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 쿵 ”
“ 쿵 ”
남산에서 연일 나무 찍는 소리가 메아리와 함께 울려 나왔다. 사쿠라 나무가 도끼에 찍히고 톱으로 베어진다는 것이다. 봄이면 어김없이 눈이 부시게 피어서, 온통 남산을 뒤덮었던 사쿠라가 마구찍힌다니 무슨 일일까? 신사 참배가 아니면 아무도 얼씬하지 못했던 남산 위에 과연 누가 올라갔다는 말인가? 재호는 너무 궁금해서 남산으로 향했다. 입구에는 군수의 사택이 있었는데, 오오사카성을 방불케 한 참 멋있는 집이었다. 겹벚꽃나무가 담 너머로 말없이 서있고, 오늘따라 유난히도 세퍼드가 짖어댔다.
“쿵”
“쿵”
이곳 저곳에서 도끼질 소리가 산을 뒤흔들었다. 벌써 가지가 다 잘려 나가, 벌거벗은 몸통만 덩그렇게 남아 있는 나무도 있고, 몸통조차 베어져서 그루터기만 남아 있는 나무도 있었다. 그리고 주위의 풀들도 무참히 짓밟혀 있어서 참으로 쓸쓸하고 허전했다. 아직 남아있는 나무들도 번쩍이는 도끼 날에 질려, 사시나무 되어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문득 춘자, 추자 쌍동이 아버지가 보였다. 구슬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도끼로 나무를 찍고 있었다.
“춘자 아부지, 왜 나무를 찍는다요?”
“왜놈들 나무는 찍어부러야재.”
쌍동이 아버지는 잠시 허리를 펴면서 담배를 피워 물더니, 의기양양해하는 모습이었다.
“사쿠라가 왜 일본 나무라요?”
“넌 그것도 몰랐냐? 왜놈 국화가 사쿠라 아녀?”
“그런디 왜 찍어부러요?”
“허허, 너도 왜놈이냐? 왜놈 국화는 싹 없애부러야재.”
춘자 아버지는 당연한 일을 한다는 듯이 또 도끼질을 계속했다. 아닌게아니라 쌍동이네 집 마당에는 담을 넘을 정도로 장작더미가 가득했다. 30리 40리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팔던 쌍동이네는, 이제 사쿠라를 찍어서 장작으로 팔려는 심산 같았다.
“그러믄 우리 나라 국화는 멋이다요?”
“................”
춘자 아버지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을 않고 바삐 손만 놀렸다. 지붕 위까지 쌓여 가는 장작더미를 생각하면서 흐뭇했을 것이다.
“그러믄 우리 나라 국화를 심을라요?”
“나 바뻐, 넌 상관 말고 저리 비켜!”
춘자 아버지는 못 마땅한 듯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재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사쿠라! 일제히 활짝 피었다가, 또 일제히 깨끗이 져버린 꽃. 그것이 바로 일본의 국민성이라고 했다. 그래서 가마카제의 옥쇄가 나오고, 전범자들이 일본도로 배를 가르는 자결이 나오는 것일까?
“엄니, 우리 나라 국화는 멋이라우?”
“금매.”
“사쿠라가 일본 국화라고 막 찍어내던디요?”
“니 아부지가 있으믄 우리도 찍어올틴디...”
“예?”
“너 나무 안해봤냐? 을마나 심들더냐?”
재호는 금방 알아차렸다. 일본 국화를 없애야 한다는 핑계로 땔감으로 쓰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마치 애국자나 되는 양 큰 소리쳤지만, 우리 나라 국화도 모르면서 무슨 애국자라는 말인가? 춘자 추자네 아버지가 나무 장사였는데, 언제 독립 운동을 한 애국자란 말인가? 한 참 후에야 학교에서 우리 나라 국화는 무궁화라는것을 처음 배웠다.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비록 아일렌드 민요곡에 맞추어 불렀으나, 우리의 국가라는 애국가도 배웠다. 그런데 삼천리 강산에 화려하게 피어있을 무궁화를 그림이라도 본 아이가 한 사람도 없으니 어찌된 일일까? 오히려 어른들은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고 만지면 몸에 부스럼이 나는 꽃이라고 알고 있는데, 무궁화는 우리 민족성답다니......
“저 낸갈 좀 봐! 큰 불이 났는가뵈.”
남산에서 시커먼 연기와 함께 불티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사람들이 계단을 뛰어올라 갔다. 재호도 무리들 틈에 끼었다.
“어?”
재호는 기절할 뻔했다. 활터의 표적이 다 훼손되어 있었고, 그 큰 도리이 문이 쓰러져 있었으며, 신사가 새빨간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내 회오리바람 같은 시퍼런 불꽃으로 변하며 신사를 휘감고 타올라갔다. 수많은 혼들이 하늘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모습에 재호는 등골이 서늘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손뼉을 치며 잘 탄다고 환호를 하는 것이었다.
“워메메, 왜들 이런다요? 아이고 아이고...”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울부짖는 사람은 바로 훈이 엄마였다. 훈이 아빠 유골이 모셔져 있는 신사가 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징병에 끌려갔다가 전사해서 돌아온 것도 분통하고 서러운데, 또 유골마저 타져서 아무런 흔적도 없어진다니....
“이 작것들아, 유골이나 끄내 놓고 불을 지르거나 말거나 할 일이재....아이고 아이고...”
훈이 엄마의 통곡은 잠시 공중에서 맴돌다가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재호는 훈이 엄마가 너무 불쌍했으나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입이 열리지 않았다. 훈이 아빠 기노시다의 호탕했던 웃음이 머리에 떠올랐다. 일천 땀으로 수놓아진 ‘무운장구’의 어깨띠는 어디로 갔기에, 훈이 아버지는 두 번이나 죽어야 할까? 이제 불에 탔으니 그야말로 불사조로 되살아날 것인가? 재호의 눈에도 이슬이 맺
혔다.
몇 십 년 묵은 사쿠라 나무들이 도끼 날에 찍히고, 그 거룩한 신사가 불타는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일본 사람들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조선은 십 년도 못 돼서 망한다. 산에 나무가 없어서도 망한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내뱉었다가 조선 청년들에게 몰매를 얻어맞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일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삿짐을 꾸렸다. 바깥 출입을 삼가하면서 살림 정리를 하였다. 어머니가 내 집처럼 드나들던 마에다네와 재호가 가끔 들어갔던 하세가와네 병원도 문이 굳게 잠긴 채, 사람들의 발길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며칠 동안 남산을 뒤덮은 검은 연기와 매캐한 냄새 때문에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했다. 아사히국민학교 학생들의 발길도 뚝 끊어져서, 이제 거리에서 일본 사람들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이꼬야!”
“...............”
재호는 깜짝 놀랐다. 약간 떨리는 목소리의 기꾸장이 문을 두드렸다. 오랜만이었다. 기꾸장이 재호네 집에 온 것은 이 것이 처음이요 마지막이었다. 기꾸장은 손가락으로만 자기 집에 빨리 오라는 신호를 했다. 왜 그럴까? 재호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발길을 끊은지 꽤 오래 되었는데, 새삼스럽게 저주받은 일본 사람 집에 간다는 것이 웬일인지 꺼림직 했다.
“왜? 무슨 일인디?”
“우리 어머니가 너 데려오래.”
마음 내키지 않았으나 재호는 기꾸장의 뒤를 따랐다. 영식이에게 행여나 들킬까봐 죄인처럼 주위를 살피면서. 하세가와네는 몹시 바빴다. 기꾸장 어머니는 재호에게 카나리아 새를 선물로 주겠다면서 새장을 안겨주었다. 재호가 새를 무척 좋아하고, 지난번 달아난 새를 잡느라고 애썼으니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새를 잘 기를 수 있는 사람은 재호 밖에 없으며, 달아난 새가 돌아오면 잘 기르라는 것이다. 재호는 가슴이 벅찼다. 비록 한 마리지만 이 귀한 새를 준다니 참 고마웠다. 카나리아가 울 때는 기꾸장과 요시오를 생각하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기꾸장과 요시오가 즐겨 읽던 그림 이야기책 한 아름과, 장난감도 주었다. 일본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일본 무사 사무라이, 일본 씨름꾼 스모 인형... 그리고 예쁜 새 소리를 내는 탁상 시계와 코끼리 필통...재호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사이꼬야, 너에게 용서를 구할 일이 있어.”
기꾸장 어머니는 정색을 하더니 기꾸장 오누이를 나란히 세웠다. 그리고 어머니도 그들 뒤에 서서 두 손을 모았다. 영문을 몰라 당황해 하는 재호에게 기꾸장 오누이가 고개를 숙이더니
“거지, 도둑놈이라고 욕했던 것 용서해 줘. 조선 사람이라고 업신여겼던 것도...”
하며 용서를 빌었다.
“우리가 먼저 너에게 용서를 빌었어야 하는데, 네 용서를 먼저 받았던 것 잘 못이었어. 홍시 한 개 주지도 못 했으면서, 떨어진 풋감 주워갔다고 거지. 도둑놈으로 몰아부쳤던 과거를 진심으로 사과해.”
“............”
기꾸장 어머니의 눈에서 이슬이 한 방울 반짝했다. 재호는 얼굴이 달아올라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얼른 달아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때 그 일이, 어른이 아이에게 고개를 숙이고 빌어야 할만큼 큰 잘못이었을까? 오히려 재호가 잘 못한 것이 아니었는가? 혹시 조선 사람들에게 얻어맞을까 봐 그럴까? 이것이 연극의 한 장면이라 할지라도 재호는 코가 찡했다.
“그럼, 재호 사요나라!”
푸짐한 선물을 안고 집에 돌아오는 재호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천 가지 만 가지 감정이 엇갈렸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왜놈들 쓰레기나 먹고 사느냐면서 호통치던 그 때의 험상궂은 모습! 만일 지금 이 광경을 보고 있다면 할아버지는 또 뭐라고 했을 것인가?
어머니도 마에다네에서 갖가지 예쁜 그릇 접시들과 식료품들을 가져왔다. 흥부네 집 같이, 혹부리 영감 같이 갑자기 부자가 된 느
낌이었다. 그리고, 누구네는 일본 사람들로부터 값비싼 오동나무 장농을 선물 받았다는 둥, 어떤 힘센 불량배는 일본 집을 박차고 들어가 닥치는 대로 좋은 물건을 빼앗아 갔다는 둥 소문이 왜자했다.
하룻밤 새 일본 집들이 모두 텅 비었다. 간밤에 어둠을 타고 모두들 함께 떠나 버렸을 것이다. 대문들이 굳게 잠기고, 방문들도 못질을 해 버렸다. 재호는 기꾸장네 집 대문 앞에서 섰다. 주인을 잃은정원만이 재호를 말없이 맞이하였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세가와상 안녕! 기꾸장 안녕!”
연못에 잔잔한 물결이 일면서, 물구나무 선 나무들의 그림자가 가볍게 흔들리며 한쪽으로 밀렸다. 팽나무 가지에 걸려 찢어진 구름 조각들이 연못에 빠져 흠뻑 젖었다. 연못이 다시 잔잔해지면서, 늦가을 국화꽃 같은 기꾸장의 얼굴이 희미하게 나타났다가, 이윽고 다시 이는 잔물결에 흔적도 없이 지워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