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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장대비만 아니라면 금방 다녀올 수 있는 공원은 탑골공원이다. 비가 오락가락 했으나 지하철 1호선 종로삼가역에서 내렸다. 주춤주춤 걷는 노인들이 많은 걸로 보아 과연 탑골공원이 가까워진 것이다. 시내 한복판에 위치하고 종로와 인접해 있어, 오가는 길에 자주 보았기 때문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원래 조선시대 원각사 터였는데,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파고다(pagoda)공원이라 하다가, 그 후 ’92년 탑골공원으로 이름을 되돌렸다. 삼일문에 들어서자 의암 손병희상이 옛날 그대로 의연하게 서있다. 3․1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의 수장이다. 독립선언서를 음각한 대형 석조물도 여전히 서 있다. 그리고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팔각정도 그대로 있다. 많은 노인들이 둘러 앉아 무심히 흐르는 세월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오늘따라 그들 얼굴에도 회색 구름이 드리워지고, 초점이 흐린 두 눈에서 금방 우수의 빗방울이라도 떨어질 것 같다. 여느 때와 같이 사람들로 붐비지 않은 것은 가라앉은 날씨 때문일까? 아니면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기의 세대들은 이제 떠나버린 탓일까? 시끄러운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 노인들, 삐뚤어진 세상사에 비분강개(悲憤慷慨)하는 정의파들의 열변이, 메아리도 없이 허공으로 사라진 듯해서 오히려 쓸쓸했다.

국보 제2호인 10층석탑은 옛 모습 그대로 화려하고 웅장하게 서 있는데, 훼손을 막는 보호 시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원각사탑도 그대로 서 있으며, 그 후로 발굴 출토 우물이 새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뒤쪽으로 박종화 글 김충현 글씨의 三․一정신 찬양비와 함께, 10 개의 3.1만세운동의 대형 부조가 펼쳐져, 이곳이 삼일운동 횃불의 점화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용운당대선사비를 끝으로 둘러보고, 있으라는 이슬비가 가라는 가랑비로 바뀌어 문을 나왔다. 울타리 밖으로는 공짜 점심을 해결하려는 노인들의 장사진이 참 측은하게 보인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아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여 이 날을 길이 빛내자.

국경일이지만 이 ‘삼일절 노래’를 들은지 오래이고, 요즘 이 날 태극기를 문 앞에 걸어놓은 집도 별로 보지 못했다. 독도나 일본 정치인의 야스구니 신사 참배, 위안부 문제가 불거지면 일회성 흥분으로 지나간 것 빼놓고는, 일본과의 다른 현안에 관해서는 너무 조용하다. 동서 그리고 남북으로 흩어진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한 목소리로 다시 뭉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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