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자기 의심 병

by 봄볕

딱히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누군가 나를 비난한 적도,

내 앞을 가로막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도,

잘해보고 싶은 의지도 늘 명확했지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딘가 맞지 않는 틈새처럼 마음이 걸렸습니다.


별것 아닌 작은 돌부리에 걸려

잠시 넘어졌을 뿐인데

나는 마치 큰 바위에 부딪힌 것처럼

혼자서 그 충격을 부풀려 키웠습니다.


시도 조차 하지 않으면서

이미 실패부터 찾아 헤맸습니다.

그 실패를 핑계 삼아

위안을 얻는 척했고,

반대로 공포 속에서 매일을 떨며 살았습니다.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좀 더 준비되면 그때.'

'괜히 나섰다가 민망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럴듯한 말들로 포장된 불안은

신중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를 지켜주는 척하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만들었습니다.


마음은 가득한데 발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

그런 상태로 오래 방치됐습니다.


그러다 문득, 대학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교내 시 공모전에 당선된 적이 있었는데,

그날의 사건 하나가

쉽게 나를 의심의 구렁으로 밀어 넣었던 것 같습니다.


상을 받은 것이 처음도 아니었는데,

한 선배의 툭 던진 한마디가 화근이 됐지요.


"그 교수님, 시조 스타일 좋아하시잖아.

너 시가 좀 올드해서 뽑힌 거 아냐?"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웃고 흘려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진심을 다했던 만큼 그 말은 오래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글을 쓰는 일보다

내 글을 깎아내는 일에 더 익숙해졌습니다.


왜 나는 이런 평범한 글밖에 못 쓰는 걸까.

왜 나는 저렇게 창의적인 생각을 해내지 못할까.


그런 질문 앞에서 늘 용기를 잃었고,

스스로를 의심하며

매번 앞으로 내디뎌야 할 발을 멈추곤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다른 곳에서 나는 다시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맘카페를 운영하며 썼던 공지글에서였습니다.

나를 잘 모르는 회원들이

공지 몇 줄을 읽고도

글을 잘 쓴다며 과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 칭찬이 처음엔 내 안에 의심으로 머물렀지만,

점점 마음의 상처를 회복시키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스스로의 의심은 결국 스스로를 잃게 만듭니다.

누군가의 능력만 훔쳐보게 하고,

누군가의 삶을 부러워하게 하며,

누군가의 말에 나를 겹쳐 놓게 만듭니다.


그렇게 비교에 비교를 거듭하다 보면

내 삶의 호흡은 어느새 멀리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걸 다 잃고 난 후에야 알게되지요.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그 어떤 가능성도 자라지 못한다는 걸.


뒷걸음질 치고, 흔들리더라도

스스로 '이 정도면 괜찮아'하고

내 어깨를 토닥일 수 있는 작은 용기.


나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

그것이 다시 나를 움직이게 만들죠.


나는 바랍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스스로를 너무 오래 의심 속에

머물게 두지 않기를.


누가 뭐래도,

당신은 처음부터

당신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오늘 더 아름답게 빛날 당신,

나는 진심으로 그런 당신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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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13화43. 충분히 멋진 속물로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