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자손을 남기고 싶다거나,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나만의 존재 이유를 찾고 싶고,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지, 혹은 특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은 결국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것이다, 어떤 이는 자유를 위해, 또 어떤 이는 단순히 내일을 위해, 아니면 지금 당장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득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잊혀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한평생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 결과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얼마나 허무할지 상상조차 되지가 않는다.
사람은 태어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태어나는 순간에 대한 두려움은 없습니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만 죽음은 다른 것 같다.
죽음은 때로 선택의 여지를 남기기도 하고, 그 방식조차 우리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나이가 들어가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채로 쓸쓸히 늙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살아온 시간 속에서 그 누구도 나라는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고, 결국 완전히 잊혀진다는 상상은 너무나도 잔인하다.
그런데도 인간은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갑니다. 어쩌면 고통은 삶의 일부일지도 모를 것 같다, 또한 그 고통 속에서 삶은 비로소 진짜 빛을 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12월이 다가오면서, 신년을 앞두고 문득 지나온 날들이 떠오르고는 한다.
소중했던 사람들과의 기억도, 잊으려 애썼던 고통스러운 순간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기억들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절대로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결국은 잊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어릴 적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기억들은 거의 떠오르지 않지만, 그 시절의 장소에 다시 가면 냄새나 분위기 때문에 묻어뒀던 기억들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한다.
최근에 고등학교에 찾아갔던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기억날 때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곳에 서서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그 시절과 지금의 나를 비교하게 되었지만, 그땐 매일이 새롭고 즐겁기만 했는데, 정작 내일이 오는 게 싫을 정도이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떤가? 내가 그때 꿈꾸던 미래는 과연 이런 모습이었을까?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하교하던 길, 점심을 먹던 급식실도 다시 가보니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감흥이 오지를 않았다.
그러한 감정을 느낀 순간, 그렇게 냉정해진 내 자신이 조금은 두려워지기 시작했었다.
기억은 언젠가 희미해지고, 사람은 결국 잊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나에게는 아직까지 받아드리기 힘든 의미이었었다.
기억과 잊혀짐은 공생 관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삶 속에서 발버둥치며 자취를 남기려 하지만, 그 자취마저도 결국은 사라지고, 시간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깨달었었다, 내가 남기고자 했던 모든 것이 언젠가 사라지고, 나라는 존재도 아무 흔적 없이 잊혀질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했던 노력들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은 답을 찾지 못한 채 공허함만을 남긴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에 남으려 애써도 결국 우리는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잊혀짐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시간 속에 모든 것이 흘러가는 거라고.
하지만 그것이 슬픔을 덜어주지는 않는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애써 쌓아온 모든 것들이 덧없다는 현실을 뚜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 공허한 세계 속에서 잊혀질 것을 알면서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게 삶의 잔인한 아름다움이니까.
오늘을 남기는 것 보다, 내일을 남길 수 있기를, 내일을 남기는 것 보다, 훗날 먼 미래를 남길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