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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치는 새

종이새가 깐 알

by 최연수

재호 어머니와 군애기 어머니 그리고 훈의 엄마는 가장 가까이 사는 이웃인데다가, 처지가 비슷해서 형님 동생 해가며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였다. 해방이 되자 막걸리 밀주를 담그어 놓고 한 모금 두 모금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한 것이,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술을 마시고, 마침내 술이 사람까지 마셔서 실수할 때도 종종 있었다.

취기가 돌면 목젖이 드러나도록 입을 벌려, ‘양산도’를 흥겹게 부르기 시작했다.

“ 에하라 놓아-라. 아니 못-놓겠네.

능지를 하여도 못 놓겠네......”

“ 좋다! ”

그도 그럴 것이, ‘에하라 노하라(江原農原)’는 재호 어머니의 일본식 창씨개명이었고, ‘지요다(千代田)’는 훈이 엄마의 일본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재호 어머니의 본관이 강원도라 해서, ‘강원(江原)’이 성씨가 되어버렸는데, 이것을 일본말로 읽으면 ‘에하라’ 가 된다. 그리고 친척 할아버지뻘 되는 면사무소 호적계 직원이 장난끼로, 농사 짓던 사람이라며 ‘농원(農原)’이라고 지어준 것이 그만 이름이 되어버렸는데, 이것을 일본말로는 ‘노하라’라고 읽는 것이다. 한편 더욱 희한 것은 훈이 엄마 이름은 ‘지요다’인데, 조상 대대로 밭농사 지어온 사람이라 하여 ‘천대전(千代田)’이라고 호적에 올렸는데, 사실은 일본 국가의 “임금의 대(代)는 천대(千代) 팔천대(八千代)까지.....”에서 따온 것이다. 이것을 일본말로 옮기면 ‘지요다’가 되고, 따라서 ‘좋다’로 둔갑을 해버린 것이다. 왜정 때는 그 이름에 어떤 수치심 같은 것을 느꼈는데, 오히려 해방이 되고 보니까 친근감이 생겨서, 취기가 돌면 일부러 자랑삼아 노래 부르곤 했다.

“여보소, 아무 홀애비 놈팽이 한테라도, 봉사맹키로 눈 딱 감고 시 집 가부리면 으쩔까? 해방이 됐는디도 아무 소식 없는거 보니께 죽었거나 새 장개 들었는가 비어. ”

“하먼이라, 사람이 을매나 산다고, 뭣담새 수절한다요? 나도라우 잉. 불사조가 되갖고 오백년 후에야 찾아온다는 남편을 으츠구 지디린다요. 그래도 성님 팔자는 좋재.”

“살기가 팍팍하기는 매 일반이여. 뙤놈하고 핑생 살아봤자, 도야지 같이 살이나 투실투실 찌지, 국물이라도 있을 줄 알어?”

이제 제 정신이 아닌 듯 횡설수설 신세 한탄하다가, 눈물이 영글면 구슬픈 ‘진도 아리랑’으로 이어졌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났네.

............................................

구비야 하 구비구비 눈물이로구나.”

“ 자, 한 사발 더 마셔. 늙어지면 못 노나니...”

술이 넘치고 엎질러져서 빈 잔을 들고 마셔도 “크으윽” 소리는 여전했다.

“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서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임이 보고파 운다.......”

노래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박자도 음정도 엉망인데다가 혀 꼬부라진 소리에, 숨소리까지 거칠어 거의 탄식이다.

한편, 아이들은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읍사무소 담장 옆에서 새점을 치는 할아버지께 다가가서, 에워쌌다. 새장 안에는 이름 모른 귀여운 새 한 마리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토정비결을 보는 사람, 장님 점을 치는 사람은 흔히 보았지만 새점을 치는 사람은 처음 본 것이다.

“한아부지, 이 새 이름이 뭐다요?”

“영조라카지”

“영조라카지라고요?”

아이들은 큰 소리로 깔깔거렸다.

“신령한 새 아니가. 신령하게 점을 자알 친다. 니들도 한 번 쳐볼라카나?”

“쳐볼라카나..”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흉내내면서, 새장 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영조는 어서 돈을 넣으라는 듯이, 아이들을 바라보고 재잘거렸다. 재호가 망설이다가 동전 한 닢을 댕그랑 넣었더니, 영조는 금방 점괘가 적힌 화투짝 만한 종이 쪽지 한 장을 뽑아다가 할아버지께 건네는 것이다. 아이들은 신기해서 종이 쪽지를 들여다 보았다.

“우째 이리 좋노? 백화난만(百花爛漫)하니 봉접수향(蜂蝶隨香)이라. 참 좋데이! 올핸 운수가 대통이란 뜻 아니가...”

“그게 먼 말이라요?”

“음, 니가 장개 갈 점괘 아니가? 장개 가믄 나도 청첩하거라이”

아이들은 배꼽을 움켜쥐고 웃었다. 얼굴이 홍당무가 된 재호는 머쓱해서 할아버지를 빤히 쳐다보며, 제발 웃기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건 농담이고 마, 온갖 꼿이 활짝 피었으니께 마 벌.나부가 행기 를 찾아온다카는거 아니가? 아조 좋은 일이 있을 끼다.”

아이들은 대단한 이야깃거리를 안고 재호네 집으로 몰려갔다.

“재호 어무니, 재호 장개 간다요!”

“거 먼 말이여?”

재호 어머니는 잠을 한 숨 자고 일어났으나, 아직도 술이 덜 깬 듯

머리가 부스스하고 눈알이 캥했다.

재호가 길남이 입을 틀어막는 새에, 옆에 섰던 종배가 대뜸

“새점 쳤는디라우, 재호가 장개 갈 점괘라요.”

어머니도 우습다는 듯이 손바닥을 치며 따라 웃었다.

“아니어. 우리 집안에 좋은 일이 있을 거라 했당께.”

길남이가 종이 점괘를 낚아채서 재호 어머니께 건넸다.

“까막눈이 알간디...한문이네?”

“그 옆에 언문도 써 있어라우.”

“글씨가 깨알만해서 당채 보여야재 원. 백.화.난.만 봉.접.수.향...... 난 먼 말인지 통 몰겄다.”

어머니는 학교 문 앞에 가본적도 없다는데, 처녀 시절 때 어깨 너머로 깨우쳤다는 언문을 잊지 않고, 제법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온갖 꼿이 활짝 피었으니께 벌,나부가 행기를 따라 찾아들거라 는디요.”

“좋긴 좋구마 잉! 그런디 이것이 재호 점이여, 내 점이여?”

“엄니 점이랑께.”

“아니, 니 엄니 홀엄씨가 고목 나문디, 먼 꼿이 핀단 말이여?”

“아부지 올거란 말이여.”

“올 사람이 여지껏 안 왔겄냐?”

어머니는 또 긴 한숨을 토해냈다. 역겨운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났다.

이렇게 점괘가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재호야!”

“............”

재호는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라 유령이나 나타난 것처럼 놀라서 두 입술이 얼어 붙어버렸다.

“나 아부지다. 몰라보겄지야?”

“.............”

“많이 컸다. 고상 많이 했지야?”

눈을 씻고 보아도 틀림없는 아버지였다. 실로 몇 년 만인가? 주름살이 늘고 머리가 약간 희끗희끗해졌다. 턱 수염이 덥수룩해서 꼭 할아버지를 본 듯했으나, 목소리만은 예전 아버지 그대로였다.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아버지의 품에 기댄 재호는 훌쩍훌쩍 울었다. 재호는 종이 학을 꺼내어 아버지께 보여 드렸다. 천 개를 접으면 아버지의 기쁜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만 개를 접었는데도 소식이 오지 않았다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는 종이 학을 한 움큼 쥐더니 머리 위로 날렸다. 날개를 활짝 편 학들은 살아 있는 듯이 우수수 쏟아져 내려앉았다. 그 동안 쌓였던 피로와 시름이 한꺼번에 씻겨 내려갔다.

“엄니는?”

“아까침에도 있었는디...”

재호가 두리번거리다 말고 일어서려는데 스르르 방문이 열렸다. 일거리를 찾아 나갔다가 돌아온 어머니는, 방안에 들어서려다 말고 장승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아니 죽은 사람이여, 산 사람이여?”

“죽은 사람 살아왔재.”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난 어머니는, 그냥 문을 쾅 닫아버리고 한동안 문을 등지고 서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원 시상에, 살아 있었다믄 핀지 한 장 못 낸다요?”

가시 돋힌 어머니의 앙칼진 목소리가, 장지를 뚫고 들어가 아버지의 귓속에 깊이 박혔다.

“말 마소. 차차 얘기할 거니께. 어여 들어오기나 하소.”

재호가 어머니의 손을 잡아당겼으나 어머니는 세차게 뿌리쳤다. 아버지의 힘에 마지못해 끌려들어온 어머니는, 여전히 토라진 채 앉아서 콧물을 홀짝이었다.

“엄니, 아부지가 왔는디 왜 그래싸요?”

“나도 몰겄다.”

어머니의 노여움이 좀처럼 풀리지 않아, 방안에 냉기가 썰렁하게감돌았다. 가슴이 답답해진 재호는

“아부지, 미칠 전에 새 점을 쳤는디라우, 점괘가 맞았어라우.”

“새 점이라니...”

재호가 자초지종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어머니의 마음도 풀렸는지 슬그머니 이야기에 끼어 들었다.

“금매 말이요 잉. 이 과부 고목 나무에 무신 꼿이 피고, 벌 나부가 날아들고 어짜구...쬐그만 것들이 느자구 없는 소릴 해서 욕을 해 줬어라우.”

“허허. 점괘 잘 맞췄구마. 늙은 나부가 안 돌아 왔는가......”

비로소 방안에 따스한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 새가 호기심이 많고 겁을 내지 않아, 일본에서도 많이 길들인 박새라고 했다. 곡예를 하거나 카드를 뽑는 재주를 잘 부려서 흔히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말도 하였다.

아버지는 일본에서의 소설 같은 이야기를 했다. 밤을 새우며 해도 끝이 없을 긴긴 이야기였다. 큐유슈 탄광에서 뼈가 녹도록 일했으나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강제로 몽땅 저금시켜버렸기 때문이다. 힘은 부치고 돈도 못 받아 희망이 없어 보여 몇 사람이 짜고 도망을 쳤다. 어느 어촌에서 고기를 잡으며 몰래 숨어살다가 들켜서, 이제 감옥으로 갔다. 감옥에서 죽도록 얻어맞고 또다시 북쪽 끝 혹카이도 탄광으로 쫓겨갔다. 그 곳에서 일하다가 병을 얻어 죽을 고비까지 이르렀다가, 간신히 나아서 다시 일터로 끌려갔다. 차라리 죽어 버릴까 벼르던 참인데 해방이 되어, 빈 털털이로 몸만 돌아왔다는 것이다.

“당신 새 장개 들었지라우?”

긴 긴 이야기를 귓가에 흘려버린 듯, 어머니는 정색을 하더니 또 방안에 찬물을 끼얹었다.

“허허, 사람 쥑일 소릴 허네.”

아버지는 답답한 듯 애꿎은 담배만 피워 댔다. 방안에 연기가 부옇고, 목이 칼칼해서 재호는 기침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노상 몸을 긁적이는 게 아닌가? 어머니는 못 마땅한 듯

“아니, 이가 월매나 있으믄 그러크롬 긁은다요?”

“과부는 은이 서 말이지만, 홀애비는 이가 서 말이라 안혀?”

“와따메. 듣기 싫소!”

어머니는 딱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옴이 올라 개라서 그리여. 갈아입을 옷이나 내주소 잉.”

“으디 봐요, 워메워메 징상스럽네. 재수 없으믄 옴 올른다더니...”

아버지의 손을 살펴본 어머니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소나무 뿌리 같이 군살 투성이인데, 어떻게 손샅마다 이렇게 진무를 수 있을까? 발가락 사이에도 겨드랑이에도 쫙 퍼져 있었다. 해방이 되어 일본에서 귀국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온 동포들이 한결 같이 옴에 걸렸는데, 재호 아버지도 그 예외가 아니었다. 보나마나 온 식구들에게 금방 전염이 될텐데 이 일을 어찌 하랴.

“워디 한 이불 덮고 잠이나 자겄소?”

“앗따 그래도 첫날밤인디. 자 이리 오소.”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재호는 흩어진 종이학을 쓸어모으며 못 본척했다.

“싫소. 맨지믄 옴 올라라우.”

“ 긍께 말이시. 나 혼자 자야재 별 수 있는가?”

옴은 참으로 지독한 피부병이었다. 무른 살마다 진물러서 고름이 터지고, 소금물에 담그고 씻겨내도 가려움증은 덜 하지 않았다. 수은을 찧어 바르고 별별 약을 다 써도 소용이 없었다. 이가 병을 옮긴다는데, 잡아도 잡아도 더 늘어나는 것이 이였다. 그래도 살아서 돌아왔으니까 망정이지, 현해탄을 건너다 수뢰를 만나 불귀객이 된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일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관부연락선을 타고 귀국하다가 어뢰가 터져 물귀신이 된 사람도 많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 기꾸장은 무사했을까? ’

재호는 불현듯이 기꾸장이 생각났다. 카나리아가 울면 기꾸장과 요시오를 생각하라 했는데, 지금은 카나리아도 죽고 없는 것이다. 카나리아가 죽었을 때 혹시 기꾸장도 죽지나 않았을까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아버지의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울적해졌다.

아버지가 살아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동네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아버지가 겪었던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아버지는 재호를 데리고 고모네로 가서 할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재호야, 넌 우리 최씨네 종가 종손인 거 알지야?”

“예.”

“대를 이어야하고, 조상님네 지사 잘 지내야 한다는 것두 잊지 않 고 있지야?”

“ 예 ”

할아버지는 고이 모셔 놓은 증조부모와 할머니의 신주를 꺼내 보이며 아버지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다시 제사를 지내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들 위패가 왜 여기 와 있는 줄 아직 알 리가 없다.



1) 토정비결(土亭秘訣)...토정 이지함이 지은 책으로 일년 신수를 봄

2) 관부(關釜)연락선...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下關)를 오가는 여객선

3) 옴...몹시 가려운 피부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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