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새우타령

by 최연수

활짝 핀 꽃들은

후두둑 떨어지면서

씨방을 남기고,

활활 타는 불꽃은

뭉근하게 사위면서

재라도 남기건만,

팔팔 끓던 물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자취조차 없네.


새벽녘 풀잎에

방울방울 맺힌 이슬은

어디서 슬며시 왔을까.

해가 떠오르면

반짝 빛났다가

이내 자취 없이 사라진다.

모락모락 올라간 김이

사뿐히 풀잎에 앉아

이슬로 맺혔나보네.




溫暖化(온난화)현상인지, 올해는 때 이르게 온갖 꽃들이 만발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쥐락펴락 하는데도 아랑곳없다. 防役(방역)의 일환으로, ‘꽃구경 오지 마세요!’‘꽃놀이 오지 마세요!’ 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람들은 웃음을 잃었지만, 꽃샘바람에도 꽃들은 활짝 웃고 있다. 머지않아 꽃잎이 떨어지겠지. 그러나 작은 씨방을 남긴다. 씨방은 커지며 열매가 되고, 그 속에서는 씨앗이 여물어간다.

장작불이 활활 탄다. 그러나 머지않아 뭉근하게 타다가 이내 사위겠지. 요즘 건조기에 산불이 잦다. 온 세상을 삼킬 듯한 기세다. 그러나 언젠가는 꺼지겠지만 綠陰芳草(녹음방초)는 온통 잿더미로 변하여 처참한 몰골이다. 하지만 재라도 남겼다. 남비의 물이 팔팔 끓는다. 그런데 점점 졸다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빈 남비다. 꽃은 씨방을 남기고, 불은 재를 남겼건만, 물은 무엇을 남겼는가?

새벽녘 풀잎에는 방울방울 구슬 같은 이슬이 맺혀있다. 비가 온 것도 아닌데 어디서 왔을까? 어렸을 때는 무척 궁금했다. 기체가 액체로 변하는 液化(액화)를 배우면서 의문은 풀렸다. 팔팔 끓던 물이 蒸發(증발)하면서 모락모락 올라가던 김이 水蒸氣(수증기) 되어 새벽녘에 이슬이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런데 해가 돋으면 잠깐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다가 이내 또 사라지고 만다. 물론 흔적도 없다.

젊은 시절, 꽃처럼 아름답게 피었다가 탐스런 열매를 맺고 떨어졌으면 하였다. 한편 장작불처럼 猛烈(맹렬)하게 타면서 빛과 열을 내어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다가, 조용히 사위었으면 하였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나도 聖人君子(성인군자)나 英雄豪傑(영웅호걸)은 아닐지라도 존경 받는 사람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늙어가면서, 더구나 모진 비바람에 시달리며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낱 어렸을 적 꿈이요 젊었을 적 이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뭔가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게 人之常情(인지상정)이지만, 산불처럼 처참한 殘骸 (잔해)를 남기거나, 역사의 죄인으로서 惡名(악명)을 남기고 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끓는 물처럼 자취 없이 수증기로 변했다가 이슬이 되어 풀잎에 맺히고, 다시 자취 없이 사라지는 물 같은 사람이 오히려 우러러보인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찬송을 부르면서, 물거품 같은 허무한 인생,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전15:58)는 말씀을 되새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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