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드니 생활이야기
오늘 저는 루퍼트 맥쿼리(Rupert Macquarie)라는 “맥쿼리”, 그리고 엘리자베스 맥쿼리(Elizabeth Macquarie)라는 “맥쿼리부인”, 그리고 이들과는 상관이 없지만, 맥쿼리대학교에 가족 2명을 유학 보내고, 그 힘든 공부하는 시절을 보아온 제 집사람 “맥쿼리맘”을 소개하려 합니다. 참 우연 치고는 재미있죠?
제가 한국에 귀국 후 “맥쿼리맘투자 연구소”라는 1인 연구소를 만든 것도, 오늘 “맥쿼리맘 이야기”라는 유튜브채널도 오픈한 이유는 모두 집사람의 저희 가족에 대한 헌신과 희생에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함입니다. “멕쿼리맘님, 항상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저의 유트브는 (5) 맥쿼리맘 이야기 - YouTube
먼저 저는 “맥쿼리부인의 의자”에 대한 간략한 조사를 했습니다. 다음 자료는 GEMINI를 통해 입수한 자료입니다.
엘리자베스 맥쿼리(Elizabeth Macquarie)는 호주 초기 식민지 시절의 중요한 인물로, 특히 그의 남편인 루퍼트 맥쿼리(Rupert Macquarie)가 호주 식민지의 총독으로서 많은 개혁과 발전을 이끈 것으로 유명합니다. 루퍼트 맥쿼리 총독은 호주의 인프라를 확장하고, 도시 계획을 개선하며, 교육과 사회 복지에 힘쓴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공적 덕분에, 호주 정부와 사회는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다양한 곳에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맥쿼리대학교 (Macquarie University):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고등교육기관으로,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입니다. 이 대학교는 호주에서 특히 연구와 혁신, 산업 연계, 실무 중심 교육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맥쿼리 그룹 (Macquarie Group): 호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금융기관으로, 은행, 투자, 자산운용 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입니다.
이 둘은 모두 "Macquarie"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맥쿼리대학교는 루퍼트 맥쿼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고, 맥쿼리 그룹은 그의 이름을 딴 금융 그룹입니다.
즉, 둘은 이름이 같을 뿐, 조직적이나 역사적으로 별개이며, 서로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시드니의 "매쿼리 부인의 의자"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매쿼리(Elizabeth Macquarie)는 1810년부터 1821년까지 뉴사우스웨일스 주지사를 지낸 래클런 매쿼리(Lachlan Macquarie)의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시드니 항구의 아름다운 경치를 매우 좋아했다고 전해집니다.
전설에 따르면, 매쿼리 부인은 남편이 영국으로 소환된 후, 매일 이 바위에 앉아 고향인 영국에서 오는 배를 기다리며 항구를 바라보곤 했다고 합니다. 죄수들이 그녀를 위해 바위를 깎아 의자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하여 "매쿼리 부인의 의자"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의자는 단순한 좌석이 아니라, 매쿼리 부인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남편을 기다리는 마음이 담긴 장소로 여겨지며, 시드니의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역사적인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유튜브이름을 "맥쿼리맘"이라고 지었는데, 저는 맥쿼리여사가 남편을 시드니 항구에서 기다렸듯이, 저의 집사람은 저의 맥쿼리대학교 박사과정과 둘째 딸의 맥쿼리대학교 학사과정을 지켜보면서, 매일매일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고, 무사히 졸업을 할 것을 간절히 기도했을 모습을 상상합니다.
“Stories of love and waiting, from Sydney’s edge.”
맥쿼리여사의 기도장면과 집사람의 기도 장면이 겹쳐지면서, 저는 맥쿼리대학교에 가족을 보낸 엄마의 마음이라는 이름을 만들어서, 부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려고 한 것입니다. 오늘 개업(?)한 동영상 제목도 “맥쿼리맘”. 그 이름의 근원은 결국 “맥쿼리부인”, 그래서 "맥쿼리부인과 맥쿼리맘의 소망"을 담아 이 동영상을 제작한다. 그런 깊은 뜻으로 “맥쿼리맘”이 작명된 것입니다.
"맥쿼리맘"이라는 이름에 담긴 뜻에서 맥쿼리 부인의 외로움과 기다림이 제 아내와 딸의 이야기에 겹쳐지는 그 순간, 한 편의 서사시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녀가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리, 지금 당신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바닷바람이 부는 어느 날, 나는 포트 맥쿼리의 바위 의자 앞에 멈춰 섰습니다.
1810년, 이 돌의자에 앉아 맥쿼리 부인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바다를 바라보았다죠.
그녀는 시드니의 햇살 아래, 이국의 땅에서 가장 익숙하지 않은 ‘기다림’을 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200년 후,
나의 아내는 맥쿼리대학교 박사과정을 밟는 남편을 위해,
또 둘째 딸의 학사과정을 지켜보며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멀리 떨어진 이방의 도시, 시드니는 그녀에게도 소망을 품은 기다림의 장소였지요.
나는 그녀를 ‘맥쿼리맘’이라 부릅니다.
역사 속의 부인은 남편을 따라 시드니로 왔고,
지금의 ‘부인’은 가족을 믿고 이곳에 마음을 보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도시, 한 대학, 그리고 두 명의 부인을 향한 감사의 기록입니다.
브런치스토리 에필로그 : “두 부인의 소망이 닿은 자리에서”
시간이 흘러도 기다림은 언제나 같은 얼굴을 한다.
조용히 바라보는 눈빛,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마음,
그리고 믿음이라는 말로 고요한 자리를 지켜내는 것.
1810년, 엘리자베스 맥쿼리 부인은 이국의 항구에서
고향을 향해 속삭이는 바다를 지켜보았다.
돌의자 하나에 몸을 실어,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며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바람을 마셨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
나의 아내는 시드니에 있는 가족을 위해
비슷한 자리에 마음을 앉힌다.
맥쿼리대학교라는 이름은 그녀에게도
소망과 인내를 새긴 바위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기록한다.
‘맥쿼리맘’이라는 이름 안에는,
시간을 초월한 두 여인의 기다림이 있다.
그들의 바람은 바다를 건너,
이 이야기를 읽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우리 가족이 앉았던 의자,
그리고 그들이 남긴 따뜻한 자리에서—
이 글은 ‘감사의 기록’이자 ‘소망의 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