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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 숲길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에서 내려, 들머리인 청구․우방 아파트 사잇길로 들어섰다. 정오의 햇빛이 내리쬐었으나 지난날의 그 위세는 어디로 갔는지...그늘이 없어도 그다지 덥지 않았다. 들머리부터 가파른 나무 계단이 활시위처럼 팽팽하였으나 이내 느슨해지면서, 흙길로 데려다주었다. 줄지어 선 어린 벚나무와 아카시아 나무가 파라솔을 펴줄 정도의 넉넉함은 없고, 키 작은 관목들과 심심찮게 금계화․코스모스 따위 야생화들이 듬성 듬성 깊어가는 가을 채비를 하고 있다.

이따금 만나는 사람들마다 마을가는 몸차림인 걸로 미루어, 험한 악산은 아닌 듯. 은양정에서 잠깐 쉬는데, 이렇게 무난한 산책길이라면 아내와 함께 올 걸 하고 생각했다. 30분이 지나면서 부터는 큰 갈참나무가 그늘 양산을 받쳐주어 시원했다. 갈림길에서 조망대로 가는 길은 팔배나무 숲이 있다는데, 정상으로 가는 길로 향했다. 물갬나무와 잣나무가 제법 우거지고 땀에 젖은 옷이 제법 서늘할 정도. 숲은 천연 에어컨이라 했지. 햇빛이 강하고 기온이 오를수록 열심히 물을 기화시켜 온도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미국 시인의 아버지라 일컫는 윌리암 브라이언은 ‘숲은 신의 첫 성당’이라 했다. 그는 1884년 맨해튼에 센트럴파크를 만들자는 켐페인을 하면서. ‘지금 이만한 넓이의 공원을 만들지 않으면 100년 뒤 뉴욕은 같은 넓이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고 했다. 아기자기한 공원은 아니지만 이런 숲길을 마련한 일이 얼마나 뜻 깊은 일인가? 띄엄띄엄 놓여 있는 벤치들이 천천히 쉬어가라 했다. 어물쩍거리다 보니까 정상이라고. 표지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여러 가지 운동기구들이 흩어져 있는 넓은 마당이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으면 꼭대기인지 중턱인지...하기야 145m에 지나지 않은 나지막한 산이다.

요기를 한 후, 다른 길로 내려오기로. 길은 나있지만 발길이 뜨음한 오솔길이다. 제법 졸졸거리는 골짜기 물을 따라 한참 내려가는데 변전소가 보이고, 웬 사람이 사는지 집채만한 텐트 마당에 남자들 빨래들만이 바지랑대 빨랫줄에 걸려있다. 모처럼 한 사람을 만났는데,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게 아닌가? 계속 내려가면 수색인데, 지하철을 타려면 반대편으로 가야 한다는 것. 지난 불암산 등산 때가 생각났다. 다시 원 지점으로 올라가기로. 그러니까 두 번 등산한 셈. 그러나 서두르지 않기로. 도토리를 줍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는데, 다람쥐 족속인 누군가가 싹쓸이를 했나보다고 씁쓰레한 웃음. 은향정까지 올라온 후, 수국사 가는 내리막길로 가지 않고, 곧장 아래로. 문득 상신초교가 나타났다. 3시간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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