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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기브 미!

종이새가 깐 알

by 최연수

미군이 온다고 고을이 발칵 뒤집혔다. 갈색 머리에 파란 옴팍눈, 허연 살결에 노란 털, 그리고 우뚝한 코에 앞뒤꼭지 삼천리 장구머리....

원숭이를 닮았다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어디 원숭이가 그럴까? 그 무슨 짐승일까? 아이들은 제멋대로 괴물을 상상해 보았다.

“ 게다 벗고 가! 게다 신고 가믄 잡혀 가.”

재호도 게다를 벗었다. 이렇게 아이들은 어른들 틈에 끼어서 맨 발로 내려갔다. ‘백마빠’ 와 ‘태양카뻬’ 앞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미군을 한 번도 보지 못하기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상상한대로 저마다 한 마디씩 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역시 원숭이밖에 없었다.

“ 백마빠가 멋이라냐?”

“ 빵이것재. 백만원짜리 빵.”

아이들은 호들갑스럽게 웃었다.

“ 그러믄 태양까페는 또 멋인지 아냐?”

“................”

“ 태양을 까고 패라는 거여.”

무엇이든지 척척 알아 맞추는 영식이도 우스갯소리로만 넘길 뿐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백마빠’ 아니면 ‘태양까페’로 미군이 올 것이라고 했다. 이윽고 부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성조기를 단 괴물 같은 차 한 대가 나타나더니, ‘백마빠’ 앞에서 섰다. ‘태양까페’앞에서 기다리던 사람들까지 밀물처럼 우르르 몰려들어 차를 에워쌌다. 눈알이 옴폭 들어간 이 차는 ‘찌프’ 라고 했다. 차에서 내린 몇몇 미군은 손을 흔들며 뭐라고 지껄였다. 사람들은 만세를 부르며 손뼉을 쳤다. 흐뭇한 표정으로 미군은 통역을 앞세우고, 두루미 같이 성큼성큼 빠 안으로 들어갔다. 밀거니 당기거니 동물원 구경하듯이 빠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아우성이었는데, 아차 하면 아이들은 밟혀 죽을 지경이었다.

그들은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어디론지 떠나갔다. 따라서 사람들이 썰물처럼 흩어진 후 아이들만 남아서 열린 창으로 빠 안을 들여다보았다.

“ 와, 크다! 저 그림 봐, 말이 날개 달렸지야? ”

이발소에서만 보아 온 그림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날개가 달린 하얀 말이 푸른 하늘을 나는 대형 유화 액자가 벽 가득히 걸려 있고, 천장에는 여러 색깔의 전구가 과일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둥근 탁자 몇 개와 그 위에는 예쁜 꽃병이 각각 놓여 있었다.

‘태양까페’도 비슷한 장식이었다. 다만 아이들의 눈을 놀라게 한 것은, 실물 크기의 여인의 나체가 그려진 유화 액자였다. 팔 베개를 하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눈웃음 짓는 여인은, 반투명 엷은 천으로 치부만 살짝 가렸을 뿐, 알몸을 몽땅 드러내놓고 있었다. 아니 볼 것을 본 듯, 아이들은 이 해괴한 그림을 눈여겨보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여자아이들은 아예 얼굴을 감싸 쥐며 달아났다. 다만 영식이만은

“아, 이쁘다!”

하면서, 유리창에 입술을 대고 한 눈을 깜박 윙크를 했다. 이 것이 왜자하자 너도 나도 눈요기를 하자며 아이들이 모여들고, 어른들은 호통을 치며 내쫓았다.

이튿날 한 무리의 미군들이 성조기를 펄럭이며 트럭을 타고 들어왔다. 전날 헬로 모자를 쓰고 왔던 미군들과는 사뭇 달랐다. 철모를 눌러쓰고 총대를 맨 미군들은, 껌을 질근질근 씹으며 차에서 내렸다. 속눈썹까지 흙먼지가 부옇게 앉은 것으로 보아, 어디에서 어디로 지나왔는지 어지간히 먼길을 온 것 같았다. 두툼한 입술이 툭 까진 껑충이 흑인이 있는가 하면, 우묵한 파란 눈의 키다리 백인이 있었다.

‘너희들은 죄다 엮어서 길바닥에 눕혀놓고, 탱크로 밀어버린다.’

던 나가사키 선생의 말이 문득 떠올라, 재호는 완전 무장을 한 그들의 차림새에 우선 기가 질렸다. 그러나 발걸음도 안 맞고 줄도 삐뚤어진 채 행진하는 그 모습이, 마치 국민학생들 소풍가는 것 같았다. 환영한다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길가에 늘어선 사람들은, 나사못이 풀려 헐렁거린 듯한 이 기괴한 광경에 넋을 잃고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미군들은 군수 사택을 비롯한 비어 있는 일본 집들을 차지하여 주둔하였다.

며칠 후 총칼을 맨 미군들이 두서너 명씩 짝지어 다니면서 집집마다 수색을 했다. 관동군 패잔병들의 무장을 해제한다고 하였는데, 위험한 물건은 모조리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재호 어머니는 부엌 식칼과 심지어는 빨래 방망이까지도 개천가에다 숨겼다. 안심하고 있는데 미군이 들이닥쳤다.

“우리 집은 아무 것도 없어라우”

아버지가 변소 문까지 열어 보였다. 그 지독한 구린내에 오만상을 찌푸린 미군은 우뚝한 코를 움켜쥐며 문을 쾅 닫아버렸다. 아버지가 쓰던 목공 연장을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뭐라고 지껄였다. 재호는 너무 무서워서 뒷집으로 피하는데, 뒷집에서도 더 무서운 흑인 병사가 수색을 하고 있었다. 오갈 데가 없이 안절부절한 재호는 간이 콩알만해졌다.

“ 것이기 말입니다. 목수들이 쓰는 연장입니다. 무기가 아닙니다요 잉”

아버지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톱질 대패질 망치질하는 시늉을 해 보이니까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며 나갔다. 엽총이나 일본도가 나온 사람들은 잡혀갔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왔으나 목공일을 다시 할 낌새가 보이지 않

았다. 어머니는 어서 일을 시작해야 굶지 않겠느냐고 재촉했으나, 아버지는 징용 가서 했던 일이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다면서, 연장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가 다시 팔을 걷어 올렸다. 마에다 집에서 일했던 대로 미군들 옷 세탁을 하기로 한 것이다. 어머니는 팬티를 추켜들고, 냄새를 맡는 척 얼굴을 찡그리며

“요것 좀 보소, 사루마다에 무신놈에 호랑이 달렸단가? 아이고 이 노린내...”

동네 아주머니들을 웃겼다.

“워메 크기도 하네 잉. 것이기도 크겄재.”

“방맹이만 하드라고.”

어머니는 또 팔뚝을 걷어올리며 흔들어 보였다. 아주머니들은 데굴데굴 굴러갈 듯이 웃었다.

“그래도 왜놈들보다는 낫그만. 왜놈들은 사루마다도 안 입었재. 훈도신가 먼가 걸치고만 안 댕겼는가뵈. 옷자락 사이로 보일 것 다 보였었재.”

“그런디 말여, 미국 놈들은 아무 여자한테도 입을 맞춘담서?”

“시상에, 망측스럽네 잉?”

아주머니들은 혀를 차며 흉을 보았다. 대낮에도 빠와 까페에서 여자들과 키쓰를 하지 않나, 여자들을 바짝 껴안고 댄스를 하지를 않나, 이런 광경을 훔쳐본 사람들은 미군들이 미개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들 미군들과 한데 어울리는 여자들 가운데는 길남이 누님이 끼어 있고, 더더욱 놀라운 것은 훈이 엄마가 끼어 있는 것이다.

싹둑싹둑 자른 머리를 부젓가락으로 곱슬곱슬하게 지진 훈이 엄마는, 피 같이 새빨간 입술 연지를 바르고, 아슬아슬한 뾰족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 밤에는 태양까페로 나갔다. 훈이는 재호네 집에다가 맡기고 말이다. 다행히 훈은 재호를 잘 따랐고, 재호는 훈을 동생처럼 귀엽게 잘 돌봐주었다. 훈이 엄마는 맛있는 캬라멜, 비스켓, 쵸콜렛, 껌 같은 것을 자주 갖다 주었는데, 센베이, 오꼬시, 요깡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어찌나 맛있는지 입 속에서 눈처럼 살살 녹았다.

“헬로!”

아이들은 미군이 지나가면 너도나도 손을 내밀었다.

“좆골냈다 기브 미!”

미군들은 과자나 껌들을 나누어주면서

“하이, 색씨?”

재미있다는 듯이 뭐라고 시부렁거렸다.

“땡큐, 벼락 맞지!”

“오케이.”

미군들 꽁무니를 아예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송진에다가 크레용 가루를 섞어 씹고 다녔던 여자아이들은, 이 달콤하고 새콤하고 향긋한 껌이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것이었다. 벽에 붙여 놓았다가 또 씹고, 동글동글 빚어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다시 씹고, 맛이 다 빠져나가도록 씹고 다녔는데, 짝짝거리는 소리뿐만 아니라 풍선처럼 부풀릴 수 있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재호 어머니가 미군 부대를 출입하기 때문에, 미군들의 생활을 소상하게 알 수 있었다. 겉보기에는 어떻게 전쟁에 이겼는지 의심할 정도로, 그저 철부지들 같이 항상 명랑하고 즐겁고 자유롭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 나라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다고 했다. 거리를 지나가다가도 그들 국가가 울리면, 그 자리에서 부동자세로 서있었으며, 성조기를 게양하고 하강할 때도, 제 자리에 서서 국기를 향하여 거수 경례를 했다.

어머니가 미군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가져왔는데 참으로 맛있었다. 왜놈들 쓰레기나 먹고사느냐 하며 역정을 내던 할아버지가 보았다면, 이제 양놈들 쓰레기를 먹고사느냐고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솔잎 찧어 즙 짜 먹고, 곰팡이 난 콩깻묵 먹던 왜정 때의 배고픔을 생각하면 이건 옛날 궁중 음식이었다.

기쁜 해방의 종소리는 만리성 왕서방네에도 울렸다. 미군들을 상대로 영업이 잘 되어 살판났다. 커다란 ‘청천백일기’를 자랑스럽게 문간에 내걸며, 자기 나라 중화민국의 국기라고 했다. 일장기는 하얀 바탕에 붉은 해인데, 청천백일기는 파란 하늘에 햇살이 퍼져 나가는 흰 해였다.

그리고 대형 ‘장개석’ 사진을 벽에 걸었는데, 중화민국 총통이요 일본을 무찌른 영웅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였다. ‘왕조명’을 떠받들었던 때가 바로 엊그제인데, ‘왕조명’이 이미 죽었을 뿐 아니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그 꼭두각시 정부도 무너져버렸으니, 이제는 미국과 연합한 중화민국 장개석 총통을 떠받들 수밖에 없었으리라.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된 것도 중국의 힘이 컸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에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다.



1) 관동군(關東軍)...중국 만주에 주둔했던 일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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