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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역사문화공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아내와 같이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내렸다. 아직도 공사중이라 빙빙 돌아서 들어갔다. 나무들이 울창하고, 바위 틈에 화초들이 어우러지며... 공원이라면 떠오르는 이런 이미지와는 영 멀구나. 우뚝 선 조명탑과 성화대만 옛 운동장임을 기념하고 있을 뿐, 친근했던 운동장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조선 시대 군사들의 무예를 훈련하던 주요 군사시설인 훈련도감 하도감(下都監)이 있던 자리이며, 대한제국 마지막 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1907) 되었던 비운의 현장이다. 일제 강점기에 군사시설은 훼손되고, 최초의 체육시설 경성운동장(1925)이 개장되었다. 그리고 광복과 함께 서울운동장(1945)으로, 그 후 종합운동장인 잠실운동장(1984)이 개장되면서 다시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이 운동장은 마침내 철거되고, 새로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란 긴 이름으로 문을 열게 된 것이다.(2009) 이곳 저곳에 나무를 심고는 있지만, 커다란 건물만 우뚝해 공원이라기 보다는 박물관이라야 걸맞는 시설들이다.

월요 공휴일이라 휴관이라고. 그러나 관리인의 후의로 동대문운동장기념관 안으로. 각종 시설 변천사를 둘러볼 수 있는 자료, 운동 경기 장면, 스포츠 용품, 운동 기구, 체육인들의 기념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운동장에서 월계관을 머리에 쓰거나, 빛나는 트로피를 높이 쳐들어 보이기 위해 혼신의 노력으로 흘리던 구슬 땀과, 절치부심으로 뿌리던 분루가 함께 점철되어 있다. 천지를 진동시킨 듯한 응원가, 하늘에 충천했던 개선가와 만세 함성의 여운이 지금 이 기념관을 울리는 듯하다. 백발이 성성한 인생의 황혼기에 이곳에 들러, 그 옛날 운동장에서의 영욕을 회상하는 선수들은 얼마나 감격스러우랴.

기념관을 나오면 동대문 유구 전시장. 유구(遺構)란 옛날 토목 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머리가 되는 자취를 말한다. 축구장에 매몰되었던 조선 전기〜중기 도성 안의 방어시설인 하도감 터와 염초청, 건축물 등이 발굴 당시의 모습대로 정비 복원되어 있는데, 규모와 배치 상태가 양호한 건물지 6기와 집수시설 2기, 우물지 3기가 이전 전시되어 있다. 일제의 강점과 더불어, 근대화의 격랑에 휩쓸려 훼파 붕괴되었던 서울 성곽의 일부도 복원되었는데, 특히 문헌으로만 알려진 치성(雉城)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성벽의 바깥으로 덧붙여 쌓은 성벽이란다. 한편 남산에서 흘러든 하수를 도성 밖으로 흘러보내는 커다란 아치형 이간수문(二間水門)이 이채롭다. 우리가 물이 되어 통과함으로 오늘의 탐방을 끝내고 동대문 평화시장으로. 아내가 선뜻 함께 따라온 목적이 이것이었으니까.

열이틀 후 이번에는 나 홀로 동대문역사관으로. 이 지역에서 발굴 출토된 기와류, 자기류, 동전류, 철제 유물 등을 망라한 1000여 점의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조선 전기․중기․후기 시대별 생활사 복원의 기초 자료로 큰 의미가 있다. 국립박물관을 비롯해 서울역사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등 대형박물관에 비할 바 아니지만, 동대문 지역 일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문화는 역사의 꽃이 아니라 그 뿌리이다. 그리고 정치나 경제는 그 열매다’ ‘뿌리 깊은 나무’ 지 창간사의 일부(1976) 를 되새겨 본다. 역사와 디자인이 하나되는 신개념 공원을 지향한다는 취지로, 무료 디자인 겔러리와 이벤트홀, 야외공연장을 통해 공연과 각종 전시를 자유롭고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동대문운동장보다는 동대문시장이 일반 시민들에겐 더 친근감을 준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이 아니었던가? 빠른 근대화를 겪으면서 지역 고유의 생활문화와 정서가 소멸되거나 변용되어 본연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는데,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이정표를 일상적 대중적인 공간인 동대문 시장의 물건들을 살펴보는 기획도 흥미롭다.

자연의 산소를 맘껏 들이마시며 걷는 공원 산책도 좋지만, 이렇게 역사․문화의 향기를 맡으며 걷는 공원 산책도 또한 좋다. 공원을 나와 흥인지문(동대문)에게 손 인사를 하며 숭례문(남대문)으로 향하였다. 화마에 소실된지 5년여 만에 복원되어 축하식을 거행한지 2주일만이다. 훼손된 성곽 일부도 복원되었다니 기쁘다. ‘물려받은 유산을 지키는 데에서 현재가 풍성하고, 유산을 가꾸는 데에서 미래가 열린다. 도성은 서울이 품고 있는 그러한 소중한 자산이다.’ ‘서울, 도성을 품다’ 팜푸렛에 나오는 첫 글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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