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새가 깐 알
훈이 엄마는 훈에게 십자매 한 쌍을 사주었다. 재호네 집을 드나들면서 카나리아를 구경했던 훈은, 저에게도 새를 사 달라고 늘 졸랐기 때문이다. 재호네의 비어있는 새장을 얻어다가 길렀다. 십자매를 사들인 후로 훈은 새장 앞을 떠나지 못했다. 십자매는 예쁜 소리로 노래하지는 않았지만, 앙증스럽고 귀엽게 놀았다. 포르르 날갯짓을 하며 둥지로 왔다가 홰로 갔다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꽁지를 쉴 새 없이 좌우로 흔드는 것도 예뻤고, 좁은 물통에 들어가 날개를 파드득거리며 미역감는 것은 더더욱 귀여웠다. 훈은 좁쌀 모이를 주고, 맑은 물도 갈아주며 채소 잎도 뜯어다 주었다.
“십자매, 안녕!”
“찌르르 찌르르 찍 찍”
십자매는 훈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둥지 안에 들어가 사이좋게 붙어 있다가도, 훈이가 나타나면 포르르 나와서 인사를 했다. 훈은모이를 주려고 문을 열 때는 얼마나 조심을 하는지 손끝이 가냘프게 떨렸다.
“새장 청소는 하지마. 내가 해줄게.”
“응. 성이 해줘.”
재호는 훈이 만 했을 때, 십자매를 길러봤던 경험을 되살려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게 다루었다.
혼자 집을 보다가 심심하면 쪼르르 재호네로 갔던 훈은, 이제 밤에도 새와 함께 집을 보다가 혼자 그만 잠들기도 했다.
“엄닌 밤마다 으디 간 거야?”
“엄닌 돈 벌러 가재. 집 잘 봐. 십자매 잘 보구...”
“나도 가믄 안 돼?”
“안 돼, 따라오믄 큰일나.”
“..................”
“집 잘 보믄 쵸코렛이랑 젤리랑 많이 갖다 줄게.”
낮에는 잠을 자고 땅거미가 내리면 짙게 화장을 하며 나가는 엄마가 참 궁금했다. 훈은 발맘발맘하게 엄마의 뒤를 따라가 보았다. 엄마는 굽이 뾰족하고 높은 하이힐을 신고 바삐 걸어가는데, 씰룩씰룩한 오리 궁둥이가 참 재미있었다. 어떻게 알아차렸을까?
“훈아, 집 보라니께 왜 따라 와?”
엄마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다 말고, 길가에 있는 막대기를 주워 들고 땅을 치며 호통을 쳤다. 훈은 깜짝 놀라서 가재걸음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손등으로 눈물을 씻으며 저 멀리 전봇대에 붙어있는 가로등을 바라보았다. 부옇게 부풀어오른 전등에서 빛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엄니, 엄니.”
“찌르르 찌르르.”
힘없이 털썩 주저앉은 훈을 십자매가 달래 주었다. 십자매는 둥지겉에 삐죽삐죽 돋아난 지푸라기를 뜯어다가 둥지 안 깊숙이 넣기도 하고, 흩날리는 깃털도 물어다가 넣기도 하였다. 재호는 이제 알을 낳으려고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성, 언제 알 나?”
“곧 나. 알 나믄 또 새끼 까는 거여.”
“맻 마리?”
“많이.”
훈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손뼉을 쳤다. 아닌게 아니라 그 후 십자매는 알 두 개를 낳아 품기 시작했다. 혼자 품기도 하고 둘이 품기도 하였다. 훈은 날마다 손가락을 꼽으면서 새끼 까기를 기다렸다. 궁금해 하기는 재호가 훈에게 못지 않았다. 어렸을 적에 새를 길러봤지만 알을 낳고 새끼를 까는 것은 보지도 못한 채 이사를 했었기 때문이다.
“엄니. 언제 새끼 까?”
“난 몰라, 재호 성한테 물아봐. 재호 성은 새 박사야.”
아닌게아니라 재호는 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한 스무 밤쯤 잤을까, 재호가 새장을 청소하다 말고 큰 소리로 외쳤다.
“훈아, 새끼 깠어. 이리 와 봐!”
훈은 마른침을 삼키며 둥우리 안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털도 안 나고 눈도 뜨지 않은 뻘건 새끼 두 마리가, 엄마 새 날갯죽지 사이에서 꼬무락거린 게 보였다.
“성, 징그럽다!”
“크믄 이뻐져.”
“성, 쌍둥이네?”
“응, 쌍둥이야.”
훈은 이 새 식구들에게 넋을 빼앗기다시피 했다. 새끼들은 하루가 몰라보게 무럭무럭 자랐다. 엄마 아빠 새가 어찌나 잘 길러 주는지 귀엽게 자랐다. 클수록 엄마 아빠를 닮았다. 종이 새가 깐 새만을 길러 보았던 재호는 훈보다 오히려 관심이 더 컸다.
“이 십자매, 종우 새가 깠다 잉!”
그 옛날 갯가집 형을 흉내내며 능글능글하게 거짓말을 해봤지만, 훈은
“아냐. 종우새가 으츠구 알을 까? 종우새는 가짜 샌디...”
하며 한 마디로 코방귀를 뀌었다. 재호같이 호락호락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훈은 가짜 엄마가 아니기 때문일까?
한 철이 바뀌어 아침저녁으로 싸늘한 바람이 옷깃으로 스며들 무렵, 키다리 헬로 아저씨와 털보 아저씨가 가끔 훈이네 집을 번갈아 다녀갔다. 헬로 아저씨는 맛있는 카스텔라 빵과 비스켓 과자를 주었고, 털보 아저씨도 사탕이랑 센베이 과자랑 갖다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안아 주기도 해서, 웬 일로 오지 않은 날은훈은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헬로 아저씨는 해방이 되자 장흥에 진주해온 미군 하사관이었고, 털보 아저씨는 해방 후 이북에서 38선을 넘어 혼자 월남한 아저씨였다. 헬로 아저씨는 지갑 속에 끼어 넣은 사진을 곧잘 꺼내 보이며, 미국에 있는 자기 애인이라고 입을 맞추었다. 수염이 덥수룩해서 나이가 들어 보인 털보 아저씨는 숫총각이라고 했으나, 이북에 처자식을 두고 온 홀아비일 거라고들 했다.
그 동안 새끼들도 제법 커졌다. 둥지에서 나와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재롱을 피웠다. 네 마리의 십자매가 새 장에 가득 찬 것 같았다. 재호가 새끼를 달라고 했으나 어림없는 말이었다. 벌써 훈의 가슴은 커다란 새장으로 부풀어 십자매로 가득 차 있었다. 또 알을 낳고 새끼를 깔 테니까.
그런데 훈은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되었다. 어미 새가 새끼 새를 쫓아다닌 것이다. 처음에는 술래잡기를 하면서 재미있게 노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어미 새가 새끼의 꽁지와 깃털을 뽑아다가 둥지 안에 넣는 것이 아닌가?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몰아낸 채 들어오지도 못 하게 하며, 새끼들은 이리저리 쫓겨다니며 아우성이었다.
“에미 새야, 그라지 마!”
훈의 말을 들은 채 만 채 새장 안은 갈수록 깃털로 어지러워지고, 새끼들의 날카로운 비명이 귓속을 후비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새끼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늘 그랬듯이 훈은 눈을 떴는데도 엄마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찌르르 찌르르 찍 찍 짹 짹찌르르...”
날이 새자마자 어미 새와 새끼 새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 또 시작되었다. 훈은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곤히 잠든 엄마는 귀찮다는 듯이 훈을 떠밀어내었다.
“엄니, 일어나!”
“왜 이래? 깨우지 마!”
“엄니, 눈 떠 봐, 에미 새가 새끼 물어.”
“ .............”
“저것 봐, 새끼 죽겄어! ”
훈은 엄마의 코를 꼬집어 비틀었다. 엄마는 얼굴을 찡그리며 짜증을 냈다.
“쨱 찌르르 짹 쨱 찌르르 짹....”
새들이 더욱 요란해지자 엄마도 눈을 떴다.
“멋이 으쨌다고 그래?”
“에미 새가 새끼 새를 물어.”
“..............”
“엄니, 왜 그래? 새끼 꽁지를 막 뽑아.”
아닌게아니라 새끼들은 꽁지가 다 뽑혀 뭉툭해졌다. 그 귀엽던 모습이 없어지고 아주 볼썽사나워졌다.
“다 커서 그래.”
“다 크믄 그래?”
“다 크믄 에미가 또 알을 낳게 돼.”
훈이는 또 알을 낳는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엄마는 말을 이 었다.
“꽁지 뽑아다가 보금자리 맨들라고 그래.”
“새끼 꽁지 뽑아다가? 새끼 죽게?”
“그래서 새끼는 내보내야 돼.”
“안 돼!”
훈은 도리질을 했다. 새끼를 내보내다니 어디로 내보낸다는 말인가? 날려보내라는 말인가, 누구에게 주라는 말인가? 훈의 얼굴은 시무룩해졌다.
“훈아, 이리 와.”
엄마는 훈을 갑자기 끌어안았다. 엄마의 따뜻하고 포근한 품이 어찌 그리도 좋은지. 꽃향기보다도 좋은 엄마의 냄새를 맡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훈아.”
“응?”
“훈도 다 컸지야?”
“...............”
“우리 집에 오는 아자씨 좋재?”
“응. 헬로 아자씨도 좋고, 털보 아자씨도 좋아.”
“둘 중에 누가 더 좋아?”
“음, 둘 다 좋아.”
“아니 한 사람만.”
“몰라. 다 좋아.”
엄마는 훈을 더욱 힘주어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도 아빠 있으믄 좋겄지야?”
“응, 누가 아빠야?”
갑자기 아빠 말을 꺼낸 엄마는 대답 대신 눈만 지그시 감았다. 훈의 눈앞에 헬로와 털보 아저씨의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그 아저씨들이 다 아빠가 된다는 말인가? 그러면 아빠가 둘이라는 말인가? 훈은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그저 좋아서 싱글벙글이었다.
“아자씨가 아빠야?”
“.............”
“나 아빠랑 항꾼에 살아? ”
“............”
“아빠 둘다 와?”
“.............”
“왜 암 말 안해? 언제 와?”
훈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데, 엄마는 대답을 하지 않고 물끄러미 새장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입 시울만 들썩거렸다.
“엄마, 머라 했어? ”
“아 아무것도 아녀. 새끼들이 훈이 타겠다고....훈이 같이 이쁘다고...”
“.................”
또 알을 낳고 새끼를 까려면, 어미 새는 왜 새끼들을 내쫓아야 할까? 동생들이 새로 태어나면 형 누나들도 참 좋고, 동생들도 형 누나와 함께 살면 참 좋을텐데.
‘ 그믄 우리 엄니도 애기 낳으먼, 날 쫓아낼까?’
이런 생각에 미치자 훈은, 엄마가 새가 되어 지금이라도 어디로 날아 가버릴 것 같아 두렵고 떨렸다.
“ 엄니, 워디 가? ”
훈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는 엄마의 치마 자락을 붙들며 따라 나갔다.
“ 왜 이래? 이것 놔!”
“ 엄니, 나 쫓아내지 마..”
“ 왜 널 쫓아내? 요렇그럼 이쁜디.....”
엄마는 훈을 번쩍 들어 안으며 볼에다가 뽀뽀를 해주었다. 훈이도 엄마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뽀뽀를 했다. 아침 해가 창문 너머에서 환하게 웃어주었다.