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타령
어제 세상을 떠난 이가
그리도 살고 싶었던 오늘이기에,
새벽에 눈을 뜨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오늘은 남은 삶의 첫날이기에
기지개를 켜면서,
동트는 하늘로 날아가는 새들처럼
꿈의 날개를 활짝 편다.
오늘은 지난 세월의 마지막 날이기에
서산에 걸린 해를 등지고.
긴 그림자와 함께
주섬주섬 볏단을 묶는다.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는
하루살이 삶일지라도,
오늘 하루가 더없이 귀하기에
시작하랴 마무리하랴 바쁜 날이다.
새벽에 눈을 뜨면 밝아오는 창문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더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간밤에 잠자리에 들 때, ‘내일도 저 신을 신고 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는 옛 어른들의 말을 떠올리며 말이다. 병석에서 그리 도 살고 싶었던 오늘을 맞이하지 못한 채, 어제 떠나간 사람들의 생에 대한 애착과 집념을 가늠할 수는 없다. 아무튼 이렇게 귀한 오늘을 주셨으니,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새벽 기도회에 참석한다. 동트는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는 저 새들처럼, 꿈의 날개를 활짝 펴면서 말이다. 오늘 은 남은 삶의 첫날이니, 첫날밤의 신혼 부부처럼 무지개마냥 아롱진 설계를 해야 하거늘, 과연 무슨 일이 하나님께 영광일까?
한편, 오늘이 내 삶의 끝자락일지도 모른다. 이 사람 저 사람들. 하나 둘씩 내 곁에서 떠나고 보니, 저승길이 대문 앞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을 실감하게 된다. 아무리 ‘백세 인생’ 노래를 목청껏 흥겹게 불러도, 어느 날 갑자기 하 나님께서 부르면, 주머니 없는 壽衣(수의)를 입고 하늘나라 空港(공항)에서 홀로 서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해가 서산에 걸려 땅거미가 내리는데, 무슨 일을 더 한담. 해를 등지고 긴 그림자와 함께 거둔 볏단이나마 단단히 묶는 일도 버겁다. 내가 뿌리고 가꾸며 거둬들인 것들이, 과연 곳간에 들여질 알곡인가? 아니면 아궁이에 던져질 쭉정이인가? 그동안 흘렸던 땀방울이 밑거름이 되었나 아니되었나? 이렇게 하나님 앞에 선 느낌으로, 오늘의 수고를 마감하며 잠 자리에 든다.
어제 하지 못한 것과 내일 해야 할 것에 갇혀 오늘을 보지 못한 채, 끊임없는 두 가지 상반되는 동향을 오락가락하고, 내일의 위험하고 두려운 불가피성과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희망 사이에서 휘청이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스터리, 오늘은 선물이라고 해서, 현재를 선물 ‘present’이라 한다고 했다. 어제와 내일에 얽매이지 않고, 의식의 닻을 오늘 여기에 내리고 살자. 린다 아널드(美 작가 심리학자)는 “지금 여기를 마음껏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이 오늘만 있다면, 하루살이 인생이 아닌가?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죽으면 죽으리라’의 저자 안이숙의 노래가 은은히 귓가에서 맴돈다. 이 노 래가 어찌 하루살이의 노래일 것인가? 오늘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는 원숭이 마음(monkey mind)을 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