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시절
’88년 서울 올림픽(Olympic)의 열기(熱氣)가 차차 식어가는 어는 늦가을 오후. 쌀 한 줌을 베란다(veranda)에 뿌렸어. 짐작했던 대로 곧바로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와서 신나게 주워 먹더라구. 이번에는 거실 바닥에다 뿌려놓았더니, 약간 망설이다가 여전히 들어와서 쪼아 먹지 않았겠니? 커텐(curtain) 뒤에 숨어있던 나는 순간(瞬間) 문을 닫아버렸지. 비둘기들은 화닥닥 날아가려고 했으나 그만 붙잡히고 말았어. 조심스럽게 새장 안에 잡아넣었거든. 새장 안에서도 퍼덕거리면서 도망가려 했으나 꼼짝 없이 갇히고 만 거야.
“아빠, 왜 그래? 죽잖아?”
“죽긴, 잘 길러줄건 데.”
은진은 남의 것 아니냐고도 하였으나, 주인이 따로 없으며, 길러보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안심시켰지. 베란다에 있는 1층 새장에는 닭 두 마리가 살고, 2층에는 사랑앵무새 부부가 살고 있는데, 또 3층에 비둘기 부부가 새로 들어 왔으니, 새장 아파트가 되어버렸거든. 어머니는 중풍(中風)으로 누워 계신지 6개월이 되었고, 대석이는 대학 진학 때문에 집안이 몹시 바빠 긴장 상태인데, 웬 일감을 또 만드느냐고 해서 어머니도 아내도 싫어했지 뭐냐.
그러나 난 원래 화초(花草)와 동물(動物)을 좋아하잖아? 게다가 자라는 아이들에게 동물에 대한 사랑과 생명(生命)의 귀중함을 일깨워주고, 특히 은진이에게 생물의 일생을 관찰시켜 기록(記錄)해보라고 한 거야. 그래서 베란다에는 여러 가지 화초가 가득 들어 차 있어서, 이웃집에선 ‘꽃집’이라 불렀고, 그리고 금붕어를 비롯한 물고기, 올챙이와 두꺼비, 청거북이, 십자매와 잉꼬, 매미와 나비, 심지어 몰모트까지도 길러서 미니(mini) ‘동물원’을 이루고 있었지.
새장 안에 상자를 넣고 짚을 넣어 주어, 포근한 둥지를 마련해 주었어. 한 달이 되어서야 새로운 환경(環境)에 잘 적응한 그들은 새장 문을 열어놓아도 도망하지 않더라구. 암놈은 회색이므로 ‘재순’이, 수놈은 흰색이므로 ‘흰돌’이라고 이름 지었지. 먼저 ‘흰돌’이의 외출을 허락(許諾)했고, 이어서 교대(交代)해서 외출을 시켰어. 그들은 지푸라기 따위를 물고 와서 둥지를 단장(丹粧)하더니, 그들의 ‘사랑노래’가 짙어지고, 그 무렵 시력(視力)을 잃은 어머니는 비둘기 울음소리를 듣고, 며느리가 또 아기를 낳은 줄 착각하고 있었지 뭐야.
초겨울이 되어 드디어 한 쌍의 알을 낳았어. 아이들은 신기하고 귀여워서 가끔 꺼내어 만져보고, 무게를 달아보고 야단이었지. 그런데 한 달이 다 되었는데도 알이 깨이지 않자, 재순이가 갑자기 둥지를 박차고 나와, 그 옆에다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기 시작하더라구. 잘 살펴보니까 한 개는 금이 가 있더라니까. 그러니까 첫 부화(孵化)는 실패(失敗)를 한 셈이지. 두 번째 알을 낳았을 때는 근처에 접근(接近)하지 말도록 주의를 하였어.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지 두 달 쯤 되었을까, 부화된 새끼들이 모습을 드러냈어. 한 놈은 ‘큰쇠’ 작은 놈은 ‘작은아기’라고 이름 지었지 뭐야. 이렇게 비둘기에 관심을 쏟는 사이 사랑앵무새 한 마리가 죽었어. 선물로 받은 것이고 값 비싼 것인데......
큰쇠와 작은아기는 무럭무럭 자랐어. 특히 식구들을 잘 따라서 귀여움을 받았지. 이듬해 새 봄이 되니까 재순이와 흰돌이는 건너편 물받이 옆에다가 새로운 둥지를 짓기 시작하더라구. 그리고는 또 알을 낳았어. 큰쇠와 작은아기가 아직은 어린데 은근히 걱정이 되더라구. 그러나 엄마와 아빠는 새 알을 품고 있으면서도, 두 오누이를 버리지 않고,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가 먹이었지. 한 달 쯤 되니까 스스로 먹이를 주워 먹기 시작했고, 이제는 엄마 아빠를 따라서 제법 외출(外出)도 하더라구. 네 식구가 드나드는 모습이 참 평화(平和)로웠지. 그런데 문제가 생겼지 뭐야. 화분의 새로 갖나온 새싹들을 쪼아 먹고 짓밟으며, 장독 뚜껑 등 아무 데나 똥을 함부로 쌌어. 이웃집 베란다 새시(sash)에 배설물(排泄物) 얼룩이 생겨 참으로 미안했지. 줄을 메달아 이웃집 지붕 위에 앉기만 하면 쫓았으나 힘이 다 미치지 못했어.
이윽고 두 번 째 새끼들이 또 부화(孵化)되었어. 이 때부터 아빠 엄마는 큰쇠와 작은아기를 냉정(冷情)하게 대하더라구. 먹이를 달라고 가까이 오면 눈을 부릅뜨고, 그래도 어리광을 하면서 품에 기어들면 부리로 쪼지 않아? 그리고 베란다에도 있지 못하도록 밖으로 매섭게 내쫓는 거야. 어느 때는 깃털이 뽑힐 정도였어. 이에 당황한 새끼들은 베란다의 주위를 맴돌며 불안에 떨고 있었지. 아빠는 오후 5시 쯤 되면 어김없이 베란다를 지키고 있더라니까. 외출했던 새끼들은 7시 쯤 되면 돌아와서 베란다를 맴돌았어.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 하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우리는 새끼들을 돕기로 했지. 아빠를 따돌린 채 얼른 새장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을 되풀이 했단 말이야. 큰쇠와 작은아기는 이 일에 익숙해져서 의례 우리의 도움을 청했어. 이제 세 쌍이 되었으니 한 쌍은 내보내야 되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러나 쉽지 않더라구.
새로 깬 녀석들에게는 ‘씩씩이’ ‘예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어. 그런데 씩씩이와 예쁜이가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울 무렵, 아빠인 ‘흰돌’이가 또 다른 보금자리를 마련할 모양이었어. 이러다가는 비둘기 판이 되겠다고 해서, 먼저 1층에 사는 닭을 치우기로 했지 뭐야. 은진이가 교문 (校門)앞에서 사온 병아리가 어미닭이 되기까지 정들도록 애써 키웠는데, 냄새도 나고 어쩔 수 없었어. 서운해서 울먹이는 은진이를 간신히 달래어, 부천 작은아버지댁(叔父宅)으로 보내어 버렸지 뭐야. 이 무렵 엄마 재순이가 뜻밖에 죽은 거야. 때마침 ‘쥐잡기 기간’이 되어 아마도 어디선지 쥐약을 잘 못 먹은 듯했어. 아빠 ‘흰돌’이의 울음소리와 거동(擧動)이 심상(尋常)치 않아서 주위를 살펴보니까, 글쎄 항아리 뒤 으슥한 곳에서 누운 채 굳어 있더라구. 아이들이 보지 않도록 얼른 치워버리고 며칠 동안 비밀에 붙였지. 어린 ‘씩씩이’와 ‘예쁜이’는 어떻게 키운담......그러나 고맙게도 며칠 동안 슬피 울던 아빠가 슬픔을 딛고 새끼들을 보살피기 시작했어. 여전히 먹이를 물어다가 잘 삭여서 먹여주고, 새끼들이 귀찮게 품안에 파고들어도 야단치지 않더군. 그리고 엄마의 죽음을 알려준 것 같지도 않았어. 이미 청년이 된 ‘큰쇠’와 ‘작은아기’도 엄마의 죽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 한 듯했고.
엄마를 장사(葬事) 지낸 뒤 닷새 쯤 되었는데, 낯선 비둘기 한 마리가 나타났지 뭐야. 아빠가 가슴팍 깃털을 세우며 뭐라고 부르니까 가까이 다가오더니, 거실(居室)을 기웃거리며 베란다 구석구석을 둘러보기도 했어. 아빠가 바짝 접근(接近)하면 훌쩍 날아갔어. 꽤 겁도 많고 수줍은 듯 했지. 아빠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먹이면 또 나타나서 아빠를 불러내는 게 아냐?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 비둘기를 데리고 건너편 97동 옥상(屋上) 난산(欄干)으로 날아갔어. 처음엔 4,5m 정도 떨어져 앉아서 시선(視線)을 마주쳤다가, 외면(外面)했다가 어색한 줄다리기를 되풀이 하더라구. 이틀 쯤 지난 후에는 아예 가지 않고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더니, 해가 져도 가지 않은 채 베란다 반대편에서 잠을 자기도 했어. 닷새 쯤 되니까 아예 몸을 바짝 대고 잠을 자더라니까. 아빠가 데리고 온 것인지 스스로 온 것인지 알 수 없었지. 비둘기는 금슬(琴瑟)이 좋아서, 한 놈이 죽으면 따라 죽는다는 속설(俗說)은 거짓인 것 같아.
“남편을 여읜 과부거나, 약혼자를 잃은 처녀겠지”
“이혼한 과부거나 실연 당한 처녀겠지”
우리는 제멋대로 추측(推測)을 하면서 이들의 거동을 유심(有心)히 관찰하지 않았겠니? 마침내 아빠의 머리, 눈언저리, 목덜미를 가볍게 깨물고, 아빠는 눈을 지그시 감고 기분 좋은 표정이었어. 심지어 부리를 맞대고 쳐들었다가 숙였다가..... 그들의 로맨스(romance)가 짙어가더니, 이윽고 흰 비둘기 등 위에 아빠새가 깡충 뛰어 오르며 꽁지를 맞대더라구.
“아빠, 비둘기가 왜 저래? 싸우는 거야?”
“서로 사랑하는 거야, 저게 비둘기 결혼식이야.”
“거짓말”
“정말이야, 새들은 저렇게 결혼해. 그래야 알을 낳지.”
“...................”
아내는 아빠새 흰돌이가 새장가 들어 후처(後妻)를 얻은 셈이 아니냐면서, 별꼴을 다 보겠다고 눈을 흘겼어. 새로 온 흰 비둘기도 5월 13일 곧 쌍둥이 알을 낳았지. 그저 낳고 까는 일들이 이들 생활의 전부인 듯 했어. 알까지 낳은 엄마의 이름은 ‘반구여사’라고 불렀어. 구약 아가서에서 따온 이름이야. 얼룩질 반(斑)자와 비둘기 구(鳩)자야. 반구여사가 큰쇠와 작은아기, 씩씩이와 예쁜이에게는 의붓어미가 된 셈이야. 청년(靑年)인 큰쇠와 작은아기는 이 계모(繼母)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어,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때 돌아와 잠이나 자더라구. 물론 죽은 엄마 생각도 전혀 안 하는 것 같았어. 그러나 씩씩이와 예쁜이에게는 심각(深刻)한 문제가 생긴 거야. 새엄마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싫어하며 무서워 하더라구. 베란다에 나와 아빠새를 기다리고 있다가도, 새엄마가 나타나면 쪼르르 둥우리로 숨어버리지 않아? 한편 반구여사도 전실(前室)자식들에게 냉정하더라구. 옆에 얼씬도 못하게 할뿐 아니라, 아빠새가 모이를 먹여주면 눈을 흘기다가, 아빠새가 한눈이라도 팔면 재빨리 쫓아내는 거야. 씩씩이와 예쁜이는 비명(悲鳴)을 지르며 피신(避身)하구. 반구여사의 눈언저리에 검은 얼룩이 있어서 더 매섭게 보였는데, 하는 짓도 너무 건방지더라구. 그 때마다 내가 야단을 치면, 안 그런 척 시치미를 떼고 둥지로 들어가는 모습이 더욱 얄미웠지.
아빠새는 참 난처(難處)한 모양이었어. 반구여사의 눈치를 살피랴 새끼들 먹여 살리랴. 그러나 아빠새 흰돌이는 후실(後室)의 알도 잘 품어주고, 전실 새끼들도 여전히 정성껏 돌보더라구. 반구여사는 아빠새에게는 참 상냥하고 애교(愛嬌)도 좋은데, 전실 새끼들에게만은 너무 쌀쌀하고 심술궂게 대했어. ‘콩쥐 팥쥐’‘백설공주’‘헨델과 그레델’이야기가 생각났지. 이 무렵 6월 2일 20일 만에 반구여사도 알을 깐 거야. 더욱 앙칼지게 전실 새끼들을 얼씬도 못하게 하였어. 이제는 아빠새마저 합세(合勢)하여 전실 자식들을 베란다 밖으로 몰아내더라니까. 이렇게 세 쌍이나 되는 비둘기가 좇고 쫓기니 깃털이 어지럽게 날리고, 우는 소리도 요란하지 뭐야. 화초들이 문드러지고 아무 데나 싸는 똥 때문에 파리가 들끓었어. 식구들의 짜증도 늘어나 말다툼까지 있었지. 이 북새통에 외톨이가 되었던 사랑앵무새마저 어디론지 날아가 버려, 비둘기 둥우리를 치우고 모이를 주지 않기로 결정했지. 은진이가 훌쩍훌쩍 울었으나 하는 수 없었어. 먹이 주는 일도 중단했고, 세월이 가면 스스로 베란다를 떠나리라고 생각했으나,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들더군.
그런데 깐지 10일 되는 날부터 반구여사와 아빠새는 또 다른 둥지를 짓기 시작하더니 새끼들을 돌보지 않더라구. 죽은 재순이와는 달랐어. 드디어 6월 17일 한 마리가 죽었고, 남은 새끼도 먹이를 삼키지 못하고 흘리더니 따라서 죽고 말았어.
“반구가 못 됐어! 새끼들을 키워야지. 왜 새 둥지는 만들어? 씩씩이 예쁜이도 학대(虐待)하더니....”
반구여사는 처음부터 식구들의 미움을 샀는데, 끝까지 미운 짓을 했어.
비둘기를 키우기 시작한지 8개월이 지난 5월 29일. 전날 밤 라면 박스(box)에 잡아넣은 비둘기들을 가지고 영본학교로 출근(出勤)했어. 알을 품고 있는 반구여사만 남겨놓고. 교실 한 쪽에 몰래 놓아두었다가, 자연과(自然科) ‘집에서 기르는 동물’ 시간에 이를 내보이며 실물(實物) 교육을 하기로 했어.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신기해서 교실이 떠들썩했지. 다섯 마리가 계속 나오니까 요술(妖術)이나 구경한 것처럼 넋을 잃고 구경하지 않았겠나? 수업을 마친 후 이름을 부르며 한 마리씩 창밖으로 풀어주었어. 아빠새 발목에는 은진이에게 보내는 편지 쪽지를 메달아 두었지. 편지에는 ‘은진아, 비둘기가 없어져서 매우 섭섭했지? 그러나 좀 기다려보렴. ’89 5/29 10시 아빠’ 라고 썼거든. 영문을 모르는 이들은 주위를 한 바퀴 맴돌더니 아빠새를 선두(先頭)로 일제히 동쪽으로 날아가더라구. 노량진 고개를 넘고 한강 줄기를 따라 반포 쪽으로 날아간 거야. 전화로 확인(確認)했더니 금방 도착했다는 거 아냐. 분속 1Km로 난다니까 눈 깜짝할 시간이었을 거야. 비둘기는 귀소성(歸巢性)이 있어서 통신용(通信用)으로 쓰인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입증(立證)해 보였어. 그 동안 백과사전(百科事典)이나 조류도감(鳥類圖鑑) 등 서적을 통해서 비둘기에 관한 것을 샅샅이 읽었으므로, 비둘기 박사(博士)가 될 정도였지.
6월 6일. 현충일(顯忠日)을 맞이하여, 교회 베드로남선교회에서 단양으로 야유회(野遊會)를 떠났어. 또다시 전날 밤 자고 있는 비둘기들을 모조리 붙잡아 라면 상자에 넣어두었거든. 물론 공기 구명을 뚫어 놓았지. 이 상자를 안고 버스에 올랐어. 중간 휴게소(休憩所)인 영월 태백기도원에 도착하니까 7시더라구. 김목사님 사모님을 문병(問病)하기 위해서였지. 버스에서 내리니까 바깥 공기가 대단히 싱그럽고, 주위 경관(景觀)도 참으로 아름다웠어. 약수(藥水)를 마시고 내려오니까 비둘기 상자를 내려놓고 떠들썩했어. 내가 몰래 태웠다는 걸 알아차린 기사가 언짢은 표정이었어. 동물을 차에 실으면 재수 없다는 거 겠지. 원래 단양 가서 놓아주려던 계획이었으나 하는 수 없이 앞당기기로 한 거야. 뚜껑을 여니까 불쌍하게도 한 마리는 죽어 있더라구. 나머지는 모두 날려 보냈어.
“안녕! 잘 살아라!”
영문을 몰라 하는 그들은 좋아라고 하늘 높이 날았지만, 나는 참으로 서운했지 뭐야. 이렇게 해서 8개월 동안의 이야기에 종지부(終止符)를 찍었어. 오후 1시 쯤 되어 집으로 전화했으나 비둘기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더라구. 못 찾아갔거나 가다가 솔개 같은 맹금류(猛禽類)에게 잡혀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 일행(一行)들은 몹시 궁금해 하였지. 오랜 시간의 여행(旅行)에 심심한 듯해서 지난 8개월 동안의 비둘기 이야기를 들려주었거든. 모두들 꾸민 픽션(fiction)인 줄 알고 있었지. 그러나 ‘비둘기 실록(實錄)’임을 알게 된 일행은 연애-결혼-출산-양육-상처(喪妻)-재취(再娶)-계모-학대(虐待)-출가-죽음....사람의 생애(生涯)와 다름없는데 대해서 무척 신기해하였지. 이튿날 동아일보 휴지통 난에는, ‘88상해185867’‘88상해1682’라고 쓰인 좌우(左右) 다리에 각각 링(ring)을 차고 있는 비둘기가, 군산항에서 발견되었다는 기사(記事)가 실렸어. 중국에서 연구용으로 날려 보낸 비둘기가 틀림없는데, 영월에서 놓아준 우리 비둘기들은 그 후 깜깜 소식이었어.
* 이 글은 관찰기록 ‘비둘기 이야기’에서 발췌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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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될 무렵 우리 집에서는 ‘검둥이’를 기르고 있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검둥이가 보신탕으로 변해버린 거야. 우리들이 얼마나 슬퍼했겠니? 그 일 때문에 부모님을 원망하고 보신탕을 먹지 못했다. 우리가 너무 마음 아파하는 걸 보고, 이웃인 화교(華僑)집에서 강아지를 주었단다. 이 강아지는 미군(美軍)이 마스코트(mascot)로 삼아 부대에서 기르던 것인데, 부대가 이동하면서 하우스보이(house boy)로 있었던 그 집 종업원이 곧바로 우리에게 넘긴 것이지. 고향 진도에서부터 미군을 따라왔다니까 사연도 많았어. 혈통(血統)은 모르나 진도산(珍島産)이므로 진돗개라 하였고, 따라서 이름도 ‘진도’라고 불렀지. 어찌나 귀여운지 이불 속에서 함께 살았지뭐야.
방 안에서 길렀지만 반드시 밖에 나가서 용변을 했고, 비가 오면 드러난 돌을 징검다리 삼아 외출하고 돌아와 젖은 물기를 핥아서 깨끗하게 하더라고. 꽤 정갈했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편식(偏食)을 한 거야. 화교 집에서 파는 중화음식 찌꺼기나 우유 아니면 입을 대지 않았거든. 우리도 밥 먹고 살기 힘드는 판에 이런 고급 개를 어떻게 기른다는 말이야? 결국 병이 났지. 바들바들 떨고, 한사코 으슥한 구석으로만 가서 낑낑거리는 거야. 야생 고양이에게 할퀴고 놀래서 그런다는 둥 까닭을 몰랐지. 정수리 쪽 털을 깎아 태워서 그 재를 물에 개어 그 곳에 바르면 낫는다고 했으나 쓸데없었어. 고쳐보려고 애를 썼으나 헛 수고였단다. 아버지는 당장 버리라고 했으나 우리는 그럴수록 포대기에 싸서 애기 어르듯 안고 다녔지뭐야.
“살긴 틀렸다. 싸게 배려!”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가마니에 둘둘 말았지.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면서 누나와 같이 탐진강으로 갔어. 버리고 오면서 울었지. 이튿날 학교 갔다 오다가 다시 안고 왔었거든. 죽지 않고 밤새 낑낑거린 진도가 너무 불쌍해서 그대로 둘 수 없었던 거야.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었어. 하는 수 없이 다시 버렸지. 며칠 동안 울었는지 모른다.
우리 식구들은 모두 개를 좋아했거든. 특히 나는 개와 고양이를 참 좋아했어. 그러나 기를 수 없는 형편이었잖아? 그러다가 1960년 문창학교에 근무할 때, 매식했던 영숙이네 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왔단다. ‘렛시’라고 이름 지었어. 우리도 밥 먹기가 힘들 때라, 다 키워서 팔아버렸어. 서운하기는 하였으나, 어려운 형편이라 어쩔 수 없었지. 그 후 결혼했던 1970년 공군주택에서 살 때, 휘경동 처형댁에서 강아지를 가져왔단다. 이름은 ‘호보’. 하얀 바탕에 황갈색 얼룩이 있는 귀여운 강아지였어. 종류는 알 수 없으나 작달만한 키에 앞 가슴이 딱 벌어져 다부졌거든. 마당이 넓어 밖에 놓아 길렀는데, 자라면서 전형적인 수캐답게 바람둥이였어. 집은 잘 지켰으나 아니 간 곳이 없는 마당발이었지 뭐야.
이 무렵 또 하나의 강아지가 들어왔어. 건수 동생 친구 순병이가 준 암캐인데, ‘삐꾸’라는 이름을 달고 왔지. 역시 종류는 모르지만 흰 바탕에 검정 얼룩이 있고 날렵하게 생겼거든. 고양이처럼 잽싸게 쥐를 잘 잡아 귀여움을 독차지 했지 뭐야. 그런데 암수가 한 집에 살아도 둘이 짝짓기 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 개들도 보는 눈이 다르나봐. 따라서 삐꾸가 낳은 새끼들 중 호보를 닮은 놈은 한 마리도 없었거든. 어린 대석이가 강아지를 좋아해서 다행이었는데, 모두 남들에게 주어버렸지. 이사할 때마다 한 식구처럼 따라다녔단다. 아내는 원래 개를 싫어한데다가, 생선가게에서 생선 대가리 얻어다가 끓여 먹이는 일을 여간 귀찮게 여기지 않았거든.
그런데 새로 마련한 집에 이사 온 후 문제가 생겼지 뭐야. 갑자기 호보가 없어진 거야. 이리저리 찾아다녔지만 종적(蹤迹)을 알 길이 없었어. 어느 날 어머니는 험상궂은 아저씨들과 말 다툼을 하고 있었지. 그들이 호보를 끌어다가 삶고 있다는 거야. 그들은 뒷산 공터에다 큰 솥을 걸어놓고 개를 잡아다가 보신탕 집에 팔아넘기는 업(業)을 하고 있었거든. 국군묘지에서 날아온 비둘기를 약을 놓아 닥치는 대로 잡아가기도 했단다. 주위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이 혐오(嫌惡)스러운데, 우리 호보를 잡아갔다니....어머니는 솥뚜껑까지 벌어봤다는 거야. 싸움이 날 수 밖에. 어머니의 추측이 100% 맞았지만 1%의 증거도 없이 그 우락부락한 남자들과 싸운다는 것은 만용(蠻勇)이 아닐 수 없었어. 백배 사죄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았어. 그 후로도 여기저기서 개가 없어진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별 수 없었거든.
삐꾸가 또 새끼를 낳았단다. 그나마 여섯 마리를 말이야. 아내는 울상이었고, 아기 기르고 살림하기도 힘든데, 강아지 뒷바라지에 지쳐버렸단다. 더구나 강아지들이 자라면서 비싼 신발마다 물어 뜯어놓으니 딱 질색이었지. 새끼들을 야단칠 때마다 어미 삐꾸는 사과하듯 엎드려서 어쩔 줄 몰라 했어. 민망해 하고, 원망해 하던 그 눈빛이 너무 가여웠지. 어서 남에게 주자고 했으나, 어머니는 더 길러서 팔아야 한다고 들은 체 만 체 하더라고. 강아지 팔아봐야 신발값도 안 나온다는 아내 말에, 어머니는 노발대발이었지 뭐야. 고부간의 갈등이 더 깊어지고 있을 무렵에, 불에 기름 붓듯 문제가 심각해졌어. 나는 개는 귀해도 사람은 귀하지 않느냐면서, 말썽거리는 하루라도 속히 없애자고 했거든. 어머니는 한 마리 두 마리 없앴지. 주는 것인지 파는 것인지 상관할 바는 아니었으나, 앓은 이를 뽑으면 그렇게 시원할까?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삐꾸도 죽었지.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마당에 죽어 있더라구. 약을 먹은 듯했어. 개장수들에게 연락해서 곧 치웠는데, 이제 개는 절대로 키우지 않겠노라고 마음먹었지 뭐야.
그런데 개를 키워본 적이 없는 어린 은진은 가끔 강아지를 사자고 조르더라구. 애견집(愛犬집) 쇼윈도우(show window) 앞에 서있으면 떠날 줄을 몰랐어.
“아빠, 큰 개 말고 쪼그만 강아지 한 마리 사줘.”
“작은 개가 더 비싸. 그건 애완견이거든.”
아무리 졸라도 안 사주려고 했는데, 1993년 중학 시절 은진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왔어. 친구로부터 얻었노라는 거야. 1년 된 강아지라니까 다 자란 개인데, 종류는 몸집이 작은 것이었어. 시cm와 요크셔테리아의 혼혈(混血)로서, 연 갈색 털이 땅바닥에 끌릴 정도로 길더라고. 이름은 ‘누리’라고 하더군. 사탕 같이 동그랗고 큰 눈동자가 귀엽고, 납작한 주둥이가 애교있어 보였어. 은진은 머리를 리본(ribon)으로 예쁘게 묶고, 대진은 ‘개 기르기’ 책까지 사다가 오줌 똥 누이는 훈련을 시켰단다. 긴 털을 빗겨주는 일이 여간 거추장스럽지 않아서 짧게 깎아 주기로 했는데, 미용원에 한 번 가면 2만 여원이나 들었거든. 3,40일만에 하는 나의 이발삯도 5,6천원인데....
처음엔 우리 들 음식과 똑같이 먹였는데, 병이 많다는 바람에 애견센타에서 먹이를 사다 먹였지. 이것도 꽤 돈이 들더라. 처음엔 가끔 외출도 시켰으나 5층에서 데리고 가는 일도 번거롭고, 밖에 내놓으면 병에 잘 걸리며 노상 목욕시켜 줘야 한다는 바람에 중단했거든. 관리사무소에서는 개를 기르지 말라 하고, 동네 사람들의 시선도 곱지 않아 이렇게 가두어서 기르려니까, 짖거나 어쩌다 몰래 뺑소니를 칠 때는 죄인처럼 가슴을 조이기도 했어. 방석을 깔고 앉아야만 하고, 하다못해 신문이나 책이라도 있어야 거기 앉는 습성이 얄밉더라구. 고양이는 사람들도 고양이인 줄 아는데, 개는 저도 사람인 줄 안다 하잖아? 우리 식구인양 행세를 했어. 꼭 한 자리에 끼어 똑같이 대접해주기를 바라는 거야. 온순해서 손님들이 오면 아무나 반가워 하지만, 나이 들어 늙으니까 어찌나 냄새가 역겨워 미안했어. 자주 목욕과 이발을 시켜주고, 향내나는 샴푸우(shampoo)를 뿌려주어도 별 효과가 없더라고. 종종 피부병이 생겨 긁고 털고 핥고....에리자벳 칼라를 목에 두르고, 옷을 입히고....여간 귀찮지 않은 거야.
가장 난처한 때는 발정기(發情期)였단다. 수캐처럼 베개나 방석 심지어는 나의 다리, 손자 녀석 까지도 가리지 않고, 수캐 짝짓기를 흉내내며 헐떡거리는 거야. 보기에 어찌나 민망한지....더구나 손님이 와도 때와 곳을 가리지 않는 것이 역시 개는 개더라. 그런데 그건 약과야.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끙끙거렸어. 낮에는 자니까 그런 대로 견딜 수 있지만, 밤이 되면 온 식구가 잠을 못 자게 했지. 이웃집 사람들은 얼마나 속상하겠어. 오죽하면 은진과 어머니가 자정이 넘었는데도 밖으로 끌고 다녔겠니? 불쌍해서 시집을 보내어 새끼를 내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새끼들까지 뒷바라지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직해. 삐꾸 때 겪었지 뭐야. 주사를 맞아도 효과가 없더군. 견디다 못해 늘 다니는 ‘야셀’ 동물 병원에 가서 상담을 했어. 그리하여 2007년 1월 31일에는 짖지 못 하도록 10만원 들여 성대(聲帶)수술을 했고, 이튿날 2월 1일에는 드디어 난소(卵巢) 제거 수술까지 했지. 그러면 멘스(mens)도 안 하고 발정기도 없다니까. 수캐는 거세(去勢)를 한다지만, 암캐도 난소 수술을 한다는 건 처음 듣는 말이야. 그런데 개복(開腹)을 하고 보니까 암 덩어리가 창자에 주렁주렁 해서 그 것 까지 잘라냈데. 큰 수술을 한 거지.
개의 나이 16살이면 사람으로 치면 아흔 살이 넘은 늙은이라 하더라고. 대단한 장수(長壽)인 셈이야. 아닌게아니라 시각(視覺) 청각(聽覺) 후각(嗅覺) 등 모든 감각이 떨어진 거야. 어렸을 적에는 2층에서 발자국 소리만 나도 꼬리를 흔들며 현관에 마중 나왔는데, 지금은 외출하고 돌아와도 본체만체 잠만 자고, 깊이 잠들 때는 귀에 청소기를 대고 돌려도 모르더라구. 치매(癡呆)인지 아무 데나 용변(用便)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먹겠다고 칭얼거리며, 먹는 것만큼 싸기도 많이 해서 질색이야. 아주 낮은 의자나 쇼파에도 올려달라 내려달라, 아무런 이유도 없이 허공을 쳐다보며 컹컹 짖고. 심지어 밥그릇 물그릇을 발로 차고.... 이제 귀여운 짓은커녕 미운 짓 싫은 짓만 하는데, 지금도 병원에 가면 이가 좋아 아직 더 살겠다고 하더라. 어린 손자들은 한 때 오지를 못 했지. 개털로 인한 알러지(Allergie) 때문이었거든. 개를 무서워하지 않아 정서적으로 좋긴 한데, 정들면 치울 수 없는 것이 개이므로, 아예 아파트에서는 처음부터 안 기른 쪽이 낫겠더라.
“사람을 이렇게 뒷바라지 해서 길렀다면, 고등학교에 보냈겠다.”
나는 농담(弄談)으로 하는 말이지만, 은진이는 아주 듣기 싫어하는 눈빛이더라고. T.V.나 책에 개 이야기가 나오면 관심이 깊어. 반생 이상을 함께 살면서 정들었는데, 늙으니까 더 안쓰러우나봐. 최근에는 치료견(治療犬) ‘고마워, 치로리’ 이야기책을 사다가 나더러 읽어보라 하더라고. 아마도 내가 누리를 싫어하는 눈치가 보이나 보지? 그러니 지금이라도 죽으면 얼마나 슬퍼하겠어? 어렸을 적에 우리가 그랬던 대로. 망령(妄靈)이 들었어도 생명체인데, 죽으면 몹시 섭섭하기도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