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내가 남기고 싶은 것

by Story Line

나는 어릴 때부터, '삶이라는 것은 끝이 안 보이는 바다'라는 것과 같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 당시에 나는 삶의 끝은 죽음이라고 생각했었고, 삶이 안 보이는 바다라는 문장 자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나이 21살, 아직까지 젊고 철이 없는 나이라고 수도 없이 들었다. 한참 도전을 해야 하고, 부딪쳐 보고, 깨져봐야 한다고, 미칠 듯이 수도 없이 들었다.




사람 개인 각자의 스토리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개인 삶을 산다는 것은 그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생명이 태어났다는 같은 시작점에서, 우리 모두 무로 돌아간다는 결말까지 같다. 하지만 그 안에 내용은 자신만이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생이라는 것이 더욱더 흥미로운 것 같다.




나는 어릴 적부터 전학을 많이 갔다. 내 성격 또는 사고를 쳐서 간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의 직장이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나 역시도 아버지를 따라 아니지 온 가족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나에게 가장 행복하고 안정감 있었던 시절을 물어보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 때까지였을 것이다. 그때가 유일하게 내 인생에서 한 곳에서 가장 오랫동안 정착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전학에 점점 적응하기가 버거웠고,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설리임도, 곧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친해져야 한다는 두려움으로 변했고, 이러한 것을 인지한 나의 나이는 고작 12살이었다. 한참 뛰어놀고,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아야 할 나이에, 나는 사람의 눈치를 보고, 오로지 어떻게 하면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을 할 수 있는지, 딱 그것만 생각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는 해외에서 보냈고, 대학교 역시 해외에서 보내는 중, 우울증, 공황장애 등이 심해져, 대학교를 다닐 때는 매일 밤을 술과 담배로 지새웠던 것 같다. 친구와 있을 때 역시도 큰 재미를 못 느꼈다, 단지 어떻게 하면 내가 이 무리에서 살아남고 졸업하기 전까지 지낼 수 있을까, 딱 그것만 생각했었다.




나는 밴쿠버에 있는 한 칼리지를 다니고 있었고, 일본인 2명과 룸셰어를 하고 있었다. 매일 밤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런 온기도 없는 집에 들어가, 컴컴한 방에 불을 켜고, 헤드셋으로 노래를 들으면서 술을 마셔서 취하는 것 까지가 내 일상 중 하나였다. 매일 밤 커져오는 공허함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술과 담배라면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매일 밤 술에 떡이 되어 시뻘게진 얼굴로, 화장실 거울을 보면서, 딱 오늘만, 딱 오늘까지만, 딱 오늘만 넘긴다면 내일은 더 좋은 날이길. 밴쿠버에 있었으면서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이다. 우울증도 극에 다르고, 공항장에도 같이 와서,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학교 가기 전에도, 학교 간 뒤에도, 맨 정신으로 사는 것 자체가 힘들고 두려웠다.




게다가 한번 술에 마시면 스스로를 해하는 지경까지 되어버리니, 우울증이 극에 극을 다랬다. 기말시험 전날까지도 술을 마시고 거하게 취해 잤다가 깨질 것 같은 숙취와 함께 시험을 치러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하게 미쳐 있었다.




그렇게, 결국 학사경고로 1년 정학을 받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족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 안에 혼자서 술을 계속해서 마셨고, 혼자 있다는 고립감과 이러한 우울증을 고립해 보자라는 생각에 나는 일 자리를 찾았지만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다 결국 자살시도로 이어졌고, 결국 난 정신과 입원을 하였었다. 지금 현재는 안정을 찾는 상태다.




이 블로그는 나한테 있었던 일과, 내가 살아왔었던 것을 터 놓을까 생각한다.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누군가 봐 주어도, 단지 내가 지금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을 이 글을 씀으로써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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