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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인 생 관

학창시절

by 최연수

인류의 역사를 그리스도를 분기점(分起點)으로 B.C.와 A.D.로 구분(區分)하듯이, 나의 한 생애(生涯)도 기독교 신앙을 분수령(分水嶺)으로 B.C.와 A.D.로 구분할 수 있겠다. 불신자(不信者)로서의 반생(半生), 특히 사범학교 학창시절 나를 지배했던 ‘B.C.인생관’은 무종교(無宗敎), 반기독교였다.

용산면(蓉山面)에서 사시는 큰 이숙(夷叔=이모부)님은 우리 집에 오시면 아버지와 나에게 전교(傳敎)를 하였다. 유.불.선 (儒.佛.仙) 삼교(三敎)를 통합한 어떤 교리(敎理)라고 하였는데 옥황상제(玉皇上帝)를 받드는 증산도(甑山道)의 일파(一派)였으리라. 새벽이면 동쪽을 향하여 좌정(坐定)하고 주문(呪文)을 늘 외우며 배례(拜禮)를 하곤 했는데, 아버지는 옛날 보천교(普天敎)를 믿다가 나왔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사교(邪敎)라고 사양했다. 나도 간판도 없는 밀의(密儀)종교가 무슨 종교냐 하면서, 비과학적인 미신(迷信)은 믿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오히려 염세(厭世)적이고 현실도피(現實逃避)적인 처세(處世)에다가, 재산을 털어 바치는 이모부를 어리석게 여기었다.

가까운 학우 K는 독실(篤實)한 크리스찬이었다. 학교 서클(circle)인 ‘기독학생회장’을 하면서 마태복음 첫 장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族譜)를 줄줄 암기하는 열심파(熱心派)였다. 그는 나에게 전도를 했다. 그러나 나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사교(邪敎)에 관련했던 일을 후회(後悔)하며 종교에 무관심한 탓도 있었지만, 나도 역시 초월적(超越的)인 절대신(絶對神) 같은 것을 믿지 않았으며, 인간은 자기가 주인으로서 자기 책임 하에 최선을 다하며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 그 어떤 내세(來世)나 심판(審判)이 있다는 것도 믿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관심은 인본주의(人本主義-Humanism)와 죤.듀이의 (Jhon Dewey)의 실용주의(實用主義-Pragmatism)에 관심이 쏠렸다. 사범 2학년 때는 강당(講堂)에서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죤 듀이의 생애와 사상’ 발표를 했다. 몇몇 학우들이 나누어서 했는데, 대중(大衆)들 앞에서 발표하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욱 관심이 컸다.

신의 노예

신은 인간에게

자연을 지배하는 권리를 주고

그 모습을 감추었다.

신과 인간 사이에

자연이 다리를 놓겠다면

신은 당장 파괴해 버릴 것이다.

자기 가슴 속에

신이 은신했는지 모르는데

인간은 하늘을 향해 기도한다.

권리를 얻어서부터 인간은

보이지도 않는 신 앞에서

노예 생활을 한다,

(1953)

다시 말하지만 나는 무신론자(無神論者)로서 반기독교인(反基督敎人)이었다. 우등생으로서 고등고시 정복이라는 청운(靑雲)의 꿈에 부풀었던 내가, 내 자신의 실력을 믿으며 살아갈 뿐, 나약(懦弱)하게 신에게 의지하지 않겠다는 교만(驕慢)과 자존심(自尊心)이 강했다. 그리하여 전도(傳道) 해오는 학우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려면 기독교를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호랑이 새끼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이웃으로 이사 온 작은아버지가 천주교(天主敎)에 귀의(歸依)하면서 종교 서적을 주었다. 내 의견을 물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리하여, 장면(張勉)박사가 쓴 ‘교부(敎父)들의 신앙(信仰)’과 윤형중(尹亨重)신부가 쓴 ‘종교의 근본 문제’를 읽게 되었다. 참으로 낯선 책이었다. 400여년 전 서학(西學)이 조선(朝鮮)에 처음 전래(傳來)되었을 때 그랬을 것이다. 떨떠름하게 받았으나, 읽으면서 새로운 시야(視野)가 열렸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크리스트교에 대한 내용을 깊게 알게 되었으며, 무조건 비판(批判)하거나 배척(排斥)하는 일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하느님이 이만큼은 생긴 것 같다. 넌 어떠냐?”

“글쎄요...”

숙모님은 먼저 천주교에 나가기 시작했고, 숙부님도 엄지손가락만큼 자란 신앙을 내보이며 긍정적(肯定的)인 말씀을 했다. 그러나 나는 섣불리 긍정을 하지 않았다. 내 자존심이 첫째 허락하지 않았다. 호랑이에게 잡혀먹지 않겠노라 하면서, 읽던 책을 휙 던져버리곤 하였다. 어떻게 처녀(處女)가 아기를 낳으며,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부활(復活)한다는 말인가? 허무맹랑(虛無孟浪)한 픽션(fiction)이지...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상한 것은 덮어버린 책을 다시 펴서 읽게 되고, 어느 때는 비스듬히 누워 밤 깊도

록 읽다가,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앉아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래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다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힌 게 아닌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크리스찬(Christian)이 되겠다는 생각은 안 했으나, 적어도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째는 전도하던 학우들에게 맹목적(盲目的)으로 비판하던 자세는 삼가야 하겠다는 것이고, 종교를 갖게 되면 신의 권위(權威)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는 천주교를 믿어야겠다는 것이다. 어떤 책이든지 손에 닿는 대로 읽던 때였으나, 성경(聖經)만은 한 번도 읽지 않은 상태였다. 성경은 천사(天使)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며, 성인(聖人) 군자(君子)같은 사람들이나 읽을 책이지, 나와 같은 범속(凡俗)한 사람들에게는 흥미 없는 책일 거라는 편견(偏見)이 컸었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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