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타령
먹음직하게 열린 열매지만
따기만 하면 바람 빠진 풍선.
먹어도 먹어도 뱃살이 허리에 닿아
아, 배 고프다.
산이 좋아 오르는데
가시덤불에 긁히고 바위에 부딪치고,
발에 쥐가 나더니
아, 온 몸과 맘까지 견딜 수 없이 아프다.
하룻밤 묵고 가려던 마을엔 초상이 났나,
사람들의 곡성과 까마귀들의 장송곡.
울부짖음과 흐느낌에 내 눈에도 눈물이...
아, 나도 슬프다.
모처럼 떠나온 여행인데
고프다. 아프다. 슬프다
프다나라에 온 게 아, 서글프다.
어서 벗어나야지.
돌개바람에 떼밀려온 나라.
목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저렇게 잰걸음으로 바쁘나보다.
일터로 배움터로 놀이터로 집으로...
공원에 즐비한 아름다운 조각상들.
예쁜 얼굴과 고운 맵시들.
모두 살아 움직이는 조각품이다.
연못의 내 얼굴도 이렇게 예뻐졌다니...
웃음 꽃이 활짝 핀 얼굴로 부르는
예쁜 어린이들의 노래에 맞추어
손뼉치며 춤추는 모두가 천사다.
바쁘다. 예쁘다. 기쁘다의 쁘다나라
미쁘신 임금님의 귀한 선물을 안고 떠나왔다.
76세 나이로 1099일의 여행기를 쓴 베르나르 올리비는 ‘인간이란 걷기 위해 태어난 동물임을 깨닫게 된다’고 하였다. 그래 나도 걷자! 죽은 사람이 그토록 걷고 싶었던 오늘이 아닌가? 그는 28세 연하의 여인 플라테가 가슴 속 불을 댕겼노라고 했지만, 내겐 길벗도 없다. 지도와 나침반도 없다. 다만 좌표 평면 한 장 달랑 들고, 훌쩍 길을 나섰다. 출발 지점은 원점이다. 리벳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에서 ‘마음은 풍경이고, 보행은 마음의 풍경을 지나는 방법이다’고 했지. 홀가분하게 그저 두 발의 움직임에 따라 걸었다.
조용한 숲의 마을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한가하게 앉아있거나 누워서 뭔가 오물오물 먹고만 있다. 올챙이처럼 배들은 불룩한데 갈빗대가 앙상한 몰골이 말 건네기가 내키지지 않는다. 그들을 보니 나도 갑자기 시장기가 들었다. 여기저기 서있는 나무마다 주렁주렁 열린 열매들이 먹음직하다. 벌레 먹은 것 하나 없이 탐스럽다. 한 개 뚝 땄다. 어? 그런데 바람 빠진 고무 풍선처럼 쪼그라드는 게 아닌가? 수 십 개를 땄는데도 마찬가지다. 허겁지겁 먹었으나 간에 기별도 안 갔다. 6.25 전쟁 때, 고학․자취했던 학창 시절 사흘도 굶어봤으니 그까짓 것 견딜 수 없으랴. 하지만 그게 아니다. 헛배만 부를 뿐 뱃가죽이 허리에 붙는 듯 계속 배고팠다.
문득 높은 산이 눈앞에 서있다.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구름이 산 허리를 감도는 멋진 모습이 신기루는 아니다. 산타기를 좋아했던 나는 가슴이 설레었다. 히말라야․알프스를 오르는 등반객들이 그럴 것이다. 젊은 시절 고등고시 공부를 하면서, 고산 준령을 정복하리라 용쓰던 일이 생각났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양사언의 시조를 읊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중턱에도 오르지 못했는데 가시덤불에 온 몸이 긁히고, 발에 쥐가 났다. 마침내 발목과 무릎은 물론 정수리에서 발끝 까지 쑤시고 아픈 걸 참을 수 없었다. 지리산 등산 때의 탈구 사고를 떠올리며 덜컥 겁이 났다. 119를 부르자니 병원이 있나 약국이 있나...이제 마음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간신히 하산하여 하룻밤이라도 묵어갈 셈으로 어느 마을에 들어갔다. 잿빛 하늘을 가린 까마귀들의 장송곡에 소름이 돋았다. 더불어 사람들의 哭聲(곡성)이 신경을 건드렸다. 초상이 났나보다고 짐작했지만, 가슴을 치며 울부짖는 소리,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흐느끼는 소리...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흘렸던 눈물 샘이 말랐는 줄 알았는데, 내 눈에서도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이웃 마을로 줄행랑쳤지만, 돌림병처럼 어딜 가나 온통 눈물 바다다. 그들이야 슬픈 사연이 있겠지만, 모처럼 떠나온 여행이 서글퍼졌다. 이곳이 어디인가? 눈물로 흐려진 눈을 비비며 비로소 좌표 평면을 펼쳐보았다. 제3 象限(상한)이다. X축과 Y축이 모두 陰數(음수) 곧 ‘고프다’ ‘아프다’ ‘슬프다’ ‘서글프다’로 짝 지어진 ‘프다 나라’임을 깨달았다. 단테의 神曲(신곡) 중 지옥에 왔던 셈이다.
잠시도 머무를 수 없는 이 곳을 탈출해야 하는데, 나침반도 없이 어디로 가야하나? 머뭇거리는 순간 돌개바람이 내 등을 떼미는 바람에 또 다른 낯선 곳에 왔다. 오거니 가거니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일터로 배움터로, 놀이터로 집으로...누구 한 사람 붙잡고 한가하게 말 건네기가 민망하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지 딱하게 여기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도우미’라는 앞치마를 입고도 바삐 걷는 게 아닌가?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발을 옮겼다. 헤라클레스․다비드․비너스 같은 아름다운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어? 그런데 모두들 살아 움직이는 조각상이다. 바쁘게 살면서도 그 예쁜 얼굴과 고운 맵시들...나는 못 생긴 얼굴을 감싸 쥐고 쥐 구멍이라도 찾고자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거울 같이 맑은 연못이 눈에 띄었다. 얼굴에 검댕이라도 씻을 요량으로 다가갔다. 어, 저게 누구지? 먼저 두 눈을 씻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바로 나다. 저렇게 예쁜 얼굴이라니, 귀신에게 홀린 듯 했다. 내 얼굴에 반해 뛰어들었다면 나르시스가 되었을 것이다. 이 나라에 오면 나도 저렇게 예뻐지나 보다.
어디선가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렸다. 잰걸음을 옮겼다. 온갖 새들과 꽃처럼 예쁜 어린이들로 얽어 짜서 만들어진 교향악단이다. 무대 앞 마당에는 손뼉을 치거나 어깨춤을 추거나, 기쁨에 찬 얼굴들이다. 향연이 끝나 흩어지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고, 눈을 마주친 사람마다 기쁨의 선물들을 한 아름씩 나누어 주고 있었다. 아무나 붙잡고 눈 인사도 하지못해 쑥스러워 하던 차에 어느 아이가 뜻밖에 선물을 건네주었다. 마치 천사를 만난 듯 했다. 포장지를 뜯어보니 ‘쁘다 나라’에 여행 온 것 반갑다는, ‘미쁘신 임금님’이 보내신 것이었다. 새삼스럽게 좌표 평면을 펼쳐보았다. X축과 Y축이 모두 陽數(양수) 곧 ‘바쁘다’ ‘예쁘다’ ‘기쁘다’ ‘미쁘다’로 짝 지어진 제1象限(상한)에 온 것이다. 단테의 신곡 천국에 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