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비워낼 용기를 내고 있을 너에게

힐링 에세이

by 봄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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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집안 청소를 하려고 청소기를 돌리는데,

먼지가 잘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이상한 마음에 먼지통을 열어보니,

미처 비워내지 못한 묵은 먼지가 가득 눌어붙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우습게도 그 먼지들 틈에서

가려져 있던 내 마음의 안쪽을 보았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온기 없이 무게만 남은 관계들.

비워내지 못한 그 인연들이

끈적한 먼지처럼 내 안에도 눌러붙어 있었다.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찾아 연락처 목록을 열었다.

스크롤을 내릴수록 낯선 이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한때는 가깝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마음이 닿지 않는 사람들,

나를 이용하려 했던 사람들,

서로 안부조차 모른 채 숫자로만 남은 사람들.

그랬다.

나는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길어지는 전화번호 목록만큼이나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일 거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오래도록 내 곁에 남아있지 못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을 모두 품을 만큼의

온기를 갖지 못했다.

나는 결심했다.

내 부고장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만 남기고 모두 정리하기로.

묵은 번호들을 하나씩 지워 나갈수록

이상하게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 몇 안 되는 사람들만 잘 지켜내도

내 삶은 충분하겠다는 안도감마저 스며들었다.

내 곁에 남아 있는 이들과 웃고,

때로는 다투더라도

다시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

나는 이제서야 진짜 내 사람들과

가장 귀한 시간들을 함께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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