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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공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연 사흘 째 맑은 하늘.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서 마을버스로 환승, 낙성대공원 앞에서 내렸다. 가깝기 때문에 자주 들른 곳이다. ’74년에 조성되어 비교적 역사가 깊은데도 허술한 공원이었는데, 올 여름에 와보니 담장도 철거하고 경내를 깨끗이 보수․정비해놓아 기분이 아주 상쾌. 칼을 빼어 들고 돌진하는 강감찬장군의 기마청동상 주위 조경도 잘 손질해 놓았다. 동상에 씌어있는 인헌공 강감찬장군 약전에 따르면, 고려의 ‘親宋排堯’ 정책으로 인해 거란의 침입이 잦았다. 헌종 원년에 40만 대군을 무찌른 후, 다시 9년에 10만 대군을 맞아 흥화진 산 기슭에 정예 기병 12,000 명을 잠복시켰다가 기습하여 거의 전멸시켰다고 했다. 이른바 우리나라 역사상 3대 대첩중의 하나인 귀주대첩이다. 이에 그의 높은 충정과 기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출생지에 사당 안국사를 지은 것이다. 요즘 역사드라마 ‘천추태후’를 통하여 만고의 충신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이 널리 알려져, 예전에 비해 찾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안국문 오른쪽으로 큰 바위에 박정희 대통령 휘호의 ‘落星垈’가 세워져 있고, 거북이 등 위로 고려강감찬장군사적비가 서있다. 옆 게시판에는 그의 설화가 재미있게 씌어있다. 곧 세종실록 등에 송나라 사신이 이곳을 지나다가 큰 별이 떨어진 것을 보고 찾아가니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 아이가 문곡성(文曲星)의 화신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낙성대(落星垈)라 한다는 것. 그러고보니 여기저기 서있는 전등들이 떨어진 별의 디자인이란다. 그밖에도 입으로 전해오는 몇 가지 설화가 흥미진진하다.

안국문 안 왼쪽의 3층 석탑은 봉천동의 생가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안국사는 강감찬의 영정이 모셔있는데, 뜻밖에도 기골이 장대한 장수 같은 위엄은 없어보인다. 어려서부터 키가 작고 못 생겼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지략이 뛰어나고 용맹스런 맹장이었다는 것. 안국사는 고려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하며, 해마다 10월이면 추모제향이 전통제례 절차로 20년여 년 이어져 온다고 한다.

안국사를 둘러본 후 내려오면, 청사초롱이 걸린 관악예절원․관악구전통야외소극장이란 전통 한옥을 만나게 된다. 상설 전통 놀이마당을 마련해 놓고, 풍물․탈춤을 하며, 상락당(常樂堂)에서는 전통 혼례를 한다고.

4개월 후 다시 찾아왔다. 11월 말인데도 봄철 같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핀 곳도 있으며, 목련도 눈을 뜨고 봄맞이 채비를 한다는 이야기. 사람들의 몸차림도 거뜬하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엄마들은 고운 단풍잎을 주워 고사리 같은 아기 손에 쥐어주고, 상록수처럼 파란 젊은이들은 소나무 같은 팔뚝을 자랑하며 운동기구를 이용하고 있다. 한편 머리카락이 파 뿌리가 된 어르신네들은 정자에 앉아, 켜켜이 쌓였던 시름들을 낙엽에 실어 한 잎 두 잎 떨어뜨리며, 어디론지 멀리 날려 보내는구나.

“둥둥 둥둥둥 딱”

북소리에 이끌리어 먼저 관악예절원으로. 젊은 아낙네들이 신명나게 북치는 교습을 받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듯. 나도 저 북채를 건네 받아 고개를 흔들며 몸썼으면.....아무래도 나에겐 풍각쟁이 끼가 있나보다.

오뉴월 잔디밭이 푸르르면 보색 관계로 잘 어울릴 진홍빛 도서관이 두 채 서있다. 여름에 공사 중이었는데 이미 개관했다고. 카페를 연상하게 하는 아담한 이 도서관은, 자치구 최초 공공미술작가 배영환의 작품이란다. 컨테이너에 예술적 혼을 불어넣은 아름다운 설치미술이라는 평이다. 철판 벽면을 강화유리로 대치하여, 시야가 탁 트인 새로운 형태의 도서관이다. 열람석 10석 정도의 미니 도서관이지만, 3,000여 권의 책이 꽂혀있으며, 특히 Pop-up책 모양의 헝겊책․놀이책 등 도서가 비치되어 유아들에게 인기란다.

안국문 앞에 홍살문이 새로이 세워져 있다. 그 옆 자그마한 못에는 한물 간 낙엽만 속절없이 둥둥 떠있다. 안국사 담장을 끼고 뒤쪽으로 접어드니 시원한 둘레길이 나있다. 관악산 연주대로 오르는 약 3Km의 등산로와 연계되어 있는데, 일본 조경수인 옥향․편백․노무라단풍 등을 베고, 자작나무․소나무․참나무․사시나무․전나무들만 남겼다는 것. 한여름엔 관악산의 맑은 바람을 듬뿍 품은 시원한 녹음이 삼복 더위를 잊게 하는데, 이제는 고운 단풍이 가슴 속에 울긋불긋 수를 놓는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안국사의 푸른 기와와 경내의 고운 단풍이 하머니를 이루어 한 편의 수채화를 본 것 같다. 차곡차곡 쌓인 갈참나무 낙엽을 워석워석 밟으며, 홀로 쉬엄쉬엄 산을 오르는 저 여인은 무슨 사연이라도 있을까? 여행(女幸)공원이라 했듯이 저런 여인들에게는 안성맞춤의 둘레길이다.

그다지 넓지 않은 조촐한 공원이지만 근린공원으로서 주민들의 좋은 휴식 공간이다. 영국에서는 ‘궁핍이란 손질할 정원 한 뼘도 없는 것이다’라 한다고. 한편 영국 시인 바타 세크 빌 웨스트는 ‘정원이 하나 더 생겼다면 인생의 배움도 하나 더 생긴 것이다’ 고 하였으니, 공원이 삶의 질을 높이는데 얼마나 큰 이바지를 하고 있는지 짐작할만 하다. 큐 가든이나 하이드 파크 등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공원만도 80여 곳이라니 아닌게 아니라 공원의 나라답다.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크건 작건 이러한 공원이 마을 곳곳에 섰으면, 마음의 궁핍도 해결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배울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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