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쉬고 생각하고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서 하차 예술의 전당 안으로. 교통 문제로 차일피일 하다가, 뜻밖에 집중 호우로 엄청난 산사태(2011.7.27)가 났다는 보도를 보면서 어찌나 안타까웠던지. 2년이 지나서야 민낯으로 찾아온 여인 같이 들머리에 들어섰다. 아직도 수마가 할퀴었던 생채기가 남아있다면 어떡하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 소가 잠든 산(牛眠山)이라면 낮고(293m) 편한 산일 텐데, 그 부지런한 소가 아마도 깊이 잠든 새에 날벼락을 당했으리라.
대성사에서 흘러나온 목탁과 염불 소리에, 매미가 덩달아 구성지게 염불을 따라 외우고 있구나. 배를 불쑥 내밀고 내 큰 입을 귀에 건 채 입구에 앉아있는 포대화상(布袋和尙)앞에 섰다. 뚱뚱한 체구에 고무 풍선처럼 부풀어 늘어진 배를 드러내고 갓난애 처럼 웃고 있는 저 모습!
“예끼, 원숭이마냥 흉내내긴...자네 가방 속엔 뭐가 있나?”
“스님 지팡이와 자루는 어디 두고요?”
그는 중국 후량 사람으로 미륵불의 화현(化現)으로 본다지. 떠돌이 삶을 살면서, 지팡이에 메단 자루의 것들을 중생들에게 원하는대로 나누어주었던 불교판 싼타클루스할아버지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 있고,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는 진리를 몸소 행한 분이었겠지. 심산유곡에서 고사리나 꺾어 먹으며 도를 닦는 달마대사와 포대화상 같은 고승들도 저렇도록 고도 비만일 수 있구나.
이 절은 백제시대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창건(1954 개축) 했다고. 이곳 약수를 그가 마시고 수토병(水土病)을 고친 후, 대성초당(大聖草堂)을 지은 게 대성사로 되었단다. 대웅보전 안엔 목불좌상(서울유형문화재 제 92호)이 있고, 밖에는 네 마리 사자가 떠벋치고 있는 삼층석탑이 있다. 저 산신성상(山神聖像)은 불교와는 관계 없는 토속 신앙의 대상이겠다. 태극쉼터에서 운동기구로 운동하는 젊은이들을 보니 부럽다.
험한 길은 아니지만, 이곳 저곳 파인 곳이 많고, 꺾인 나뭇가지들이 어지럽게 나부라져 있다. 20년 만의 29일 째 폭염, 기상 관측후 최장인 49일간의 긴 장마...자라보고 놀란 놈이 소댕보고 놀란다고, 이상 기후로 뒤숭숭했던 지난 여름, 천재지변이 되풀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는데 다행히 지나쳤다. 그러나 아직도 2년 전 산사태의 원인과 책임 소재가 규명되지 않고, 원상 복구와 앞으로의 대책이 미흡하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전시행정으로 무리한 산책로를 개발하고 생태공원을 조성했다는 둥, 서초터널 공사 발파 작업과 정상의 공군부대가 문제였다는 둥, 그러므로 천재가 아니라 예정된 인재였다는...원래 이 산 대부분이 육산(肉山)인데다가 배수로가 부실했던 것은 사실.
지금 이 길은 산사태 지점을 비켜가고 있지만, 이곳도 아직 상처가 아물지는 않은 것 같다. 환경의 보존과 개발은 이율배반 관계인가? 이 논쟁은 합일점이 없는 영원한 평행선인가? 지금까지 많은 공원을 산책하면서, 개발의 혜택을 고맙게 누리면서도 훼손된 자연을 아쉬어 하기도 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도 더 개발했으면 하는 양가감정과 이중사고를 했으니 나도 유구무언이다.
살피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얻는 득음의 세계.
바늘 하나 세울 틈 없는 여린 송이가/ 한여름 빳이한 가시로
세상과 맞섰던 그의 젊은 날도/ 가을 해 짧아가는 노경에 들면
성글성글 성글어가는 가시 틈새에/바람도 햇살도 뒹굴어가는 푸른 날
한영순의 시 ‘밤송이’가 가슴을 콕 찌른다. 젊은 시절 사회 부조리를 보고 밤송이 같이 가시 돋힌 말을 쉽게 내뱉곤 했는데, 노경에 드니 내 말에 찔렸던 사람은 없었을까 돌아보기도 하고, 내 날카로웠던 모가 다 닳고 깎여 이렇게 둥글둥글한 몽돌이 되는구나 새삼스레 세월을 깨닫곤 한다. 정상에 오르면 서울을 한눈으로 조망할 수 있겠으나, 산사태 지점을 피해 평탄한 말죽거리 쪽으로. 보존이냐 개발이냐는 이분법적 흑백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연은 지난날의 아픔을 잊은 채 말 없이, 나무는 푸르게 자라고 풀과 꽃들은 피고 지고 있구나.
청승맞게 하얀 개망초(亡草)는 왜 이다지도 많이 피었나? 그래서 그런 참변을 당했을까? 악담이지만 조선 태조의 무덤에 망초 꽃이 많이 피어 나라가 망했다는데, 공교롭게 구 한말 개화기 나라가 망할 무렵에 귀화했다니, 그래서 이런 몹쓸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김춘수의 시 ‘꽃’을 생각하며 차라리 망초(忘草)라고 불러주었으면 어떨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한 시간 남짓 소걸음으로 천천히 걸었는데도 힘이 들어, 그만 산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