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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20여 일간의 장맛비가 잠깐 멎는 새,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에서 내렸다. 아마도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나보다. 강산도 대여섯 번은 변했을 세월. 효창공원과 백범김구기념관 두 간판이 함께 세워져 있다. 창열문 안으로 들어섰다. 자그마한 못에 원추를 거꾸로 세워놓은 듯한 청남색 탑(點指)이 서있는데, 선열들의 정기와 천지가 만나는 곳을 상징한다는 해설이 씌어있다. 원래 조선 정조의 문효세자와 그의 모친이 묻힌 효창원이, 일제 강점기인 ’40년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되고 효창공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편 독립군 소탕작전의 비밀 부대를 주돈시켰다고도 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현재는 항일 독립운동 순국선열들의 유해가 안장 되어 있는 사적공원이라는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다. 일반 공원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 것. 옛날에는 별로 돋보이지 않은 야산에 불과했는데, 그 동안 성역으로서 몰라보게 잘 관리되었다. 왼쪽을 향하여 먼저 돌 계단으로 올라가 독립운동가 3의사(尹奉吉․李奉昌․白貞基)의 묘역을 둘러보았다. 오석으로 된 비석이 세워져 있다. 맨 왼쪽 안중근(安重根)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해 가묘만 있고, 그 다음의 이봉창의사의 묘는 후손이 없어서 쓸쓸하게 보였다. 의열문 안으로 들어갔는데, 잠겨 있는 의열사에는 공원에 모셔진 7 분의 영정이 있다고.

후문 쪽으로 나가니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이봉창의사의 동상이 서 있고, 그 위로 흰색 석조의 우람한 백범 김구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밀랍처럼 하얀색의 좌상 앞에 서 있으니,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애국․독립운동의 빛나는 발자취를 샅샅이 둘러보았다. 다만 이승만과 대립각을 세운 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수수방관했던 사실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있다. 기념관 위로 백범 김구의 묘가 있었다.

다시 들어와 언덕으로 올라가니 북한반공투사 위령탑이 서있는데, 반공 겨레의 소원을 길이 아로새기기 위하여, 정성을 알알이 모아 이곳 자유 대한의 서울에 세운다는 취지의 글이 씌어있다. 언덕을 내려와 입구로 다시 왔다. 이번에는 오른쪽 방향으로. 임정요인(이동녕․조성환․차이석)의 묘역이 조성되어 계단으로 올라가 둘러보고 내려 왔다. 담장을 타고 조금 더 올라가니 놀이터와 함께 원효대사상이 있다.

해방 후였다. 대여섯 살 동생이, 책상 위에 올라가서 위 애국지사들의 업적을 주줄이 외웠다. 어른들의 흉내를 낸 것인데, 해방의 감격과 함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이어서 그는 1학년 학예 발표회에서, 아버지와 작별한 안중근의사의 아들 역을 맡아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한편 낡은 필름이었으나 안중근의사와 윤봉길의사의 활동사진을 보느라고 학교 운동장은 초저녁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향하여 돌멩이를 던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폭탄이 감춰진 윤봉길의사의 도시락을 검문할 때 잔뜩 긴장한 바람에, 나는 군중 속에 갇힌 채 바지에 실례를 했던 추억이 되살아 났다.

4개월 후, 다시 공원을 찾았다. 때 마침 제72회 ‘순국선열의 날’을 하루 앞두고 기념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순국 선열의 숨결/나라 사랑의 큰 물결’이란 케치프레이즈가 씌어진 엠블럼이 공원 진입로에 나부꼈다.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길이 전하고, 그들의 업적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정한 법정 기념일이요, ’97년 정부기념일로 제정한 후 해마다 국가보훈처가 기념식을 주최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묘역은 둘러보지 않고, 공원 변두리의 1.1Km 웰빙 산책길을 걷기로. 여름에는 숲이 울창했는데 낙엽이 많이 떨어졌고, 곱던 꽃들은 이미 다 졌다. 그러나 소나무 등 상록수들과 맥문동 잎은 여전히 푸르름으로 애국 충절을 나타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과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상록수에서 나오는 피톤치트는 탈취․살균력을 발휘하여 식물 성장을 촉진하고, 산소를 증가함으로서 공기를 정화하여 자율신경을 안정시킴으로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쾌적한 수면을 가져오도록 한다지 않은가? 그리하여 오르락 내리락 해도 다리가 팍팍하지 않고 몇 시간을 걸어도 전혀 피로가 없다. 산을 내려오니 ‘조국의 미래 청년의 책임’이라는 돌비석이 새삼스레 가슴에 와 닿는다. 요즘 같은 세대간의 간극이 일찍이 있었던가? 갈등의 일차적인 책임이 기성세대들에게 없는 건 아니지만, 이들 청년들을 정치적으로 선동하면서 정쟁으로 이용하려는 기성세대들의 권모술수에, 부화뇌동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본다. 과연 내일의 조국을 책임 질 수 있을까? 이곳에 잠든 순국선열들이 악몽에 심히 시달릴 것 같다. 그들 희생의 대가가 오늘날 세대간의 갈등․지역간의 감정․정당간의 반목․계층간의 대립․이념간의 투쟁일 것인가?

국가가 잘 되고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이 정치라면 잘 다스리도록 돕는 것이지, 잘 못 다스리도록 흔들어대어 정권이 굴러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정치인가? 와각지쟁(蝸角之爭)에 빠져있는 정치적 현실에 환멸을 느끼는 대다수 국민은 이렇게 허탈해 있다. 순국선열의 날을 맞이하여, 해방의 기쁨에 감격하였던 당시의 순수했던 애국심으로 모두 돌아가기를 비는 마음으로 공원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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