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국계은행 경험이야기 시리즈
나는 POSCO 사내장학생으로 미국유학과 미국이라는 세계를 경험한 덕분에 30 대 중반에 POSCO 보다는 더 고급 수준이고 전문적으로 국제금융시장을 배워 보자는 욕심으로, Ivy Leage 출신들이 대부분인 외국계 은행으로 이전을 꿈을 꾸게 되었다. 경제난으로 시달리던 유학생활 후, 전재산은 0원 (실은 적자)이었고, 서울에서 전제자금을 마련하느라 다시 당시 3천만 원의 은행대출을 받아 홍익대 주변의 반지하 연립주택에 거처를 정했었다. 그 사이에 둘째도 태어나고, 나도 기존의 경영조사부가 POSCO경영연구소로 분사를 함에 따라, 재무본부 국제금융실이라는 새로운 부서에 배치를 받아서, 외환딜러 및 금융위험 관리자로 성장을 하게 되었다.
전혀 새로운 부서였지만, 주말에도 출근을 해서 공부를 하는 등 6개월 정도의 노력으로 부서가 원하는 수준의 업무실력을 가질 무렵, 당시 재무본부(자금부)의 가장 난제 중의 하나인 외환위험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는 업무에도 참여하여, 미국 산호세에 있는 SUN사에서 도입하려는 시스템도 배워오고, Bank of America (BOA)라는 외국계은행의 LA연구소에서 금융위험 관리를 위한 파생상품에 대한 연수도 경험하는 등, 어학도 컴퓨터 실무에 대한 이해도 높고, 당시 한국에는 없던 금융파생상품담당자로서 POSCO라는 거대기업의 환율의 변동으로 인한 금융손실(financial risk)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위험관리 전문가로도 성장하고 있었다. 매일매일이 신문물을 배우는 시간이었고, 매일매일 나의 금융분야 실력은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어, 새로운 부서에서도 승승장구를 할 수 있었으며, 과장시험도 2년 선배들과 같이 경쟁을 하는 등 나의 동기들 중 가장 먼저 과장시험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반면 3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대출받고, 당시 10%대의 대출이자를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친구 따라 홍익초등학교 입시시험을 보러 간다는 큰딸은 진작 간다는 친구는 낙방을 하고, 부자들만 간다는 사립초등학교에 합격을 함에 따라, 고민 끝에 POSCO에 사표를 내게 되었다. 당시 나의 꿈은 POSCO의 회장이 되어 보는 것이었고, 집사람에게도 POSCO 과장이 아니라 회장부인이 되려면, 매일 밤을 새워 야근을 하더라도 불평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었고, 집사람도 당신이 하고 싶고 가고 싶을 길을 가라면 나를 격려해 줬었는데, 결국 사표로 인해 그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더욱이 POSCO의 구정인 유학 후 4년 의무규정도 채우지 못해, Harvard대학교 여름학비 수업료 등 약 1억 원의 벌금을 물어야 했는데, 당시 나를 스카우트한 Bankers Trust Company(BTC은행, 이후 Deutsche Bank로 합병됨)에서는 무이자로 대출 + POSCO 급여대비 2배 수준의 급여를 Package로 나를 채용해 주었다. 그해가 1996년이었으니 30 대중반인 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부채위험을 안고 제조업에서 금융산업 종사자로 변신하게 되었고, 인생 최대의 모험이자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BTC은행은 세계적으로 파상상품이라는 고급 금융상품 분야야서 유명한 은행이었고, 한국에서는 금융사관학교로 불렸다. 나의 재직시절 대표 었던 강정원행장은 서울은행장, KB 회장을 역임한 바가 있으며, 황영기 우리은행 회장과 주요 외국계은행 및 증권의 사장으로 활약을 하는 등 BTC가 배출한 인맥들은 지금도 대한민국 금융시장의 역사를 만들었고, 저도 그 멤버 중의 하나라는 자부심도 강했다. 아래의 Table에 박정수라는 저의 이름을 비롯해서 많은 주요 인물들이 BTC에서 배출되어 활약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https://news.nate.com/view/20080720n01212?mid=n0000
BTC가 1999년에 도이치방크 (Deutsche Bank)에 피합병이 되면서 도이치은행으로 전근 또는 명예퇴직이라는 중대 기로를 맞이했는데, 당시 부채가 많았던 나는 퇴직금으로 이 부채를 변제하고 다시 시작을 할 마음으로 점령군들인 도이치 은행 아시아 주요 인사가 참석해서 치른 면접심사에서 도이치은행은 100년을 뛰어도 BTC은행을 능가할 수가 없다는 논리를 대면서 부정적인 인터뷰를 했었고, 결국 희망과 같이 조기퇴직자 명단에 올랐었다.
저는 보너스 등으로 부를 축재한 동료들처럼 해외 명품구두와 명품양복을 입지는 못했지만, 매일 구두를 열심히 닦고 다녔는데 (구두를 관리해 주는 아저씨가 외부에서 서비스를 해 주셨음) 마침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외국인이 구두에 파리가 미끄러지겠다고 칭찬을 해서 BTC Sales는 기본에 충실하다는 대답을 하고 서로 웃으며 헤어졌는데, 오후에 런던에서 도이치은행 최고 Sales 대표(Global Head of Sales)와 최종 1대 1 인터뷰가 있다고 해서 회의실에 들어가니 아뿔싸 면접관은 1시간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났던 바로 그 외국신사였다. 그는 나처럼 기본에 충실한 Sales가 서울법인에 필요하다면서, 급여도 올려주고, 나의 무이자 대출도 연장을 해준다고 제안을 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도이치은행으로 가야 했다. 그리고 나는 POSCO라는 기업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외국계 은행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행운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