리즈와 COPILOT, GEMINI, GROK 등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작성돤 감상문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김 첨지는 인력거꾼입니다. 열흘 넘게 돈 구경도 못 하던 그에게, 겨울비를 뚫고 기적처럼 손님들이 몰려듭니다. 30전, 50전… 돈이 쌓여갈수록 그는 신이 나야 마땅한데, 오히려 그의 마음은 점점 더 무겁게 짓눌립니다. 앓아누운 아내가 아침에 했던 말, “오늘은 제발 나가지 말아요”라는 애원과 “설렁탕이 먹고 싶다”던 목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귓가를 맴돌기 때문입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김 첨지는 선술집 앞에서 친구 치삼이를 만납니다. 그는 마치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친구를 붙잡고 술판을 벌입니다.
“술을 붓게! 또 붓게! 빌어먹을!”
그는 거칠게 막걸리(탁주)를 들이켭니다. 안주도 없이 강술을 마시며 주정을 부리고, 웃다가 울기를 반복합니다. 그가 술을 마신 이유는 돈을 많이 벌어 기뻐서가 아니었습니다. **‘집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워서’**였습니다. 취기를 빌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방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에게 술은 불길한 예감을 잠시나마 유예시키는 도피처였습니다.
거나하게 취한 김 첨지는 그토록 아내가 먹고 싶다던 설렁탕 한 그릇을 사 들고 비틀거리며 귀가합니다. 평소처럼 욕설을 내뱉으며 문을 열지만, 방 안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합니다. 아이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 그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고함을 치며 누워 있는 아내의 다리를 발로 툭 찹니다.
하지만 아내는 말이 없습니다. 젖먹이 아이만이 죽은 어미의 빈 젖을 빨고 있을 뿐, 아내의 눈은 이미 뒤집혀 천장을 향해 있고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습니다. 그제야 김 첨지는 아내의 머리맡에 무너져 내립니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뱉는 그의 독백은 한국 문학사상 가장 비극적인 아이러니로 꼽힙니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김 첨지가 마신 술은 결국 아내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아내의 죽음이라는 끔찍한 현실 앞에서 그가 미치지 않고 통곡이라도 할 수 있게 해 준 마지막 끈이었습니다. 운수 좋은 날에 찾아온 가장 슬픈 밤, 그 씁쓸한 술맛은 김 첨지의 눈물 맛과 같았을 것입니다.
현진건의 또 다른 대표작 『술 권하는 사회』에서는 하층민이 아닌 지식인의 술을 다룹니다. 부인을 기러기로 만들고 홀로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인 남편은 식민지 조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 매일 술에 절어 귀가합니다.
남편이 야속한 아내는 묻습니다. “누가 그렇게 술을 권합니까?” 남편은 자조 섞인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이 사회란 놈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여기서의 술은 ‘분노’입니다. 배운 것을 펼칠 수 없고, 정의가 통하지 않는 부조리한 사회. 맑은 정신으로는 도저히 숨을 쉴 수 없는 갑갑한 현실에서 지식인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독주뿐이었습니다. 아내는 ‘사회’라는 놈이 대체 누구길래 남편에게 술을 먹이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만 쌓아갑니다. 이 소통의 단절과 시대적 절망 사이에서 술은 차가운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뜨거운 위로였습니다.
현진건 소설 속에 흐르는 술은 와인처럼 향기롭거나 위스키처럼 영롱하지 않습니다. 쌀알이 부서지고 뭉개져 발효된, 뽀얗고 텁텁한 ‘탁주’의 이미지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혼탁했던 당시 조선의 현실과 이 술의 빛깔은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또한, 탁주는 마실 때는 목을 시원하게 긁어주지만 마시고 나면 속을 뜨겁게 달구며 얼얼한 취기를 남깁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삶을 잠시 마비시켜 주지만, 깨고 나면 더 큰 두통과 허무를 안겨주는 식민지 시대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현진건이 펜을 놓은 지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식민지의 시대는 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힘들고 고단한 날이면 소주 한 잔을 찾습니다. 김 첨지가 두려움을 잊기 위해 들이켰던 술, 지식인이 세상에 항거하며 마셨던 그 술의 향기는 오늘날 직장인들의 퇴근길 술잔에도 희미하게 남아 있는 듯합니다.
저도 잘 나가던 직장을 사퇴하고, 50이라는 나이에 코딩을 배우는 등 험난한 여정 끝에 호주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였지만, 오히려 Overqualification, 질투, 외부인사에 대한 반감 등 항상 최종 면접에서 낙방을 했었습니다. 저를 반겨주는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가족의 따뜻한 품, 과거 동료등과 거래관계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도 가끔 막걸리를 나누는 친구들과의 대화와 위로, 그리고 제가 박사학위를 받으면 하고 싶었던 더 심회적인 연구활동 등 술에 빠질 수 없는 현실적 여건(?) 때문에 술의 유혹은 대안이 되질 못했습니다.
힘들 때 마시는 술 한 잔이 유독 달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 삶의 고단함이 그 술보다 더 쓰기 때문이 아닐까요? 현진건의 소설을 다시 읽으며, 차게 식어버린 설렁탕 옆에서 오열하던 김 첨지의 등을,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등을 조용히 토닥여 봅니다. 문학 속에 흐르는 술, 그것은 단순한 알코올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여 흐르는 ‘눈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