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좌우명(座右銘)

학창시절

by 최연수

중3 학창시절에 좀 철들었다는 학우들은 문자(文字)로건 의지적(意志的)으로 건, 늘 교훈으로 삼는 생활신조(生活信條)가 있기 마련이다. 사춘기(思春期)가 지나면서 자아(自我)가 싹트고 정체성(正體性)이 고개를 든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친구들은 책상 앞에 써 붙여놓는 좌우명(座右銘)이 있다는데, 나는 일찌기 일기장에 장황(張皇)하게 해설까지 써놓고, 자주 펼쳐보면서 마음판에 새기어 놓은 좌우명이 있었다. 정직(正直)이나 효도(孝道), 노력(努力)이나 지성(至誠) 혹은 희망(希望)이나 성공(成功)같은 덕목(德目)을 선호(選好)하는 학우들도 있었으나, 나는 도덕적이고 당위적(當爲的)인 그런 덕목보다는, 나에게 도전(挑戰)해오는 당면(當面) 문제에 응전(應戰)해야 했다. 왜 사느냐는 고차원적(高次元的)인 문제가 아니라,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고난(苦難)의 환경과 시시각각(時時刻刻) 죄어오는 유혹(誘惑)들이 때로는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였다. 관념적(觀念的)이고 추상적(抽象的)인 것은 나의 생활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진리는 상대적(相對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실제적으로 내가 살아가는데 나침반(羅針盤)이 될 수 있는 생활신조(生活信條)는 무엇일까를 생각하였다.

6.25 동란을 겪으면서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허무주의(虛無主義)적인 사상에 젖어있었다. ‘먹세,노세,자세’ 라는 3세주의를 공공연하게 이야기하였으며, 언제 전쟁터에 끌려갈지 모르는 마당에, 마음껏 즐기다가 죽으면 그만이다는 말을 했다. 휴식 시간이 되면 변소(便所)에 화재가 난 듯이 담배를 피워댔으며, 술이 깨지 않은 채 등교(登校)하여 코를 골며 자는 학우(學友)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 홍등가(紅燈街)의 출입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환락(歡樂)을 즐겨보라고 권유(勸誘)하며, 자기들과 동화(同化)되지 않은 나에게 계집애 같다느니, 환관(宦官) 내시(內侍)가 아니냐는 등 냉소(冷笑)도 했다.

나는 이런 유혹(誘惑)과 도전(挑戰) 앞에서, *마지노(Maginot)선을 구축(構築)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려운 가정에서 자식을 가르치는 부모님의 기대를 배신할 수 없다는 것이 첫째 이유고, 나의 장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취생몽사(醉生夢死)할 수 없다는 것이 둘째 이유였다. 최소한(最小限) 그들이 최상(最上)으로 여기는 쾌락(快樂)을 멀리하고, 절제(節制)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제1차 방어선(防禦線)으로 삼금주의(三禁主義)를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았다. 곧 ‘금연(禁煙), 금주(禁酒), 금색(禁色)’이다.

아버지는 줄담배를 피울 정도로 골초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욱한 담배 연기가 몹시 싫었으며, 여기 저기 담배 재를 떨어놓은 것이 여간 못마땅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어도 결코 담배를 피우지 않겠노라고 스스로 다짐했던 것을 재확인(再確認) 한 것뿐이다.

과음(過飮)으로 인한 추태(醜態)를 많이 목격(目擊)하며 자란데다가, 아버지는 술은 안 하셨다. 이따금 마지못해 들었어도 온 몸이 벌겋게 된 채 체질(體質)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술을 마셔본 일이 없이 성장했는데, 이 역시 어렵지 않게 내 좌우명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는 여자 문제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축첩(蓄妾)이 남성의 능력(能力)으로 여기었는지, 권력(權力)이나 재물(財物)을 가진 사람들은 첩(妾)을 두는 게 보통이었다. 아버지는 그럴만한 능력도 없었지만, 그런 풍토(風土)를 곱게 보지 않았다. 그런 영향도 있었지만 도대체 학업중인 학생들이 사창가(私娼街)를 기웃거리고, 성경험(性經驗)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천박(淺薄)하고 퇴폐적(頹廢的)으로 느껴져서, 결혼 때까지는 동정(童貞)을 지키되, 결혼을 전제(前提)로 하지 않은 이성(異性) 교제는 처음부터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밖에도, 도박(賭博),마약(痲藥) 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결심을 하였는데, 이 때의 삼금주의는 일생 동안 지켜지고 있으며, 그 후 크리스천(Christian)이 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삼금주의는 소극적이고 방어(防禦)적인 가치관(價値觀)이지, 적극적인 생활 신조(信條)는 아니다. 그래서 세운 목표가 삼실주의(三實主義)다. 곧 ‘현실(現實),진실(眞實), 성실(誠實)’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백일몽(白日夢)을 잘 꾸었다. 늘 마음은 푸른 하늘로 올라가 구름 속에서 노닐었다. 고독(孤獨)을 좋아했으며, 공상(空想)에 취한 채 이상론(理想論)만을 잘 펼치었다. 그러나 발은 땅을 디딘 채 허공(虛空)에 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런 헛된 환상(幻想)을 깨뜨리기로 하였다. 마치 눈을 처음 뜬 것처럼 소리쳤다. 현실을 무시한 이상(理想), 현실과 괴리(乖離)된 계획은 헛된 일이요, 나의 현재의 환경(環境)과 상황(狀況), 나에게 현재 주어진 조건(條件)과 능력을 바탕으로 어떤 목표를 세우며, 계획을 짜며, 방법을 모색(摸索)한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부정(不正)과 불의(不義), 불법(不法)과 비리(非理)...이러한 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 야당(野黨) 생활을 한 아버지께서 비록 출세(出世)하지 못하고 치부(致富)하지 못했어도, 올바르게 살려고 했던 일은 나의 좋은 귀감(龜鑑)이었다. 거짓말과 속임수로 정치하고 돈 벌고 출세하는 모리배(謀利輩)와 정상배(政商輩)들을 타기(唾棄)했던 나는, 진리(眞理) 진실(眞實)이 아니면 따르지 않기로 다짐했다.

성실(誠實). 역시 참되게 사는 일인데,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 하며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책임을 회피(回避)하거나 남에게 전가(轉嫁)하는 일, 요령(要領)을 피우며 적당(適當)하게 하는 일, 강자(强者)에게 아부(阿附)하며, 약자(弱者)에게 군임(君臨)하는 일, 알맹이 없이 허장성세(虛張聲勢)하는 일... 이런 위선적(僞善的)이며 불성실(不誠實)한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실력(實力)을 길러야 한다. 어떤 실력을 갖추어야 할까? 그 당시 교육계에서는 일인일기(一人一技)를 부르짖고 있었다. 그런데 일인일기만 가지고는 안 된다. 욕심인지는 모르나 적어도 세 가지는 남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녀야 한다. 곧 ‘학술(學術), 예술(藝術), 기술(技術)’ 의 삼술주의(三術主義)다. 그래서 학술면에서는 법학(法學), 예술면에서는 문예(文藝), 기술면에서는 전기기술(電氣技術)을 배우고 익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법학은 고등고시 사법과(司法科)와 연결되었으며, 문예는 신춘문예(新春文藝)까지 당선되었으면서도 도중 하차(下車)하였으며, 전기기술은 특별히 공부해보지 못한 채 한 낱 좌우명으로만 남았다. 한 우물을 파지 못한 어리석음! 그러나 후회는 없다. 다방면(多方面)에 걸친 독서(讀書), 다방면에 걸친 재주가 비록 빛을 보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인생을 윤택(潤澤)하게 살았다고 자위(自慰)한다. 그리고 젊은 시절, 한 때의 꿈이요 뜻이었으니까. 그나마도 없었다면 그야말로 취생몽사 하였을 것이다. 내 나름대로 나답게 살아왔다.

* 마지노선(Maginot)...도이치.프랑스 국경의 프랑스의 요새선(要塞線). 1934년에 완성. 근대 축성(築城)의 획기적인 것이라 불리었으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 항공기의 발달로 효과를 보지 못함

keyword
이전 13화일기(日記)와  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